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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반하별 Nov 03. 2023

핼로윈, 이제 재미없다네요.

Trick or Treat, 말레이시아에서 입문하고 영국에서 졸업합니다.

개인적으로 핼러윈 행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한창 놀러 다니던 젊은 시절에도 거리에 뭔가 꾸며져 있으면 그때인가 보다 했지 별 관심 없었던 서양문화였다.


 

아이들이 생기고 엄마가 되면 뭐든 새로운 경험을 하도록 해주고 싶다. 핼러윈도 그런 경험 중의 하나로 며칠 전부터 알맞은 크기의 호박을 사다가 조각을 하고, 이런저런 그림을 그려 붙이고, 마땅한 복장이 없으면 그 옷 준비하느라 부산했다.  


 

2013년 만 4세, 2세인 두 딸을 데리고 말레이시아 땅에서 살기 시작했다. 새로운 나라는 낯설기도 하지만 다른 환경 덕에 매일 색다른 날들의 연속이다. 우리가 살던 콘도는 주재원 나온 어린아이들 동반 가족이 제법 많았다. 그중 한 터줏대감급 이웃이 매년 핼러윈 행사를 주관하고 있었던 듯하다. 이웃마다 일사불란하게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느낌으로  진행할지 다들 아는 눈치라 새로 이사 온 나는 옆에서 이래저래 눈치껏 따라 하느라 바쁘다.  


 

총 36개 층으로 구성된 이 콘도 미니엄은 각 층마다 4세대가 거주하고 있다. 거주 세대 중 참여를 원하는 유닛 번호를 체크해서 모두가 확인할 수 있도록 1층 엘리베이터 옆에 보드가 설치되었다. 제법 참여자가 많아 층마다 한 두 집은 적혀있었다. 엘리베이터는 총 4대. 룰을 정해서 홀수층 / 짝수층 가는 엘리베이터를 정했고 저녁 6시부터 아이들의 Trick or Treat 행사가 시작되었다.  


 

이런 행사가 좋은 이유는 각자 문화가 다른 사람들이 모였음에도 하나의 테마로 함께 어울릴 수 있다는 점이었다. 부모에게 안겨 다니는 아기부터 성인들까지 모여보니 제법 많다. 귀여운 충치 복장도 있지만, 꿈에 나올까 무서운 귀신 복장들도 있다.


 

무척 부산하게 위아래 이동하는 아이들이 보인다. 대부분 아빠들은 집에서 사탕 나눠주는 일들을 도맡고 엄마들이 아이들과 돌아다닌다. 오며 가며 이웃끼리 인사하고 농담하고, 행사로 이웃 간의 서로 친해지는 것은 덤이다.  


 

재미있었는지 그 이후로 아이들에게 핼러윈은 당연한 연례행사가 되었다.


 

2023년 아이들과 핼러윈 행사하는 것도 이제 십 년이 넘어간다. 영국 문화인 Bonfire와 미국 문화인 Halloween이 비슷한 시기에 항상 겹치는데 영국에서도 역시나 소비문화의 상징인 핼러윈이 대세다. 이곳은 호박 밭에서 원하는 모양을 직접 골라 사 오는 곳들이 있는데, 운이 좋아 날씨가 화창하면 가을의 낭만을 느끼기에 안성맞춤이다.


영국 헬로윈 시즌 호박밭에서 by 세반하별

올해는 운이 좋았어서 가을빛 물들어가는 전경과 파란 높은 하늘, 알록달록 다양한 색감의 호박들이 어우러져 눈호강을 누렸다. 이제는 청소년들로 성장한 딸들은 스스로 알아서 복장도 화장도 하고, 귀신과 호박모양의 과자도 만들고 신이 났다. 아이들이 알아서 준비하니 이렇게 편해졌는데도 엄마는 이제 슬슬 게으름이 나기 시작한다. 그래도 할말하않. 아이들 옆에서 묵묵히 장단은 맞춰주고 있었다. 올해 핼러윈에는 딸이 친구를 초대했는데 그 엄마가 함께 동행하기로 한다.  Trick or Treat! 동네 아이들이 부모들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이 귀엽다. 엄마들은 우산 하나씩 받쳐 들고 수다 떠느라 바쁘고, 한 바퀴쯤 돌았으니 집에 가서 따뜻한 차 한잔이 간절하다. 좀 지루하기도 하고 예전 핼러윈은 신경 안 쓰던 그때가 그리운 마음도 든다.  


 

이제 나눠줄 사탕이 없다는 집들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하고 두 엄마는 아이들을 독려해서 집으로 돌아온다. 차 한잔 나누면서 아이들 학교 얘기, 서로 일상 얘기 나누는 시간이 생겨 이런 순기능은 좋다. 아이들이 혼자 등하교를 시작하고 나니 부모들과 만나는 기회가 거의 없기에 이런 순간들이 더욱 소중해진다.


 

딸 친구는 올해 캐나다에서 영국으로 이사 온 친구였는데, 규모가 크고 화려했던 캐나다 핼러윈에 비해 영국 핼러윈은 조용하니 재미가 없다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핼러윈 하나만이 아니라 영하 40도를 넘나들던 날씨, 갑자기 이사 오면서 우선 작은 집을 구하다 보니 예전 널찍했던 캐나다 집도 그립고, 무엇보다 같이 이사오지 못한 셰퍼드 개가 무척 그리운 듯하다. 나 또한 말레이시아에서 영국으로 이사 오면서 적응하는데 여러 가지 과정을 거쳤던 만큼 함께 이야기 나누며 위로 아닌 위로를 한다.  


 

 

잠자리 들기 전, 우리 집 둘째 딸이 내년부터는 사탕 받으러 다니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가가호호 방문해서 사탕 하나씩 받는 것이 지루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아이들도 어릴 적만큼 재미있지는 않았나 보다. 이심전심 내년부터는 Trick or Treat은 하지 않기로 가족 모두 합의를 한다. 그러면서 호박 데코레이션과 과자 굽기는 계속하자는데 동의한다.  


 

삶은 항상 변함없이 영원한 것 같지만, 사실은 찰나 그 시기를 지나가는 여행이란 말이 생각난다.

주어진 시간을 충분히 누리면 헤어지는 그 순간에도 후회가 없다. 핼러윈이 나에게 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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