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트레드앤그루브를 코칭하면서 깨달은 지속 가능한 창업가의 태도
되게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된 것 같다. 글을 쓸 절대적 짬이 안 났던 것도 사실이지만, 귀차니즘이 워낙 심해서 일거라고 생각한다. 인스타나 페이스북에 뭐만 올리면 "일상 글 말고, 우리껄 올려라", "우리 글은 언제 써줄 거냐", "우리 이번 펀딩 홍보를 하라"하고 지난 1주일 사이에 최소 3번 이상 집착스럽게 이야기한 스타트업 트레드앤그루브의 누군가가 한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쓰면 다잉 메시지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최소한 공개적으로 써두면 내 목숨은 보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본다.
필자는 사회혁신 스타트업을 코칭하는 일을 하면서, 작년부터 올 해까지 두 차례의 다른 프로그램에서 트레드앤그루브라는 팀을 코칭하게 되었다. 트레드앤그루브는 재활용할 수 있는 폐타이어를 선별해서, 트레드(고무 표면)를 정밀 분리한 후 신발의 아웃솔에 적용하여, 친환경 업사이클링 신발을 만들고 있는 팀이다. 최근에는 아래 사진에 보이는 슬리퍼와 샌들을 펀딩하고 있다. 관심 가시는 분들은 펀딩에 참여해보시면 후회는 안 하실 거라고 생각한다. 이번 주부터는 공간 와디즈에서도 시착이 가능하다고... (펀딩 링크 : https://www.wadiz.kr/web/campaign/detail/111868)
코치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절대적 행운인지 전생으로부터 내려오는 크나큰 업보인지 모르겠지만, 코치로서 그들과 나누는 것보다도 내가 그들의 여정을 간접적으로나마 참여하게 되면서 내 창업의 과정을 돌아보게 될 일이 많았다.
트레드앤그루브 팀은 일하는 날이든 쉬는 날이든 상 받은 날이든 뭐든 정말 말그대로 의연한 팀이였다. 그들의 이러한 마음가짐과 태도를 보면서 창업가로서, 스타트업으로서 지속 가능하기 위해 진짜 필요한 것 하나 깨닫게 되었는데, 그것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을 깨달은 순간은 참으로 아팠다. 내가 왜 창업가로서 그때 당시 잘 못했었는지 알게 되는 순간이기도 했었으니까...)
트레드앤그루브는 이전부터 사회혁신과 사회적 가치에 관심이 있는 창업가들이 모여 만들어진 팀이었다. 그리고 대학교 대외활동으로도, 다른 동아리 활동으로도 이미 무언가를 만들고 달성해본 적이 있는 팀이었기 때문에 성과를 낼 수 있는 팀이라고 생각했다. 프로젝트도 이미 여러 번 진행해본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필자와 매칭이 되었을 때 많이 기뻐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작은 성공의 경험이 동기가 되어 곧 또 다른 성공을 불러오고 큰 성공을 불러올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 코칭 날에 거두절미하고 이것부터 물어봤었다.
우리 이번 4개월 프로그램 기간 동안 어떤 것들을 달성해보고 싶어요?
어디까지 달성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트레드앤그루브가 그때 달성해보겠다고 말했던 목표가 3개 정도 있었는데, 4개월 후 그 목표들을 모두 달성했다. 성과도 잘 나왔다. 크라우드펀딩도 성공했고, 다음 제품도 만들어볼 수 있었다. 프로그램에서 발표한 것을 기반으로 TV에도, 언론사 인터뷰에도 나올 수 있었다. 이제 진짜 그들이 바라고 원했던 "폐타이어를 활용한 친환경 신발 브랜드"로 도약하기 위한 기반이 되어줄 업적들이 모였다고 느껴지는 지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트레드앤그루브는 그때의 프로그램에서 우수팀으로 선정됐다.
사실 이 데모데이날을 나는 아직 잊지 못한다. 이원 생중계 속에서, 큰 규모의 행사를 문제없이 차곡차곡 잘 진행했다는 것도 매우 의미 있었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같이 연습했었던 팀들이 무대에서 자기 실력을 다 발휘하고 내려왔다는 사실이 뿌듯하기도 했었지만, 개인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데모데이가 끝나고 행사가 끝나서 운영팀들과 함께 짐을 치우다, 다른 팀들은 사진도 찍고 인사도 나누고 있는데 트레드앤그루브팀이 안 보여서 건물 밖으로 나와봤더니, 주차장에서 차를 빼고 있었다. 어디 가는지 물어보니, 전시해놨었던 신발들을 다시 들고 회사로 갔다가 타이어를 썰러 간다고 (즉, 다시 일하러 간다고) 하는 것이었다.
