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은 당장 1시간 후에 일어나서 나가야 하는데, 진짜 이렇게 잠들어서 못 일어난다고 해도 충분히 좋은 생이겠다 싶을 때도 있었다. 괜찮다고 스스로 주문을 걸어도, 실제로는 이게 진짜 내가 바라던 길인가 매일 스스로를 의심하던 시절이었던 거 같다.
또 우리 집이 휘청거리고 무너지던 때에도 나는 스스로 이 말을 계속했던 것 같다.
“나 괜찮아. 내가 더 잘해야지.”
아무렇지도 않은 척 노력하던 엄마와 아빠. 그리고 말은 하지 않아도 속으로 마음 많이 썩였을 동생. 사실 되게 원망도 많이 스러웠다. 난 이렇게 힘든데, 왜 아무도 힘든 내색조차 안 해서 내가 힘든 티도 못 내게 할까. 차라리 펑펑 울기라도 했으면 좋았을 텐데 맘껏 울지도 못 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아 계시던 때에도 두 분께 착한 거짓말을 해왔던 것 같다.
“이 정도 가지고 뭘요. 제가 장손인데 더 잘해야죠.”
나는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스스로 믿음이라는 짐을 나에게 지운 것 같다. 나는 잘해야 한다. 나는 괜찮아야 한다. 내가 무너지면 안 된다. 나는 나를 믿는다.
실제로 나는 스스로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창업은 재미있었다. 내 아이디어를 실제로 만들어내는 것은 지금도 너무 재밌고, 앞으로도 계속할 수 있는 나의 라이프스타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찾아낸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축복받은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그대가 바라는 영국도, 다이버시티도 절실함이 만들어낸 결과물 같은 것이다. 내가 하고 싶었던 거긴 하지만, 이 창업을 잘해서 부모님을 기쁘게 만들어드려야지. 내가 혼자서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해야지. 우리 집을 내가 다시 일으켜 세워야지. 이런 생각들이 존재했기 때문에 태어난 것이다. 후에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되던 때에도 나는 절대 창업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진짜 혼심의 힘을 기울여서 작성했던 비자가 잘 안됐다. 다이버시티가 악셀러레이팅 프로그램에도 붙고 또 다른 기관에서는 엄청 좋은 오피스도 1년 동안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해 줬었던 기간인지라 당연히 붙을 줄 알고 있었다. 이번에 비자를 연장할 수 있었다면 2021년에는 영주권을 받아서 비자의 노예 생활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누가 봐도 비자가 나올 거니 걱정 말라고 했었다.
비자가 거절당하는 그 날, 나는 내 인생이 통째로 부정당한 기분을 느꼈다. 내가 지금까지 쌓아 올린 경험들, 레퍼런스들. 내 신념. 내 책임감. 내 모든 추후 일정에 대한 생각들. 이 모든 것이 그냥 송두리 채 날아간 것이다. 그렇게 10일 동안 집을 다 정리하고 매일 술을 마시면서 깨달은 것은 내가 구멍이 숭숭 나 있는 치즈처럼 나 스스로가 너무나 많은 구멍이 생겨버렸다는 것. 그리고 그 구멍은 내가 조금씩 만들어오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구멍을 매우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다.
거창하게 돈을 내고 요가를 배운다던가, 명상을 한다던가 까지도 필요하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온 나는 2월 7일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 이상 내 인생이 추락할 일도 없다고 생각했다. 우울함에 지배될 수준도 아니었다. 내 인생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을 정도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취업 준비는 해보라던 부모님의 말에 알바를 하면서 취준 원서를 작성했다. 떨어진 곳들도 있었고, 붙은 곳들도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언더독스라는 곳에 흘러 흘러 들어오게 되었다. 언더독스에서 만난 사람들은 내 구멍을 매우는 데 굉장히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내 이상한 히스토리를 이해해주는 사람들도 있었고, 내 건강을 나보다 더 챙겨주는 사람도, 또 내 표정을 보고 자기 일처럼 뛰어와서 괜찮냐고 물어봐주는 동료들이 생겨났다.
이 회사에서 무엇을 해보고 싶냐는 질문에 나는 차마 쉽게 대답할 수는 없었다. 딱히 내가 긴 시야를 가지고 결정한 커리어라기는 어려웠으니까. 하지만 동료들을 통해, 또 새로운 경험들을 통해 내가 쓸모없는 사람은 아니었구나.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는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얻게 되었다.
이해해서 행복합니다.
창업을 하던 시기에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이 점이 아녔을까 싶다. 내가 나를 스스로 잘 아는 것에서 더 넘어가서 내가 나를 스스로 이해하고 인정해주는 것. 한국에 돌아와서 나의 바운더리를 더 잘 알게 되고, 편견 없이 나를 바라보게 된 그 순간부터 나는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내가 갈비탕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구나. 지코바는 참 맛있는 거구나. 나는 사람들 앞에서의 강의를 생각보다 무서워하는 사람이구나. 등등 내가 잘해야지. 난 잘해야 해. 난 괜찮아야만 해!라는 어떠한 잣대도, 기준도 없이 나를 인정하고 이해해보니, 안정감이 많이 생긴 것 같다.
또한 이를 통해서 내가 앞으로 더 많은 것들을 하면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싶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행복할 수 있는 것들을 만들어내면서 만족하는 인생을 살 수 있는 사람이구나도 이해하기 시작했다. 과거와 현재에 내 제약과 상황에 너무 목메고 있었는데, 그런 점들을 그냥 단순히 인정하고 넘어가는 순간 미래를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다. 나한테만 되는 방법인지 모르겠지만, 나를 이해하면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게 되고, 또 그것에 따라서 내일을 준비할 수 있는 만큼 행복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나를 가장 잘 이해해주고 인정해줄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이다. 오늘부터라도 한 번 나를 이해해보고 인정해주려는 시도를 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