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돌아보기, 퇴사 소감문 19
'다른 사람들 하는 거 보고 따라해, 혼자 튀려고 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한테 묻어가는 게 최고야'
직장인이라면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내가 신입이던 시절 선배가 직장생활의 팁이라며 내게 해 준 말이다. 최근에도 있는 듯 없는 듯 직장생활을 하는 친구들이 부럽다며 몇몇 후배들이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걸 종종 들었다. 자신의 존재감을 없애고 다른 이들(특히 윗분들)의 레이더망에 걸리지 않으면서 하는 직장생활이 정말 최고의 직장 생활법일까?
직장에서는 매년 신입 직원들이 들어온다. 내가 다니던 직장도 한 해에 적으면 3~4명 많으면 10명이 넘는 신입 직원이 들어왔다. 그렇게 같은 직장에 다니게 된 친구들 중에는 입사한 지 몇 년이 되도록 존재감이 없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입사 첫날부터 존재감을 뽐내는 직원도 있다.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여러 사람들 사이에 묻혀 직장생활을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조용해야 한다. 불의를 보아도 참을 수 있어야 하며, 시키는 일을 군말 없이 해야 한다. 일을 너무 잘해도 안 되며, 그렇다고 너무 못해도 존재감을 감출 수 없다. 오지랖이 넓어서 여기저기 간섭을 하고 다니거나 인싸 기질을 발휘해 매력을 흘리고 다녀도 안 된다. 직장생활에 틀을 정해두고 동료들과의 관계에 벽을 쌓아도 안 된다. 심지어 외모가 출중해도 안 된다.
나는 이게 어려웠다.(물론 외모가 출중한 건 아니다) 성격 때문이다. 정의의 사도도 아니면서 뭔가 부당한 일이 일어날 거 같다 싶으면 그 걸 두고 보지 못했다. 한 번이면 될 일을 몇 번씩 반복해야 하는 비효율적 일처리 방식을 답습하지도 못했다. 그럴 때마다 목소리를 냈다. 다행히 동료들이 그런 내 모습을 좋게 봐주셨다. 그렇지 않았으면 입사 초부터 아마 단단히 찍혔을 것이다. 훨씬 더 이른 시기에(?) 퇴사를 했을지도 모른다.
고백하자면 나 역시 어떻게 하면 다른 이들에게 조용히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한 적이 있다. 성격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포기한 이후에도 있는 듯 없는 듯 직장을 다니는 동료들이 부러웠다. 부서장을 하면서는 더더욱 그랬다. 직장에서 꼭 성공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부서장이라고 월급이 특별히 더 많은 것도 아니었다. 어깨에 책임감이라는 짐을 올려놓은 나와 달리 조용히(혹은 전략적으로) 주어진 일만 하며 여전히 부서원으로 남아있는 선배들이 부러울 때가 많았다.(그래서 공공기관의 경우 부서장을 기피하는 직원이 많다)
내 경우에는 공공기관에 다녔으니 다른 직장과는 조금 상황이 달랐을 것이다.(안정된 직장이었으니 묻어가려는 경향이 더 강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남들처럼만 하고 튀면 안 된다는 격언은 공공기관에만 적용되는 격언은 아니다.
그런데 가끔 착각을 하는 양반들이 있다. 튀면 안 된다고 묻어가는 게 최고라니까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들 말이다. 묻어가라고 했지 일을 하지 말라고 한 게 아닌데... 그건 튀지 않는 게 아니고 다른 방식으로 튀는 거다. 버스에 올라 타 함께 목적지까지 가려면 일단 버스 요금은 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임승차일 뿐이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라는 말이 있다. 의미를 조금 확대하자면 잘나지도 못나지도 말고 튀지 않는 게 탈 없이 사는 길이라는 뜻이리라.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 모난 부분은 없지만 안에는 '보석'을 품고 있는 돌이 되어야 한다. 내가 실력을 갖추고 있으면 자발적으로 묻히는 것도 가능하다. 적당히 내가 원하는 수준으로 일을 하며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실력이 있다면 언제든 자신이 원할 때 존재감을 드러낼 수도 있다)
튀지 않는 게 최고의 직장 생활법인 것은 맞다.(어느 면에서는)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그러려면 결국 실력이 있어야 한다. 실력이 없으면 결국 튀는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