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준영 Sep 07. 2022

건강보험, 그것이 문제로다.

직장생활 돌아보기, 퇴사 소감문 17

  나는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정말 좋은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간단한 수술이나 처치 한번 받으면 엄청난 병원비가 청구된다는 이야기가 잊을만하면 한 번씩 들린다. 돈이 무서워 사람들이 병원에 함부로 가지 못하는 나라는 많다. 다행히 내 주변에서 돈 때문에 병원에 못 갔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의료 수준도 높다.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저렴한 가격에 받을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어린 시절 병원에 갈 때면 수첩처럼 생긴 의료보험증을 꼭 챙겨갔었다. 식구들 이름이 나란히 적힌 그 건강보험증이 그렇게 든든할 수 없었다. 내 기억에는 건강보험이 항상 있었기 때문에 아주 오래된 제도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찾아보니 전 국민 건강보험 제도는 1989년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나보다 동생이다.


2019년과 2010년도 건강보험증. 요즘은 신청자만 준다. 없어도 문제는 없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직장이라면 건강보험료가 급여에서 자동적으로 공제된다. 어쩌다 급여 명세서를 살펴보면 국민연금, 고용보험, 산재보험과 함께 빠져나가는 건강보험료를 확인할 수 있다. 월급에서 4대 보험으로 빠지는 금액이 너무 크다고 툴툴대는 사람들도 있다.(그런 사람은 보통 연봉이 높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렇게 자동으로 4대 보험료가 빠지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직장인은 별도의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으면서 사회 보장 시스템을 이용하는 셈이다. 


  건강보험 가입자는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로 나뉘는데 직장인은 당연히 직장가입자다. 직장가입자의 건강보험료는 급여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 통상 급여의 약 7%(정확히는 6.99%)를 건강보험료로 내게 되는데 이중 절반은 회사가 부담하기 때문에 직장인은 약 3.5%만 내면 된다. 월 급여가 5백이라면 17만 5천 원 정도 된다.


  지역가입자는 월급을 받지 않는 개인 사업자 등을 말하는데 지역가입자의 보험료가 일반적으로 더 높다. 소득과 재산을 기준으로 보험료를 부고하는 시스템이다. 여기에 4천만 원이 넘는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다면 보험료는 더 비싸진다. 건강보험 홈페이지에서 지역가입자 보험료를 모의계산해 볼 수 있는데, 근로 소득 2천만 원과 보유 재산 3억(주택)을 입력해보면 보험료가 월 20만 원이 넘어간다.

(건강보험료와 별도로 붙는 장기요양보험료는 직장가입자, 지역가입자 모두 고려하지 않았다.)


  나와 같은 퇴직한 직장인에게는 조금 가혹하다. 소득은 줄었는데 보험료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부담이 되는 수준이다. 물론 이런 경우를 위한 제도가 있다. 건강보험 임의계속가입제도라는 것이 있다. 보험료를 깎아주는 건 아니고 기존의 직장가입자로서의 자격을 3년 동안 유지할 수 있는 제도다. 지역가입자 전환을 3년 늦춰준다.


  예전에는 건강보험료를 신경 써 본 적이 없다. 통장에 월급이 들어오면 들어오는 대로 살았다. 급여 명세서를 꼼꼼히 살펴본 적도 별로 없다. 그런데 이제 이런 것들을 모두 챙겨야 하게 되었다. 당장 소득이 많다면 기쁜 마음으로 보험료를 내겠지만 그렇지도 않다. 약간은 처량해(?) 진다. 


  직장에 다닐 때는 직원들 급여와 4대 보험을 담당하는 후배가 바쁘게 뭘 하고 있으면 정확히 뭘 하는지 몰랐다. 물론 지금도 잘 모른다. 하지만 그때는 그 친구에게 고마움도 몰랐다면 지금은 알 것 같다. 무척 고마운 친구였던 것이다.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이유가 생겼다. (Photo by Towfiqu barbhuiya on Unsplash)


  퇴사할 때, 많은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하면서 가족과 함께 편한 삶을 살아보자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건강보험료 때문에 처음으로 돈 욕심이 생겼다. 보험료를 더 많이 낸다고 건강보험에서 더 좋은 서비스를 해주는 건 아니지만 많이 내 보고 싶다. 많이 벌고 많이 내는 건 당연한 거니까 말이다.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하나 늘었다.



(표지 Photo by Online Marketing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아침마다 가야 할 곳이 사라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