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돌아보기, 퇴사 소감문 18
'그런데 우리 둘 다 사표 던져놓고 왜 '우리 회사'라고 하고 있냐?'
퇴사를 하고 정확히 17일째 되던 날, 나보다 먼저 퇴사를 하고 다른 직장을 다니는 선배가 한 말이다. 밀린 이야기를 한참 하다 보니 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둘 모두 그 회사를 떠났건만, 여전히 그 회사가 자기 직장인 것 마냥 떠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소속감이라는 게 조금 기이한 면이 있다. 안에서 느끼는 소속감과 밖에서 느끼는 소속감은 다르다. 회사 안에서는 동료들과 회사 욕을 하기도 하고 동료 직원 험담을 하기도 한다. 회사의 정책이나 제도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하지만 밖에서는 태도가 달라진다. 뉴스에 내 직장을 칭찬하는 뉴스에 나오면 괜스레 어깨가 으쓱해진다. 반대로 회사에 대해 누군가 부정적 이야기를 하면 괜히 내가 부끄러운 기분이 들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변명을 하기도 한다. 어쩌면 애국심과도 비슷할지 모르겠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 내가 다니던 회사를 칭찬하면 내가 칭찬받는 느낌이었고 혹시 회사가 잘못한 일이 있을 때에는 그 잘못 때문에 나 스스로 위축되기도 했다. 그래서 회사를 다니는 동안 내가 하는 일 때문에 회사가 욕을 먹게 되는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이 회사는 담당자가 정말 똑 부러지고 친절하기까지 하네'라는 말 한마디를 듣기 위해 구태여 피드백을 하곤 했다. 또 출장 간 직원의 전화기가 울리면 '이 회사는 전화도 안 받는다'는 말을 듣기 싫어 열심히 전화를 당겨 받았다.
내가 다녔던 회사는 공공기관이기에 다른 기관들과 회의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여러 기관이 모이는 자리에서 내 직장이 밀리는 꼴은 볼 수 없다. 다른 기관 참석자만큼은 해야 한다. 기관별로 한 마디씩 해야 하는 경우라면 의미 있는 의견을 내려고 고심하기도 했다. 내가 하는 말 한마디가 내 직장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그런 자리에서는 내가 곧 내 직장이다.
물론 오버는 금물이다. 소속감이 지나친 나머지 가끔 이상한 짓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다니는 회사가 권한이 있으면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거나 유명한 회사에 소속된 사람이기 때문에 그만큼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말이다. 다짜고짜 자기 회사명을 들이댄다. 그리고 상대가 호들갑 떨어주기를 기대한다. 직장인이라면 자신의 그런 행동이 오히려 자기 직장에 먹칠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퇴사를 했지만, 한동안은 뉴스나 신문 어딘가에서 전 직장의 이름을 보게 된다면 무척 반가울 거 같다. 반가움 뒤에 따라오는 감정이 뿌듯함일지, 안도감 일지, 부끄러움일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오히려 그 소식이 내가 괜히 직장을 그만뒀다는 '후회'를 느끼게 만드는 것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표지 Photo by Clay Banks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