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반하별 Nov 21. 2023

해외살이의 가장 큰 고민은 가족과의 이별이다.

함박눈(雪)을 보며 떠오르는 이별과 치유의 시간

코타키나발루섬에서 크리스마스 휴가를 즐기던 중 한국에서 전화를 받습니다. 갑자기 아빠 건강 상태가 나빠지면서 아무래도 오래 버티시기 힘드실 것 같으니 빨리 귀국하라는 연락이었습니다. 당시 말레이시아에서 사는 중이었기에 전화로 아버지의 상태를 정기적으로 전해 듣고는 있었지만, 오랜 기간 지병이 있으셨던 터라 오늘과 내일이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짐작이 이번에는 통하지 않는 듯했습니다. 집안의 장녀인 나는 그 길로 인천공항행 티켓을 사서 출국에 나섰고, 어린 딸아이 둘과 남편은 말레이시아 집으로 돌아가 대기를 하기로 합니다.  


 

 환승까지 총 여섯 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내린 인천공항. 제1 터미널 문이 열리자 차가운 바람이 쌩하니 불어옵니다. 예정에 없던 준비 없는 귀국이었기에 얇은 옷가지를 걸치고 있던 나는 정신이 번쩍 드는 추위를 경험합니다. 눈이 왔었는지 도로에는 군데군데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 있습니다. 혹시라도 아빠 임종 순간을 놓칠까 비행기부터 조마조마했던 마음, 더 빨리 병실에 가보겠다는 급한 마음에 공항에서 서울로 향하는 택시를 탔습니다. 눈 때문이었을까요 교통체증으로 한참을 서울 강변북로에 갇혀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옆 버스전용차선을 달려가는 버스들이 보입니다. 제대로 상황을 판단하지 못하고 그저 당황한 나를 발견합니다. 그 택시 안에서 스스로 심호흡을 하며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혀 봅니다. 그렇게 어렵게 병실에 들어선 순간 예전 아버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이미 혼수상태로 옅은 숨만 고르고 계신 모습이 보입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귀 신경은 살아있다는 말을 굳건히 믿고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합니다. 병원 도착하고 딱 열 시간여만에 아버지의 임종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일사불란하게 장례준비를 하고 나는 남편에게 귀국할 것을 알립니다. 딸 둘과 남편이 출발하는 그 시간 말레이시아 현지에는 스톰이 분다는 소식을 접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탑승 대기 중 예정됐던 비행기는 출발 취소가 되고, 공항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기다려 다음날 새벽 비행기를 타고 남편과 두 아이들이 한국에 도착합니다. 다들 피곤하고 일교차가 크다 보니 컨디션은 엉망이지만, 밀려드는 문상객을 접객하느라 모두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직 여섯 살, 여덟 살인 아이들은 무슨 일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니 그저 신기한가 봅니다. 손님치레하는 동안 가족들이 쉴 수 있도록 마련된 뒷방에서 오래간만에 만난 가족들과 소꿉놀이하듯 잘 노는 모습을 보며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발인하던 날, 작은 딸이 다가오더니 묻습니다. “그럼 할아버지는 어디로 가시는 거야?” “이제 하늘나라로 가실 채비하시는 중이란다” 대답합니다. 화장식을 마친 후 조그만 단지에 담겨 나오시는 분이 아버지라는 생각에 기가 막힙니다. 사실 어머님을 먼저 보내드리며 이미 치러봤던 상황이지만, 여전히 적응되지 않습니다. 작은 아이도 그제야 분위기가 이상한지 울면서 안겨옵니다.  




 아버지를 장지에 모시고 일주일. 고국의 가족들을 아이들이 슬픈 마음보다는 좋은 마음으로 한국을 기억하고 떠났으면 하는 바람으로 아이스 스케이트장에 데려갑니다. 사촌 동생들과 함께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노는 시간을 가지고, 맛있는 음식도 나눠 먹습니다. 우리 네 가족이 다시 말레이시아 집으로 돌아가는 날. 다음날 새벽 출발 비행기였는데 그날 밤도 눈바람이 몰아치는 악천후였습니다. 가족들과는 작별 인사를 나누고 공항에서 멀지 않은 호텔에서 1박을 하면서 비행시간을 최대한 맞추기로 합니다.



 호텔 방에 앉아 꿈만 같던 며칠 간을 떠올리며 창밖을 바라보는데, 함박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합니다. 내일 출국을 할 수나 있겠냐는 걱정이 되기 시작할 즈음, 물끄러미 창밖을 보던 남편이 아이 둘을 데리고 호텔 밖으로 나갑니다. 어려서부터 열대 기후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하얗고 뽀송한 눈은 신기함 그 자체였습니다. 눈덩이를 만들어 아이들과 엄마 아빠는 눈싸움을 시작합니다. 미끄러지며 엉덩방아도 찧어보고 눈을 입술로 맛보기도 합니다. 서울 대기오염을 생각하면 아니 될 일이지만, 뭐 한 번은 그냥 두기로 합니다. 한 시간여 눈싸움하며 홀딱 젖어 들어와 곤히 잠을 청하는 아이들을 보니 이제는 마음을 조금은 가벼이 출국할 준비가 된 것 같습니다. 눈이 밤새 왔음에도 다행히 비행기 출국은 예정대로 이뤄졌고, 그렇게 다시 추운 겨울에서 무더운 열대기후로 공간 이동을 합니다.



 환경이 변해서였을까요. 며칠간의 이별, 장례 과정, 발인, 가족들과의 시간. 그저 다 꿈만 같습니다. 아이들 학교 등교 시작이 바로 입국 다음날이라 좀 정신이 없었던 것이 차라리 도움이 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꼭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일상을 지내다가 일주일쯤 후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납니다.  

 이제는 부모님 모두 세상에 안 계시는구나. 동생들의 마음은 또 얼마나 헛헛할까. 그 마음을 느꼈는지 남편이 옆에서 꼭 안아줍니다. 시리도록 하얗던 눈(雪)은 그렇게 해야 했던 이별, 눈과 함께한 가족 간의 치유의 시간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거울에 비친 엄마 얼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