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낭만을 잃고 싶지 않다.

by quitter


벚꽃이 휘몰아치듯 봄이 내 앞을 지나갈 때면

나는 늘 같은 표정을 지은 채 그 자리에 선다.

입꼬리는 조금, 아주 조금, 누군가가 보면 못 본 척할 정도로만 올라가고

눈은, 바람에 쓸려간 기억처럼 멍하니 흔들린다.


“참 예쁘다”는 말,

목까지 차올랐지만 나는 꿀꺽 삼킨다.

그 말이 입술을 통과해 공기 중에 머물다

누군가의 귓가에 닿기라도 하면

그들이 내 마음의 커튼을 걷어버릴까 두려워서.


내 속은 소란하다.

꽃잎 하나가 어깨에 닿을 때마다

마음 안쪽의 오래된 문이 덜컥, 덜컥 열리려 한다.

하지만 나는 조용한 사람인 척,

감정을 가지런히 접어

재킷 안주머니에 넣어둔다.


나는 나를 들키고 싶지 않다.

봄이 건네는 손짓에 손을 뻗고 싶은 충동조차

그저 눈꺼풀 아래로만 스쳐보낸다.


그래도, 그래도

꽃잎이 부서지는 그 순간의 잔상만은

조용히 마음의 필름 속에 눌러 담는다.


나는 낭만을 잃고 싶지 않다.

설령 그 낭만이 아무도 모르게 피고 지는 것이라 해도

내 안에서만큼은

눈부시게 흩날리게 하고 싶다.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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