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준영 Sep 12. 2022

튀지 말고, 있는 듯 없는 듯

직장생활 돌아보기, 퇴사 소감문 19

  '다른 사람들 하는 거 보고 따라해, 혼자 튀려고 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한테 묻어가는 게 최고야'


  직장인이라면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내가 신입이던 시절 선배가 직장생활의 팁이라며 내게 해 준 말이다. 최근에도 있는 듯 없는 듯 직장생활을 하는 친구들이 부럽다며 몇몇 후배들이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걸 종종 들었다. 자신의 존재감을 없애고 다른 이들(특히 윗분들)의 레이더망에 걸리지 않으면서 하는 직장생활이 정말 최고의 직장 생활법일까?


  직장에서는 매년 신입 직원들이 들어온다. 내가 다니던 직장도 한 해에 적으면 3~4명 많으면 10명이 넘는 신입 직원이 들어왔다. 그렇게 같은 직장에 다니게 된 친구들 중에는 입사한 지 몇 년이 되도록 존재감이 없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입사 첫날부터 존재감을 뽐내는 직원도 있다.


입사 첫날, 질문 하나로 존재감을 뽐내는 친구도 있다. (Photo by Marcos Luiz Photograph on Unsplash)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여러 사람들 사이에 묻혀 직장생활을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조용해야 한다. 불의를 보아도 참을 수 있어야 하며, 시키는 일을 군말 없이 해야 한다. 일을 너무 잘해도 안 되며, 그렇다고 너무 못해도 존재감을 감출 수 없다. 오지랖이 넓어서 여기저기 간섭을 하고 다니거나 인싸 기질을 발휘해 매력을 흘리고 다녀도 안 된다. 직장생활에 틀을 정해두고 동료들과의 관계에 벽을 쌓아도 안 된다. 심지어 외모가 출중해도 안 된다.


  나는 이게 어려웠다.(물론 외모가 출중한 건 아니다) 성격 때문이다. 정의의 사도도 아니면서 뭔가 부당한 일이 일어날 거 같다 싶으면 그 걸 두고 보지 못했다. 한 번이면 될 일을 몇 번씩 반복해야 하는 비효율적 일처리 방식을 답습하지도 못했다. 그럴 때마다 목소리를 냈다. 다행히 동료들이 그런 내 모습을 좋게 봐주셨다. 그렇지 않았으면 입사 초부터 아마 단단히 찍혔을 것이다. 훨씬 더 이른 시기에(?) 퇴사를 했을지도 모른다. 


  고백하자면 나 역시 어떻게 하면 다른 이들에게 조용히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한 적이 있다. 성격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포기한 이후에도 있는 듯 없는 듯 직장을 다니는 동료들이 부러웠다. 부서장을 하면서는 더더욱 그랬다. 직장에서 꼭 성공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부서장이라고 월급이 특별히 더 많은 것도 아니었다. 어깨에 책임감이라는 짐을 올려놓은 나와 달리 조용히(혹은 전략적으로) 주어진 일만 하며 여전히 부서원으로 남아있는 선배들이 부러울 때가 많았다.(그래서 공공기관의 경우 부서장을 기피하는 직원이 많다)


공공기관의 경우 부서장을 기피하는 직원들이 많다. (Photo by Craig Ren on Unsplash)


  내 경우에는 공공기관에 다녔으니 다른 직장과는 조금 상황이 달랐을 것이다.(안정된 직장이었으니 묻어가려는 경향이 더 강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남들처럼만 하고 튀면 안 된다는 격언은 공공기관에만 적용되는 격언은 아니다. 


  그런데 가끔 착각을 하는 양반들이 있다. 튀면 안 된다고 묻어가는 게 최고라니까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들 말이다. 묻어가라고 했지 일을 하지 말라고 한 게 아닌데... 그건 튀지 않는 게 아니고 다른 방식으로 튀는 거다. 버스에 올라 타 함께 목적지까지 가려면 일단 버스 요금은 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임승차일 뿐이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라는 말이 있다. 의미를 조금 확대하자면 잘나지도 못나지도 말고 튀지 않는 게 탈 없이 사는 길이라는 뜻이리라.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 모난 부분은 없지만 안에는 '보석'을 품고 있는 돌이 되어야 한다. 내가 실력을 갖추고 있으면 자발적으로 묻히는 것도 가능하다. 적당히 내가 원하는 수준으로 일을 하며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다.(실력이 있다면 언제든 자신이 원할 때 존재감을 드러낼 수도 있다)


  튀지 않는 게 최고의 직장 생활법인 것은 맞다.(어느 면에서는)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그러려면 결국 실력이 있어야 한다. 실력이 없으면 결국 튀는거다.




(표지 Photo by Kin Li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곧 내 직장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