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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주 Feb 20. 2024

요람에서 무덤까지는 신기루 같은 꿈이었나

현지에서 경험하는 영국 사회복지시스템

“벌어서 아이들 보육원 비용 내는데 다 쓰는 것 같아”


남편의 지인이 두 아이 주중 돌봄 비용이 또 올랐다며 푸념합니다.

어제자 뉴스를 보니 동료의 한숨 섞인 한탄이 그 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Having a kid feels ‘like financial suicide’ as more parents take on debt to pay for childcare

“아이들 낮시간 돌봄 서비스를 위해 빚을 내야 하는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2024년 2월 18일 자 영국 스카이뉴스 기사 제목입니다. 내용에 따르면 미취학 아동, 즉 3세 이하의 아이를 부모가 직장 근무하는 동안 보육원에 맡기게 되면 평균 주당 269.9파운드, 연 기준 14,030 파운드(원화 파운드당 1680원 기준) 약 2천만 원이 넘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합니다. 아이 보육원 비용 때문에 부모는 은행에서 돈을 빌리거나 심지어 조부모의 집이나 연금을 일부 헐어서 그 비용을 충당하고 있다는 인터뷰가 실려 있습니다.


남편의 지인은 두 아이 돌봄 서비스 비용으로 적어도 일 년에 4천만 원 이상을 지불하고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 벌어서 보육원에 다 가져다준다는 그의 말은 농담이 아니었습니다. 만 세 살 이후 취학 나이가 되고 나면 무상 공교육을 받기 때문에 아이 출산 후 3살까지 단기적인 상황이기는 하지만, 젊은 부모들에게는 큰 고통의 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현재 영국에서 두 아이를 키우면서 영국 시스템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중위 소득의 가정으로 18세까지 매달 160파운드 (약 27만 원) 금액이 정부에서 양육 수당으로 지급됩니다. 만 3세 이후부터 무상 공교육을 받게 됩니다. 대학 이상 고등 교육 등록금의 경우 영국민들은 국비로 공부합니다. 졸업 후 연간 25,000파운드(한화 약 4200만 원) 이상의 수입이 있는 경우에만 일정 비율에 따라 국가에 학비를 갚아 나가야 하는 책임이 주어집니다. 그 이하의 연 수입의 경우에는 개인이 국비로 받은 학비를 갚지 않아도 됩니다. 스스로 학비 벌면서 대학 졸업하느라 고생했던 나의 경험과 비교해보면 파격적인 조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혜택은 반 작용을 낳기도 합니다. 일정한 수입을 가진 직장인이 아이를 낳고 보육하기 위해서는, 급여가 발생함에 따라 대학 학비 대출금을 갚아야 하고 출근을 위해 아이 보육원 비용을 내야 합니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직업을 갖지 않고 집에서 직접 아이를 키우는 것이 더 이득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영국인들은 왜 일하지 않는가' 라는 논설 기사를 읽어 본 적이 있습니다.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복지 시스템 안에서 일할 의지를 잃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요즘 영국은 보육, 교육 문제 뿐만 아니라 국가 의료 시스템에 관한 논쟁이 끊이지 않습니다.


영국은 국민 누구나 병이 들면 나라가 국비로 치료해 주는 무상 의료 시스템 국가입니다.

경험상 감기와 같은 가벼운 증상에 관해서는 신청 후 일주일 내에 의사를 만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수술이 필요한 환자의 경우인데, 워낙 대기 인원이 많다 보니 그 치료 가능 시기를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고관절 수술하려고 국비 수술을 2년 동안 기다리다가 결국은 개인 의료보험 비용을 들여 해외에서 수술하고 재활한다는 기사를 읽습니다. 실제로 이웃분 중에서 팬데믹 기간 동안 위암 수술 대기 중에 결국 치료 시기를 놓쳐 돌아가신 분이 계시기도 합니다.


요즘 사적 의료보험에 관한 관심이 점점 늘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병원 치료는 공공의 의무라는 일반 국민들의 생각과 함께 사 보험 비용이 워낙 비싸다 보니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쉽지 않은 문제점이 있습니다.


기존  무상 복지 혜택을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가는 더 많은 세수확보를 해야 하지만, 인플레이션과 함께 곧 있을 선거표를 의식해 정부는 부자 감세와 같은 발표를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치킨 게임과 같은 현재 어려운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한 묘수를 찾아야겠지만, 어찌 된 일인지 현 집권 여당은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도 의지도 보이지 않습니다. 여당 의원 대부분이 부자 귀족 출신들이라 이런 일반 시민들의 어려움을 읽어내지 못한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한창 공부하던 때 영국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나라가 국민의 기본적인 삶을 책임진다는 모토가 너무나 멋지게 들렸었습니다. 나는 스스로 대학 등록금 벌면서 학교 다니느라 정신없이 바빴고, 부모님은 조부모님 병원비, 간병인 비용을 보험도 없이 오롯이 감당하시느라 고생하시던 때였습니다. 이 모든 고민들을 국가 시스템 안에서 다 해결해 준다 하니 영국 사회보장 시스템은 꿈만 같은 이야기였지요. 이 시스템 안에 또 이런 많은 문제들이 있다는 것은 경험하기 전에는 미쳐 알지 못했습니다.


아이 낳고 키우면서 저축하는 삶이 중산층마저도 점점 힘들어지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 자연스러워 보였던 삶이 그 경제적, 사회적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일부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한 것이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요.


기존 영국 사회 보장 시스템은 대대적인 수술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일부 비난을 감수 하고서라도 개혁할 수 있는 의지를 가진 새로운 정치 세력이 필요합니다.


올해로 예정된 영국 지방 선거 결과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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