머리에 오만가지 생각이 스쳤다. '상 받고 나서 기쁘고 너무 좋을 텐데...', '오늘이라도 좀 쉬지...', '얼마나 급한 일이 있던 거지...', '내일 납품일정 들은 거 없는데... 급한 요청인 건가...' 등등. 하지만 이런 날에도 일하러 가는 그들은 어떤 심정일까 생각하면서 웃는 얼굴로 보내주었다.
그리고는 행사가 끝난 뒤에도 한참이 지나고 밤 11시가 다되어서 이런 톡을 받았다.
이 카톡을 받고 나서 나는 어렴풋이나마 내가 왜 창업가로서 성공하지 못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언제부턴가 나도 내가 창업을 했던 그 본질, 이유, 미션에서 멀어져 그 날 그 날의 동기부여에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궁극적 목적을 달성하는 것과는 전혀 연관성이 없는데도 말이다.
분명 내가 트레드앤그루브의 입장이 되어 본다면, 프로그램에서 상을 받는 것에 굉장히 에너지를 불태웠을 것이다. 그리고 힘든 그 과정을 이겨내고 더 완성도를 끝까지 높여서 상을 받을 확률을 높이기 위해 "없는 힘까지 다 쥐어짜 보고" 싶었을 것 같다. 상도 받고, 엄마 나 상 받았어. 내가 하는 일이 이렇게 의미있는 일이야 라고 보여주고 싶었을 테니까.
이때 내가 자주 썼던 방법은 마치 NPC가 플레이어에게 퀘스트와 보상을 쥐어주듯이 나의 행동주의 마인드에 찰떡같은 "보상"이라는 것을 설정하는 방법이었다. 퀘스트를 주고, 그 퀘스트에 따른 합당한 보상을 준다. RPG게임에 어릴 때 부터 익숙한 우리들에게는 너무나 쉬운 방법이였다. 따라서 상을 받을만큼 노력한 것에 대한 보상을 주기 위해서 내가 트레드앤그루브였다면 상을 받은 그 날은 무슨 일이 있어도 쉬었을 것이다. 정말 스스로에게 보상을 주는 거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근데 나만 이런건 아니다. 이런 방법은 생각보다 매우 빈번하게 사용되고있다. "우리 이번 프로그램 3등 안에 들면, 다들 너무 고생했으니까 그 날 일 때려치우고 맛있는 거! 술밥 3차까지 달리자!", "이번 시리즈 A 투자 유치하고 나면 다 같이 강릉으로 1박 2일 여행이라도 가자.", "일단 이번 1차 베타 개발까지만 완료되면 우리 토요일 하루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자" 등등. 스스로에게도 자주 쓰고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들이지 않은가. 이런 멘트는 진짜 마지막 힘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마법의 멘트다. 그 퀘스트를 달성할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눈앞에 보이는 보상이 생기다 보니 조금이라도 쥐어짜고 버텨볼 힘이 생겨서 여기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스타트업이라는 게... 뭐 인생도 그렇다고 하지만 그렇게 매번 말처럼 되는 건 아니다 보니 불이 붙은 것도 안 붙은 것도 아닌 그런 "숯"과 같은 상태가 되어서 불타오르지도, 쉽게 불이 옮겨 붙지도 못한 번아웃 상태에 빠져버리게 되더라. 더 열심히 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동력원을 너무 빨리 소진하게 되는 거였다. 분명 사랑하고, 좋아하는 일을 시작했거나, 진짜 진정성 있게 무언가를 혁신해보고 싶어서 시작했었던 일일 텐데 어느 순간 퀘스트와 보상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허우적대고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본인을 볼 수 있다.
창업을 하다 보면 정말 이런 극강의 동기부여가 필요한 지점들이 분명 존재한다. 이것을 부정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평소의 퍼포먼스와 마음가짐으로는 절대 못 넘을 산들이 분명 많이 있을 테니까.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보상"이라는 것이 이 "산"들을 넘기 위해서 단순하게 "산"을 넘는 것에 초점을 맞춰서 놓여진다면, 창업가들은 빠르게 지칠 수밖에 없다. 특히 어떠한 퀘스트를 달성하는 것이 "우리를 증명해주는 것이야"라고 하는 인정 욕구까지 여기에 붙게 되면 정말 더할 나위 없이 빠르게 번아웃에 도달할 수 있다.
