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들어서면서 기도에 작은 먼지가 들어간 듯 간질간질 기침이 난다.
급기야 머리가 울리고 배와 등에 뻐근한 느낌이 들 지경에 이르렀다.
필요하다는 약을 처방받아 꼬박 챙겨 먹는다.
몸을 따뜻이 하고, 충분하게 쉬면서 회복하는데 집중한다.
이즈음이면 감기가 나아야 하는데,
나을 듯 낫지 않는다.
평소 좋아하는 책도 읽히지 않고, 즐겨하던 글 한 줄 써지지 않는다.
먹고 싶은 것도 딱히 없다.
이러면 안 될 것 같아 뭐든 하나씩 꾸역꾸역 들춰보고 기웃거려 보지만,
그것도 그때뿐이다.
어느 날, 일 마치고 가볍게 남편과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툭하고 터져 나온다.
“나 요즘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모르겠어.”
말이 되어 나오는 진심에 깜짝 놀란다.
나도 모르게 쌓여온 생각들이 둑 터지듯 비어져 나온다.
난데없는 고백에 ‘나보고 어쩌라고’ 항변한다든가,
‘다 이해해’ 라며 마음에 닿지 않는 위로라도 했다면,
네 탓이라도 해 보겠다.
남편은 묵묵히 내 말을 듣는다.
그리고 대답한다.
“인생은 벌 받 듯 참아내는 게 아니야.
난 네가 그런 마음인지 미처 몰랐어. 말해줘서 다행이야.”
처음부터 그랬다. 내 생각에 대해 판단하려 들지 않던 사람.
‘그럴 수 있어.’ ‘마음에 두지 마’라는 말로 위안을 주던 사람.
감정의 가속페달을 밟다가 갑자기 툭 페달을 놓아버린 듯하다.
끓어오르던 마음이 가라앉으니 더없이 고요해진다.
먹고 싶지 않은 음식 먹어가며 빨리 기운 차리자 애쓰지 말고,
매일 쓰던 글 한 줄이 써지지 않는다고 안달복달하지도 말자.
그저 가만히 있는 시간, 그래도 괜찮다.
지나고 보면 이렇게 힘을 모아 또 살아지지 않더냐.
오늘 아침, 마당 낙엽 쓸어 담으려 슬슬 몸을 움직인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다람쥐가 놀러 왔다.
먹을 것을 찾느라 내가 바라보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다.
“겨울나기 준비하는구나. 그렇게 신나니?”
나도 너처럼 겨울 날 준비하고 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