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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트업얼라이언스 Jul 15. 2019

[스얼레터#184] 통화 버튼을 누르기 3초 전

  저는 너무 익숙한데, 제 존재는 익숙하지 않게 느껴지실 분들께 전화를 드려야 할 순간이 생각보다 자주 옵니다. 소속을 밝히고 설명을 드리면 반갑게 받아주시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가끔 연락을 받고 갸우뚱한 반응을 보이는 분들도 계시는데, 회사의 저변을 넓히는(?) 과정이라 생각하며 간단하게 정신승리를 하고 넘어갑니다. 종종 당황스러운 일도 생깁니다. 예전 직장에서, 새 팀에 발령나자마자 잘 모르는 수십 명의 사람들에게 조사 응답 요청(이라고 쓰고 독촉이라고 읽는) 전화를 돌리는 일을 맡았는데요, 하필 가장 처음 전화를 받은 분께서 대뜸 저도 잘 알지도 못하는 이 조사에 대해 길게 쓴소리를 하시더라구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잘 부탁드린다며 후다닥 마무리하고, 계속 하다 보면 별 일이 아니게 될 거라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다음 분께 전화를 걸었던 기억이 납니다. 

  공동으로 아는 사람이 있다든가, 기댈 만한 구석이 실낱 같이나마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도 있습니다. 그냥 전화 통화 버튼만 누르면 되는 상황인데, 전화 받는 분에 대한 뉴스나 정보 중 놓친 게 없는지 또 검색해 보기도 하고, 미리 적어 놓은 말할 거리에 빠진 게 없는지 다시 찬찬히 읽어 보기도 하고, 상대는 모르는데 난 너무 익숙한 단어를 아무렇게나 말하지 않을까 가다듬고 있노라면 시간이 참 잘 갑니다. 심지어 요청 내용이 제가 봐도 쉽지 않아 보이면 통화 버튼을 누르기 전 심호흡을 하게 됩니다. 휴우. 통화가 끝나고 과정과 결과가 꽤 괜찮았다 싶으면 스스로 좀 으쓱하기도 하고, 생각대로 풀리지 않으면 시원찮은 말재주에 내심 안타깝기도 합니다. 

  이런 콜드콜이 어려운 건, '모르는 사람'에게 부담스러운 일인 '부탁'을 해야 하기 때문일 겁니다. 부탁을 받는 분의 부담에 조금이라도 보답을 하고자 '소정의 자문비' 같은 장치를 쓰기도 하지만, 이런 장치들이 오히려 수고에 비해 너무 약소해 형식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고, 이마저도 동원하기 어려울 때도 많습니다. 그렇다고 타인에게 부담을 준다는 괴로움 때문에 아예 가만히 있는 건 더 말이 안 되죠. 안 되면 어쩔 수 없지만, 일단 부탁을 받는 분들께도 최대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상황을 만들어 놓고 연락을 드려야겠죠. 그 와중에 인연이 닿는 감사한 분들이 계시다면, 이 분들의 노력이 더 잘 활용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신경쓰는 게 감사를 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언젠간 저도 낯선 사람이 도움을 요청했을 때 선뜻 응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요.

 

- 곧 섭외 전화를 해야 하는 동은 올림 - 



✔️184번째 스얼레터 다시보기

https://mailchi.mp/startupall/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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