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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주 Sep 25. 2024

스페인 쿠킹 클래스가 불러온 나비효과

밀가루, 올리브오일. 스페인 음식 향기 넘치는 부엌

얼마 전 생일을 맞은 우리 부부에게 요리교실 참가권이 선물로 주어졌다. 한창 집밥요리에 관심이 많던 두 사람을 배려한 사려 깊은 선물이다. 부부에게는 보너스 같은 날이다


우선 서비스되는 환영 음료와 함께 참가자들끼리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을 갖는다. 대부분 생일 선물로 초대받았거나 한창 연애 중인 커플들이었다.  


오늘의 메뉴는 스페인식 오믈렛, 북아프리카 영향을 받은 남부 스페인 닭꼬치, 집에서 직접 만든 토마토소스로 만드는 미트볼, 후식으로 산양젖으로 만든 치즈구이와 함께 하는 새우 감바스 요리다. 두 시간 안에 이 많은 종류의 음식이 가능할까.


셰프는 16살 때부터 요리를 시작했다는 중년의 마음씨 좋아 보이는 여인이다. 모로코와 가까운 스페인 지브롤터에서 왔다고 소개한다.  경력에서 오는 여유는 여러 사람의 질문에 모두 대답하면서도 서두르는 법 없이 각 테이블의 요리 과정을 체크하며 노하우를 전한다.


전통적으로 유명한 음식들에는 일맥상통하는 공통점이 있다. 가장 신선한 재료 그리고 넘치지 않도록 기본에 충실한 음식이다. 시간과 온도, 식재료의 특성을 활용해 고소한 빵을 구워내고, 파스타 생면을 뽑는다. 올리브오일에 토마토를 넣어 두 시간 넘게 끓여 졸여내는 토마토소스 같은 기본 중 기본에 열성을 다한다.


집에 돌아오니 배운 대로 직접 해보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하다.


우선 스페니쉬 오믈렛. 미리 감자를 삶아 올리브오일에 버무려 휴지기를 갖는 것이 핵심포인트. 바쁜 아침 따끈하게 색다른 오믈렛을 내어 놓으니 식구들 모두 웃음 한가득.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 다음날 파스타 생면 만들기에 도전한다.


우선 계량이 정확해야 하니 이런저런 요리도구로 부엌을 한바탕 어지른다. 유튜브 요리선생님을 따라 밀가루와 계란이 잘 섞이도록 천천히 섞는다. 이 과정을 명상이라 생각하고 서두르지 않아야 맛을 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손가락에 붙지 않을 정도로 도우가 만들어지면 손으로 10분 정도 치댄다. 많이 치댈수록 밀가루 속 글루틴이 형성되어 맛있다니 열심히 치댄다. 팔이 좀 아파오려나 싶은 때, 마침 원하던 찰기가 느껴진다. 이렇게 만든 도우를 넉넉히 1시간 냉장고에 넣어 휴지기를 둔다.

이제는 파스타 면 뽑는 기계를 이용할 시간이다. 집에서 잘 쓰지 않는다는 지인의 기계를 빌려와 준비한 참이다. 우선 도우를 납작하게 두어 번 기계로 밀어 일정한 두께를 만든다. 그다음 면 틀을 끼워 원하는 굵기의 면을 뽑아내면 완성. 몇 번의 실패를 거듭했던 지인은 만든 면을 바로 조리하지 말고 다시 하룻밤 휴지하라고 조언한다. 밀가루의 탄성이 안정되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을 다루듯 조심스럽고 여유 있어야 한다.


다음날 면을 삶는다. 건면에 비해 익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 면의 감촉에 집중하고자 저민 마늘로 향을 살린 올리브오일에 치즈를 갈아 올려 간단히 완성.


한 입 먹자마자 사람들이 생면에 좋아하는 이유를 경험한다. 쫄깃하고 신선한 면발이 다른 재료의 변주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엄마 요리 교실 자주 다녀오라고 칭찬한다.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다음은 집에서 만드는 빵 되시겠다. 이스트를 잘 이용해야 한다. 뜨겁지 않은 미온수에 이스트를 넣고 이 미생물이 먹고 놀 수 있도록 설탕 반 티스푼을 섞어 젓는다. 공기가 통하는 보자기로 덮어 5분간 그대로 둔다. 다른 한편 계량한 밀가루와 소금 약간을 잘 섞는다. 이스트는 그새 부글부글 신나게 놀고 있다. 준비된 밀가루에 이스트 노는 물을 잘 섞어 충분히 잘 섞이도록 버무린다. 이 빵은 치댈 필요가 없다. 그냥 그대로 냉장고에서 하룻밤 휴지기를 거친다.


다음날 일어나 도우를 살펴보니 지난 밤보다 세 배는 커져있다. 유난히 이스트가 신나게 잘 놀았나 보다. 밀가루 반죽 안 기포가 빠질까 살살 달래 뜨겁게 달궈놓은 무쇠 그릇에 담아 오븐 온도 220도로 30분간 뜨겁게 구워준다.

겉은 바삭, 속은 보드라운 어여쁜 빵이 나온다. 어쩜 이렇게 하는 것마다 잘 되는 것인가. 그럴싸하게 작품들이 나오니 식구들 앞에서 어깨뽕이 잔뜩 들어간다.


'잘할 수 있으면서 왜 그간 시도하지 않았을까.'

사느라 바빴다. 밀가루 반죽을 밀고 휴지기를 갖고 다시 매만지는 이런 정성 어린 과정을 감당하기에 그간 성격은 급하고 인내심이 없었다. 이제는 오히려 과정마다 서두르지 않고 제 리듬을 따라가는 과정들이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그렇게 이것저것 신나게 만들어 먹으며 일주일을 보내고 나니 단점도 있다. 평소보다 밀가루 음식 많이 먹으니 한주 내내 속이 더부룩하고 불편하다. 아무래도 오장육부에무리였나 보다.

이제 매일은 어렵고 매주 한 번, 직접 빵이든 파스타든 만들겠다고 선언하니 남편이 엄지척으로 대답한다. 입은 즐겁고 체중은 더 해가는 영국 사는 김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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