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돌아보기, 퇴사 소감문 16
내 아버지는 50년생이시다. 전쟁통에 태어나셨다. 우리나라에 정말 아무것도 없던 시기부터 올림픽이 열리는 모습까지 지켜보셨다. 그래서인지 성실함을 항상 강조하셨다. 초등학생(사실은 국민학생이었다)이던 나는 몸이 아파도 학교는 반드시 가야 하는 곳이었다. 학교를 못 갈 거 같으면 학교 가서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조퇴하라고 하실 정도였다. 말이 되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랬다.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일이다.(그래도 다행히 6년 개근상을 받았고 아버지께 칭찬을 받았다.)
직장인이 된 이후에도 아버지의 가르침 때문이지 회사를 정말 성실히 다녔었다. 아침에 일어나 비몽사몽 중에도 머리를 감고, 양치를 하고, 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 무슨 일이 있어도 9시까지는 사무실 문턱을 지나기 위해 노력했다. 최근 5년 정도는 거의 8시 전후로 사무실에 들어섰다. 몸이 아파도(코로나19가 유행하기 이전이니 오해하지는 마시라) 사무실에 갔다.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그리고 사실 그렇게 하는 게 마음은 오히려 더 편하기도 했다.
그런데 나만 그렇게 회사를 다녔던 건 아니었다. 같이 회사를 다니던 선배들은 더 열심히 사무실에 나왔다.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10년 전 회사 사무실의 모습은 그랬다. 지금이야 재택근무, 자율근무 제도가 본격적으로 운영되면서 많이 바뀐 요즘 사무실과는 분명 분위기가 달랐다. 나 역시 옛날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
매일 사무실을 간다는 게 당연한 일이긴 했지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특히 나와 같이 경기도에 살면서 서울로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은 회사 가는 길이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니다. 하루에 3시간을 버스나 지하철에서 보내려면 코어 근육이 상당히 튼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 달도 안돼 허리나 어깨가 고장이 나고 만다. 물난리가 나도, 전쟁이 나도 출근한다는 K-직장인의 출근길은 고달프기만 하다.
하지만 가야 할 곳이 있다는 게 꼭 나쁜 것은 아니다. 특히 그곳이 매달 월급을 챙겨주는 직장이라면 말이다. 직장에서 정말 정렬적으로 일을 하시던 선배님이 정년퇴직을 하면 모습이 급격히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직장에서는 60대의 나이지만 젊고 정렬적이었는데 퇴직 이후에는 정말 노인이 돼버리시고 만다. 당장 해야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할 일이 있어야 한다는 옛 말이 틀린 말은 아닐지 모른다.
직장은 할 일을 준다는 의미에서 직장인에게 의미가 있다. 사람은 일을 해야 산다. 자기 일을 스스로 찾아서 해야 한다면 그 또한 어려운 일이다. 밥벌이까지 생각한다면 월급까지 쥐어주면서 할 일까지 정해주는 회사는 고마운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일을 하는 동안은 쉽게 늙고 지치지 않는다. 치매 예방에 가장 좋은 것은 어쩌면 직장생활(자기 일을 하는 것) 일지도 모른다.
퇴사를 한 지금 나는 아침마다 갈 곳이 사라졌다. 직장 생활을 그만하기로 했기에 당연한 결과지만 여전히 어색하기만 하다. 누군가가 나에게 일을 기한까지 정해서 시키지 않는데 괜찮은 건가? 생각해 보면 자기 사업을 하시는 분들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스스로 스케줄을 관리하고 해야 할 일을 정하며 밥벌이를 하시니 말이다.
내가 할 일을 스스로 찾아야 하는데 금방 익숙해지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미 저지른 일, 감당해야 하지 않겠는가?
(표지 Photo by Martin Adams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