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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반하별 Nov 08. 2023

내 손으로 무엇을 해본 바가 있던가?

욕실도 나의 인생도 내 손으로 따뜻하게 꾸미기 연습 중

풍수지리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집안 부엌과 화장실 같이 물이 닿는 곳은 음기가 강하고 음습하다는 말을 들었다. 원초적인 휴식을 취하는 곳답게 기운을 중화하고 따뜻한 분위기여야 한다. 항상 화분을 놓아 푸른 기운을 담고 알록달록 예쁜 타일들로 상쾌하고 밝게 꾸미고 싶다.   


 

그동안 많이도 이사를 다녔다. 국제 이사도 여러 번. 이제는 수익형 부동산이 아닌 우리가 직접 살 집을 찾기로 한다. 집 구매할 때 좋은 위치와 깔끔한 내부 중,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없다면 위치를 선택하기로 결정한다. 꿈에 그리던 사과나무가 있는 집을 찾았고, 아마도 내년 초면 이사를 가지 싶다. 영국은 한국과 달리 매매 과정만도 4-5개월이 걸리고 이사까지는 총 6개월 정도 예상하고 있다. 집주인이 이사 갈 집에 문제가 생기면 그마저도 더 길어질 수 있다. 이치 밝은 영국사람들이 보증금 제도 없이 주택 매매를 하는 시스템은 지금도 이해하기 어렵다.   


 

이사를 하고 나서 집이라도 고치려고 하면 이것은 또 하나의 허들이다. 바로 작업에 들어갈 전문가를 찾기도 어려울뿐더러 그 인건 비용이 만만치 않다. 뿐만 아니라 그 어느 때보다 더 내 공간을 내 손으로 꾸미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내부가 낡아 손을 봐야 하는 집을 덥석 선택하기까지 뭔가 믿을 구석이 필요했다.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은 믿을 구석은 바로 나 자신이다.  


 

올 하반기부터 직접 시공하는 연습을 하는 성인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목재 프레임 작업과 벽돌 시공 연습을 끝내고 이번에는 타일 시공을 배워본다. 대 여섯 가지 종류의 타일이 주어지고 그중에 골라서 말끔히 닦여 있는 나무 보드에 작업 연습을 해보는 수업이다.  


 

원래도 밝고 이쁜 타일 작업을 하고 싶었던 나는 욕심껏 가져올 수 있는 패턴과 다양한 사이즈 타일을 집어온다. 각각 모양이 다른 타일들을 일사불란하게 각을 맞춰 배치하려고 하니 생각보다 쉽지 않다. 끙. 역시 실전은 항상 생각과는 다르다.


접착제 대신 회벽칠을 하기 위한 흙이 준비되고 톱니모양으로 생긴 흙손으로 그 접착 흙을 고르게 펴 바른다. 그 위 타일을 붙이고는 잠시 압력을 가해 누르는데, 접착 흙이 타일의 무게에 비해 부족하면 떨어져 깨지고는 한다. 전체 그림을 보지 않고 타일과 타일 사이에만 집중하면 전체 균형이 맞지 않기 쉽다. 무엇보다 남는 공간이 애매해지면 전체 밸런스가 깨지니 주의해야 한다.


강사님은 타일 절단기 사용법을 보여주신다. 다이아몬드는 아닐 것이지만, 아주 단단하고 날카로운 광물이 달린 핀으로 고정쇠 위 타일 표면에 몇 번 긁어 흠을 낸 후 압력을 가해 원하는 모양으로 자르는 작업을 한다. 우선 긁는 소리가 싫어 어설프게 몇 번 표면을 긁다가 힘을 줘서 깨뜨린 타일이 몇 장이나 된다.  무엇이든 하려면 흉내만 내면 안 된다. 제대로 해야 한다. 손톱으로 유리 긁는 소리가 귀를 괴롭힐지라도 말이다.


 

퍼즐 맞추듯이 공간들을 채워 가다 보면 그 나름의 성취감과 평안함이 있다. 내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보는 일은 책을 읽으며 사색하는 것만큼이나 몸과 마음을 살찌우고 마음을 평안하게 해 준다. 함께 수업에 참여하는 친구들과 도란도란 얘기하면서 작업을 하다 보니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많아진다. 다들 자신의 집을 잘 꾸며 보고 싶은 중장년층이 모였다.  


 

나이 40, 계절로 치면 가을로 접어들어 그동안 꽃 피우고 살아왔던 일들을 추수하듯 거두고 싶은 나이인지도 모르겠다. 돌아보면 인생에서 내가 직접 무엇을 만들어 본 바가 많지 않다. 그저  나보다 잘하는 사람의 손을 빌리면 너무나 이쁘게 잘해주는데 내가 굳이 나설 필요를 느끼지 못했었다. 그런 생각의 끝은 언제나 돈을 더 벌어야겠다는 마음에 닿는다. 돈보다는 경험.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다면 조금 서툴러도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 온전히 나의 본질을 찾고 싶어졌다.


 

올해 초부터 의식적으로 환경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고 만나는 사람들 마저 바꿔가고 있다. 평소 경험해 보지 못한 환경 속에 의식적으로 자신을 노출시켜 본다.



직접 손으로 만드는 재미를 느껴본다.

내가 만든 따뜻한 공간 안에서 삶을 더욱 건강하게 삶을 살 찌워나가 보고 싶다.


그러므로 오늘도 타일 붙이기 작업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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