그 당시에는 산이었을지언정, 돌이켜보면 그냥 큰 방향에서 피해 갈 수도 있었던 작은 이벤트였을 수도 있다. 각각의 이벤트가 정말 우리가 스타트업을 시작한 이유와 같은 방향에 놓여 있는지 보아야 한다. 문제를 해결해나간다는 큰 과정에서, 혁신의 한 과정 안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프로세스 속에서 이 부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라면 도전해봐야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괜히 퀘스트와 보상이라는 개념으로 장애물들을 시도해 보면 안된다.
짧은 호흡 속에서 우리 스타트업의 목표들을 정하고 KPI를 설정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 걸 달성하는 것이 우리에게 말해주거나 제공해주는 보상은 아무것도 없다. 그냥 우리가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저 방향에 가까워져가고 있구나 정도.
스타트업을 시작한 사람들은 모두 이유가 있다.
그냥 단기적인 목표만을 달성하고자 만들어진 곳은 없다.
스타트업을 증명하고 인정해주는 것은, 결국 어떤 이벤트에서의 결과가 아니라, 그 스타트업이 가는 방향성 안에서 만들어낸 총체적인 결과물이다. 1년도 살아남기 어려운 스타트업이라고 하지만 10년도 내 에너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쏟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 1년 사이에 번아웃을 만들어버리면 큰일이다.
스티브 잡스는 "여정 자체가 보상이다(The journey is the reward)"라고 말했다. 이 문구에 대해서 사람들은 여정의 끝에서 큰 보상이 없더라도, 돌이켜보면 그 기간이 모두 보상이었다고 해석하고 있지만 트레드앤그루브를 통해서 깨달은 것은 이 문장의 의미는 조금 달랐다. 창업가들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혁신을 만들어내기 위해 'Start up'(들고 일어서서 시작하다라는 뜻)을 하였으니 그 여정 속에서 문제가 조금이라도 해결되었다면 또는 혁신이 조금이라도 일어났다면 그 자체가 보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퀘스트를 통해서 받을 수 있는 금전적, 물질적, 명예, 인정 욕구 등 일반적인 통념 하에 "성공"이라는 이름에 부합하는 보상이 아니라, 창업가로서 들고 일어서서 시작한 것에 대한 보상은 충분히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창업가가 리딩 해서 그 부분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니까. 그 진정성과 행동은 그 자체로도 인정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트레드앤그루브를 나는 그 날 주제넘게 동정한 것 같다. 그들은 그냥 그들이 하고자 했던 스케줄에 따라서 움직였을 뿐이고, 데모데이가 끝나고 나서 타이어를 써는 것은 그들이 만들고자 하는 스타트업에서 너무나 필요한 행동이었을 텐데, 일반적인 통념의 잣대로 판단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고, 미안했다.
배우 윤여정 선생님은 오스카상을 받고서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답변을 했다고 한다. "상은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 새로운 일과 프로젝트를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보상"이라고. 트레드앤그루브에게도 사실 이 프로그램에 들어와서 생각을 하고, 고민을 더 잘할 수 있고, 멘토링을 받는 그 순간순간이 쌓여서 본인들이 바라보고 있는 방향으로 한 걸음씩 더 진전하고 있다면 그거로도 충분히 큰 보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다시 시작으로 돌아가서, 이 글은 트레드앤그루브가 본인들의 그런 여정 가운데에 있는 와디즈 펀딩을 응원하기 위한 글을 써달라고 해서 쓰기 시작했다. 그 글이 이렇게 까지 흘러 흘러와버린 것이다. 와디즈 이번 펀딩은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 2천만 원 정도 달성되었는데, 앞으로 3천만 원, 5천만 원 또는 정말 잘돼서 1억을 달성할 수도 있겠지만, 그 수치가 중요한 팀은 아닌 것 같다.
트레드앤그루브는 펀딩이 마감된 날에도 축하하기 위한 맥주를 마시는 게 아니라, 2021 FW와 2022 SS 신상을 기획하고 있을 것 같다. 펀딩은 밟아야 할 단계를 잘 밟았고, 문제없이 끝났고, 우리가 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계속 한 걸음씩 나가면서 그 방향에서 이탈하지 않았음을 그냥 인지하고 그 이상의 의미부여는 따로 안 할 것 같다. 1,000% 달성해서, 펀딩이 대성공이라는 퀘스트를 달성한 보상으로 맥주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했었던 펀딩에서 정말 고맙게도 많은 서포터 분들이 팬이되어 이번 펀딩에서도 다시 구매해주셔서 기뻐서 맥주를 마시는 그런 팀이라는 걸 이제는 누구보다 잘 안다.
이제는 트레드앤그루브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탐색하고 한 걸음씩 나아가면서 보상받는 그 여정 그 자체를 그냥 한 명의 팬으로서 응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