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사람들이 how are you (안녕하세요) 다음으로 가장 자주 쓰는 말이 아닐까 싶다.
사람이 둘 이상 모이면 제일 먼저 차 한잔을 서로에게 권하고 그러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어김없이 우리고 난 차 티백이 산처럼 쌓이고는 한다. 차의 고장 영국 답게 커피보다는 차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고, 하루동안 시간이 날 때마다 홍차를 마신다.
며칠 전 미국의 한 과학 교수가 펴낸 책 “Steeped-The chemistry of Tea(의역: 홍차의 화학 작용 - 티 우려내는 비밀)”이 영국민 사이에서 큰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저자는 책에서 찻 잎과 물 그리고 첨가 성분의 화학적인 작용을 과학자의 입장에서 설명하면서, 완벽하게 맛있는 차를 즐기려면 약간의 소금을 차에 타서 홍차의 씁쓸함을 잡아야 한다고 책에서 언급했다.
차에 소금이라니. 영국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뜨거운 물로 찻잎을 우려낸 후 약간의 우유를 가미해서 즐기거나 레몬이나 설탕 또는 꿀을 소량 첨 해서 마시기는 하지만 소금은 들어본 적 없다. 차의 온도나 우유의 함량 등은 개인 취향에 따라 나름 민감한 요소다. 영국민들의 항의가 잇따르자 보다 못한 주영 미국 대사관은 트위터를 통해 관련 공식 언론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내용은 이렇다.
“오늘자 언론에 공개된 미국 교수의 완벽한 차 만드는 레시피는 영국과 우리(미국)의 특별한 관계를 곤경에 빠지게 했습니다. 차茶는 영국과 미국을 잇는 동료애의 만병통치약으로 두 국가를 잇는 신성한 유대의식입니다. 이러한 논란이 영-미간 특별한 동맹의 근간을 흔드는 것을 그대로 놔둘 수는 없습니다. 주영 미국대사관은 차에 소금을 넣는 것이 미국정부가 권장하는 방법이 아니며, 이는 절대 미국의 기준이 되지 않을 것임을 밝힙니다. 차에 관한 한 양국 간의 굳건한 동맹을 세상에 보여줍시다. 주영 미국대사관은 홍차를 전기레인지에 데워 마시는 기존의 방식을 준수할 것입니다.”
성명의 취지는 알겠으나 미국 대사관이 기존 차를 즐기는 방법으로 전자레인지에 데워먹는다고 하니 고개가 갸우뚱하다.
2009년 뉴욕을 방문했던 때는 영하 15도의 추운 겨울날이었다. 몸을 녹이려고 들어간 카페에서 잉글리시 블랙퍼스트라 불리는 아삼차를 주문했다. 제법 괜찮은 카페로 보였지만 막상 서빙된 모습은 미지근한 온도의 물 주전자 하나 그리고 힙톤 차 티백 하나였다. 물 온도가 뜨겁지 않으니 찻물이 제대로 우러나지 않았고, 웨이터에게 뜨거운 물을 요청하니 주문을 잊었는지 함흥차사다. 그래도 팁은 꼭 받으니 속 터질 일이었다. 미국은 커피 문화여서 그런가 보다 하면서 안 마시느니 못한 한 잔으로 겨우 목을 축이고 나왔던 기억이 난다.
논란이 거세지자 이 책의 저자는 너그러운 영국민들의 이해를 바란다면서 자신이 얼마나 차를 사랑하는 사람이며 이 모든 논리는 과학적 실험의 결과임을 이해해 달라는 인터뷰를 한다.
어떤 매체는 1773년 보스턴 차 사건이 미국 혁명에까지 이른 역사를 언급하면서 차(茶)에 관한 사안이 두 나라 간 얼마나 민감한 사안인지를 강조하기도 한다. 이쯤이면 이곳 차茶 문화와 사랑은 영국 문화 자존심이 아닐 수 없다.
가끔 딸과 길을 걷다가 예쁘장한 카페가 나오면 들어가 차茶를 마시고는 한다. 오후라면 애프터눈 티세트도 참 좋다. 이 곳 사람들은 흔히들 점심식사를 샌드위치 등으로 가볍게 먹는데, 그 양이 우리 모녀에게는 저녁 식사까지 기다리기에는 좀 출출한 양이다. 편안히 자리에 앉아 따뜻한 홍차에 우유를 살짝 넣고 스푼으로 휘휘 젓는다. 보기 좋게 담긴 스콘 또는 케이크가 클로티드 크림, 수제잼과 함께 서빙되어 나온다. 간단히 배를 채우면서 바쁜 일상 중에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기는 매력, 영국 차 문화를 또 이렇게 경험으로 이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