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년 전 금요일 저녁 퇴근 시간. 회사 근처 구공탄에 고기 구워주는 집이 있었다. 퇴근하고 그 연기 자욱한 식당에 들어서면 주중의 스트레스를 벗어나 주말의 시작이었다.
긴장 풀고 소주 한 병과 시키던 고정 안주는 목살구이와 돼지 껍데기 1인분이었다. 식감을 놓치지 않을 만큼 적당히 얇게 자른 껍데기를 불판에 올리면 동그랗게 말렸다가는 통통 튀는데, 델까봐 피하면서도 연신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근거가 명확하지 않지만, 돼지 피부는 콜라겐이라 피부에 좋을 거라면서 하나씩 집는다. 바삭하게 구운 그 한 점과 함께 소주 한잔을 마시면 한 주간의 피로가 싹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영국에 와서 나에게 익숙한 식재료들을 찾아다녔다. 이곳 사람들도 돼지 껍데기를 즐긴다. 포크 크래클링(Pork Crackling)이라고 부르는데 껍질 있는 돼지고기 뱃살을 사서는 표면에 소금과 후추 그리고 허브가루들을 잘 섞어 바른 뒤, 오븐에서 바짝 굽는다. 껍질은 바삭하고 고기는 촉촉하게 즐기는 돼지고기 스테이크다. 바삭한 껍데기의 식감이 맛과 재미를 더해준다.
아예 껍데기만 따로 팔기도 한다. 나는 장 보러 갔다가 껍데기가 보이면 한 팩씩 집어오는데, 1파운드(약 1700원) 면 손바닥 만한 껍데기 세 장이 포장되어 있다. 얇게 저며서 이렇게 저렇게 궁리해서 불에 구워보는데 옛날 고깃집에서 먹던 그 맛이 나지 않는다. 양념도 달랐을 것 같고 무엇보다 가정용 가스스토브와는 비교되지 않을 숯불의 향과 열기가 입혀지지 않아서 인 것 같다. 추억이 더 아름답게 기억되어서 일 지도 모르겠다. 대신 영국 내 집에서 영화 보면서 수제 돼지껍데기를 오도독오도독 씹는 맛이 나쁘지 않다.
영국 전통 펍 스낵 돼지 껍데기
안주와 함께 즐기는 한국 술문화와는 달리 영국 펍(술집)문화는 안주개념이 없다. 정식으로 식사를 한다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안주로는 땅콩이나 감자칩 등이 있는데 내 입을 즐겁게 해주는 안주는 포크 스크래칭스(Pork Scratchings)라고 불리는 돼지껍데기 과자다. 사실 맛은 좀 실망스럽다. 돼지 껍데기 안쪽에 비계를 제거하지 않고 굽다 보니 특유의 고소함이 적고, 잘 못 걸리면 그저 소금기운 가득한 기름덩어리 일 때도 있다.
종종 동네 맥주집에 우리 집 강아지 코코도 함께 가는데 이 과자 봉지에서 나는 돼지기름 냄새를 맡는 순간, 나는 코코에게 둘도 없이 친해지고 싶은 강아지 주인이 된다. 슬쩍 한 조각 건네주며 맥주 한 모금을 넘기 노라면 코코도 나 자신도 행복한 토요일 오후 시간이 된다.
나는 돼지고기 부속물들, 그 중에서도 특히 순대를 좋아한다. 순댓국, 순대볶음,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는 순대. 순대라면 무엇이든 사랑하고 즐기는 식성의 소유자다.
영국에 와서 보니 블랙푸딩이라는 순대 사촌 격인 음식이 있다. 돼지 창자에 당면과 피를 섞어 만든 것이 순대라면, 영국 블랙푸딩은 당면 대신 귀리나 보리 같은 곡식에 돼지 핏물을 넣어 만든 말하자면 소시지 다. 영국 전통 아침식사에도 항상 자리하는데, 젊은 세대보다는 전후 세대인 분들이 즐겨 드신다.
한 팩에 동그란 블랙푸딩 4쪽이 들어있는데, 가격이 2파운드(한화 3400원) 정도라서 부담스럽지 않게 즐길 수 있다. 영양적으로도 야채와 곁들인다면 아주 훌륭한 식사 한 끼가 된다.
영국에서 만난 순대 비슷한 블랙푸딩
보통 영국 사람들은 달구어진 팬에 블랙푸딩의 앞뒷면을 바삭하게 굽고 계란 프라이랑 베이컨 한 조각 그리고 구운 토마토 등을 곁들여 먹는다. 시아버지는 매운 영국 머스터드소스를 한 스푼 얹어 드시는데 내 입맛에도 잘 맞는다. 아들들은 아무도 블랙푸딩을 즐기지 않는데 며느리가 맛있다고 하니 ‘먹는 친구’ 생겼다고 무척 반가워하셨다.
내가 집에서 만드는 블랙푸딩은 조금 다르다. 순대볶음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는데 우선 마늘과 고춧가루를 기름에 볶아 고추기름을 내고 거기에 양배추와 숙주 그리고 파를 잘게 썰어 넣어 볶는다. 거기에 잘 구운 블랙푸딩을 얹어 먹는데 한국 순대볶음과는 또 다른 맛있는 한 끼가 된다 . 신랑은 그런 나를 보면서 '정말 당신다운 레시피' 라면서 웃는다.
토종 한국 입맛을 가진 나는, 이렇게 영국 현지 재료들을 잘 찾아서 내 입맛에 맞게 적응해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