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문득 궁금해진다.
언젠가 내가 마흔이 되고, 쉰이 되었을 때
나는 지금을 청춘이라고 그리워하게 될까?
지금의 나는 청춘이랑 말을 붙이기 민망할 정도로
매일이 버겁고, 또 건조하다.
몸은 늘 무겁고, 걱정은 더 구체적이며, 웃을 일은 조심스럽다.
무언가를 완전히 처음부터 시작하기에는 늦은 것 같고,
그렇다고 포기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그래서 청춘을 정의하고 싶었다.
청춘은 효율과 거리가 멀다 청춘은 낭비다.
낭비가 있어야 청춘이다.
밤마다 하루를 되돌아봤을 때,
내가 시간 낭비를 하고 있다고 느낀다면 난 아직 청춘이다.
내가 모르겠는 청춘에 대한 기준을 그렇게 잡기로 했다.
돌아갈 수 없는 그 청춘은 더 선명해지지 않게 접어두고,
현재의 흐릿한 청춘을 선명하게 꾸며가야겠다.
그게 낭비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