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똑. “Madame it’s time to go~”
깜깜한 새벽 아주 조심스럽게 투어 가이드분이 방문을 두드립니다. 이곳은 유네스코 지정 수천 개의 파고다(미얀마식 불탑을 이르는 말)가 모여 있는 구 바간시내입니다. 바로 전 날, 후덥지근한 날씨 속에서 일곱 살 그리고 다섯 살 두 딸을 데리고 사찰을 기어오르기를 여러 번, 숙소에 돌아와서는 시원한 맥주 한잔을 마시는데 천국이 따로 없습니다. 다음날 해돋이 투어가 예약되어 있었지만, 남편과 나는 시원한 맥주를 거부할 수 없어 제법 많은 양을 마시고 잠이 들었던 참이었지요.
작은 오두막들이 모여있던 숙소, 얄팍한 나무 방문 밖 투어 가이드분이 어슬렁 거리시는 소리가 다 들립니다. 곤히 잠든 두 아이를 남편과 나는 하나씩 둘러업고는 소형 승합차에 몸을 싣습니다. 30분 정도 모래 먼지를 일으키면서 달립니다. 울통불퉁 흔들리는 차를 타고 가는 길에 어젯밤 숙취가 오르고 화장실이 급해집니다. 바간 파고다 단지 앞에 도착합니다. 정문을 통과하고 분명히 이즈음이면 화장실이 있을 거라는 것을 짐작합니다. 진땀이 나기 시작하던 나는 다행히 아침의 평온을 맞으며 화장실 하나만으로도 지옥의 경험을 할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아이들과 남편은 그 사이 물과 사탕 그리고 요깃거리 몇 개를 사놓았습니다. 산이든 어디든 아이들과 걸어 오를 때면 사탕은 마술 같은 힘을 갖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피곤하던 아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칭얼거리기 시작합니다. 사탕 하나씩 물려놓으니 오물오물 그 달콤함에 사원 언덕을 오르는 수고는 잊혀 갑니다.
세상에 어쩜 이리 많은 파고다를 지을 생각을 했을까요. 화려한 금장의 태국식 불교, 웅장하고 거대한 중국식 불교에 비해 미얀마식 불교는 소담하고 그 색채가 단조롭습니다. 선사나 부처상들도 그 크기가 아담하고 간결합니다. 바간 시내 파고다를 자세히 보니 그 단조로움 안에 표현된 문양들이 무척 아름답습니다.
흙으로 지어진 파고다들은 그간 무너지고 보수가 필요한 경우가 많지만 기금의 문제인 듯 여의치 않아 보입니다. 지진도 종종 일어나는 터라 더 주기적인 보수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가이드분이 딱 맞는 시간에 움직이도록 도와주신 덕인지 파고다 정상에 도착하자마자 저 멀리 해가 떠오르는 기운이 느껴집니다. 칠흑같이 어둡던 하늘은 푸르스름하게 밝아지고 슬쩍 붉은 기운이 감돌기 시작합니다. 올라보니 파고다를 이곳에 지은 이유를 알겠습니다. 해가 뜨는 광경이 그저 경이롭습니다. 삼삼오오 모여 있던 관광객들은 탄성을 지르기도 하고 조용히 노래를 부르기도 합니다. 칭얼대던 아이들도 어느 순간 조용히 그 광경에 흠뻑 빠져 듭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열기구가 뜨기 시작합니다. 더 높이 올라 해가 뜨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사람들이 제법 거금을 들여 경험을 산 결과입니다. 광활한 자연 속에서 인간과 자연 그 날것의 매력이 대단했습니다. 해가 완전히 뜨고 난 후 우리 가족은 파고다를 떠나 바간 전통음식점에 들어갑니다. 쌀을 주식으로 하고 반찬들이 나오는 모습이 우리네 마을회관 뷔페 같습니다. 나무 그릇에 심심하게 만든 채소들, 생선구이 그리고 하얀 쌀밥이 나옵니다. 간결하고 소담하게 딱 미얀마 불교 스타일입니다.
새해면 첫 해오름을 보겠다고 종종 산에 오르던 나였지만, 바간의 이색적인 풍경과 함께 그날 새벽의 해오름은 오랫동안 기억할만한 장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