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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반하별 Nov 18. 2023

거울에 비친 엄마 얼굴

그녀의 기질은 그대로 나에게 대물림되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일을 하다가 어느 순간 지구 공전을 멈춘 듯 멍한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주로 양치질을 한다. 내가 좋아하는 민트향 치약을 쭈욱 짜서 한 입 가득 치카치카 거품을 내고 있노라면, 온몸 샤워할 때와 같은 청량감이 느껴져서 기분이 좋아진다. 나를 현실로 다시 이끌어 주어서 민트향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머리모양도 오늘따라 삐쭉삐쭉 제 개성을 살리려는지 각자 방향으로 흐트러져 있다. 오후 약속에 나가려면 머리를 좀 감아야 하나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가 눈앞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엄마!”


 

내가 기억하는 어머니는 49 아직 너무나 고운 나이에 그대로 서 계신다. 예상치 못한 암이었고, 손을 써 볼 수도 없는 4기 말기였었다. 되려 늦었다면 담담히 받아들여야 했던 것이었을까. 마지막 최선의 방법이라고 임파선 제거 수술을 받으시고는 그다음부터는 쇠약해지는 급행선을 타셨다.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엄마와의 만찬은 종로 5가 한복집들이 모여있는 시장 끄트머리에 있던 우렁된장집이었다. 그날따라 어쩌다 그곳에 닿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주 오래된 옛날 탁주집 같은 스타일이었고 탁자도 몇 개 놓여 있지 않은 협소한 곳이었다. 보글보글 뜨겁게 열을 올린 뚝배기에 된장이 자작하니 배인 우렁이 한가득 소담히 담겨 따뜻한 흰 밥 한 공기와 함께 나왔다. 엄마랑 나는 “우와 맛있다”, “어떻게 이렇게 짜지 않고 맛있지?” 감탄을 연발하며 허겁지겁 먹었다. 평소에 밥 한 공기를 다 못 먹는 두 사람이 그날은 한 공기를 더 추가해서 반씩 나눠 먹기까지 했다. “배가 찢어질 것 같아” 둘이 마주 보고 하하 웃었다. 그 한 끼가 소화가 될지, 목으로 음식이 넘어갈 수 있는지 고민 없이 함께 한 마지막 식사가 될지는 꿈에도 몰랐다. 그날도 배가 찢어지게 부르다 하시며 소화제를 사 드셨었다는 것은 뒤늦게에서야 병 악화의 전조였구나 깨달았을 뿐이다.


 

이후에 엄마는 눈에 띄게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주어지는 음식이 점점 유동식으로 변해갔고, 나중에는 멀건 밥물이 나와도 삼키기를 힘겨워하셨다. 몸은 떨어진 가을 나뭇잎처럼 바짝 말라가기 시작했고, 그 곱던 엄마뺨이 움푹 들어가기 시작했다.


 

병실은 그 분위기 자체에 압도되어 안 아픈 사람도 아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멀뚱히 앉아있다가 엄마에게 한껏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나랑 엄마랑 많이 닮았다는데 어딜 닮았지?” 그랬더니, “닮기는 뭘 닮아. 너 나 하나도 안 닮았어” 그러셨다. 내가 자신의 운명을 닮을까 겁나 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병원에서는 더 이상 해줄 것이 없다는 진단이 나오고 병원 생활보다는 통원이 좋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내가 엄마를 모시고 통원차 병원에 가는 날. 콜택시가 아직 도착 전이라서 다리 힘이 없는 엄마는 집 대문 앞에 앉으시고 나는 이 택시가 언제나 오려나 목을 빼고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저만치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인들이 보인다. 분위기가 결혼식 참여하러 가는 가족들인 것 같다. 나는 택시 올 방향만 바라보고 있는데, 엄마가 조용히 읊조리시는 소리가 들린다. “ 시집갈 때까지는 있어줘야 하는데....” 무슨 그런 말씀이냐며 타박 아닌 타박을 하고 도착한 택시에 탑승을 돕는다. 그날따라 택시에 앉아 가는 것도 힘들어하시며 고개가 한쪽으로 기울었던 날이었다. 엄마는 알고 계셨다. 정말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엄마랑 나는 체구도 비슷해서 같은 옷을 나눠 입기도 했고, 어디 가면 대장 노릇하는 기질이 있어서 맨날 애들 학부모 반장을  한다거나 지역 주민 활동 그룹을 만들고는 했다. 엄마 살아생전에 한지 공예 작가로 데뷔도 하시고 예쁜 거 만드는 거 좋아하시더니, 내가 요즘 딱 그렇다.


 

지금은 옆에 계시지 않지만, 그녀의 기질은 그대로 나에게 대물림되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오늘도 열심히 할 수 있는 일 하면서 살고 있어요 엄마. 만난 신랑이 함께 한지가 20년인데 아직도 나 좋다고 그래. 아이들 잘 키우면서 좋은 생각도 많이 하고 살아요. 나 잘하고 있지요?"


 

조만간 내가 더 나이 들면 엄마를 닮아 늙는지 어떤지 기억할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는 게 서글프다. 나의 엄마는 영원한 마흔아홉 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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