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산

수면 아래에서 발길질하던 시간들 2

by BaeFounder

수면 아래에서, 가장 오래 발길질하던 시간


핸투핸은 앱(APP) 기반의

IT·물류 스타트업이었다.


앱 서비스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보통 실용성, 편리함, 자동화

같은 단어들을 떠올린다.


하지만 내가 체감한 현실은 조금 달랐다.


그건 내 자신을 계속 갈아 넣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11화에서 나는 외부로 뛰어다녔다.

배송 물량을 더 맞춰 넣기 위해 타 업체들과

제휴를 맺고, 미팅을 하고, 설명하고, 설득했다.

그 과정에서 떠올랐던 비유가 하나 있다.


수면 위의 오리는 잔잔하고 평온해 보인다.
하지만 수면 아래에서는 쉼 없이 발길질을 하고 있다.


12화는 그 발길질이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가장 진하게 느껴졌던 이야기다.

바로 '정산'이다.


핸투핸은 전달손(배송원)들이 업무를 수행하면
그에 대한 인건비를 '주급 단위'

정산해 주는 구조였다.


요즘처럼 정산 자동화가 고도화된 시절이라면
데일리 정산도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지금 만큼은 편리하지 않았다.


물론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나아지긴 했다.
회원 수가 100명 단위일 때, 1,000명 단위일 때, 10,000명 단위를 넘기면서 정산 시간은 줄었고, 효율을 위한 기능들도 하나둘씩 붙었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 이후의 이야기가 아니다.

론칭 초반, 아직 자리를 잡기 전의 시간들이다.


초기의 전달손들은 한 명, 한 명이

정말 큰 자산이었다.

특히나 배송 건수를 많이 소화해 주시는

그런 분들은 핸투핸 입장에서

그냥 ‘사용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보너스, 인센티브 같은 것들을

개별적으로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정산 주간이 되면 나는 늘 같은 자리에 앉았다.


관리자 페이지에서 배송 데이터를

하나씩 내려받고, 엑셀 파일을 열고,

조건을 맞춰 계산하고,

주거래은행 사이트에 접속해

이체 버튼을 눌렀다.


엑셀 파일은 어느새 여러 개가 되어 있었고,
한 번 정산을 끝내면 밤이 훌쩍 지나 있었다.

그 모든 과정을 내 손으로 했다.


누군가에게 맡길 수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직접 알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전달손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보낸손, 즉 실제 비용을 지불하는 수요층의

회원들 역시 초기 핸투핸에게는 하나하나

모두 소중한 고객이었다.


그래서 포인트 지급 같은 작업도 초반에는

내가 직접 했다.
정산하는 날,
포인트를 지급하는 날.

그런 날 들은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모니터 앞에 앉아 있으면 눈이 빠질 것 같았고,
몸은 분명히 고단했는데..

이상하게도 기분은 꽤 좋았다.
그 순간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든 가설이,

내가 만든 서비스가
실제로 사용되고 있구나.


아마도 러한 기분은

스타트업 창업자가 느낄 수 있는

가장 좋은 순간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나는 자동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그 발길질 덕분에

서비스는 버텼고, 사람들은 남았다.


나도 사업체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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