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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트업얼라이언스 Apr 20. 2020

[스얼레터#222] 고기 구워 먹으려다 시작된 일들


몇 주 전의 주말, 어디선가 본 냄비 삼겹 통구이를 해봐야겠다는 결심이 들었습니다. 어디서 본 건 있어서 잡내를 잡겠다고 로즈마리를 사려다 보니, 식재료로 잘라 파는 것과 모종 가격이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되었고, 결국은 모종을 사 왔습니다. 모종을 사온 건 훌륭한 선택이었습니다. 고기 구울 때도 유용했지만, 음료도 업그레이드가 되더라구요! 이렇게 되니 로즈마리가 무럭무럭 자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좀 더 큰 화분을 사서 분갈이를 해 보았습니다. 커진 화분 탓인지 로즈마리가 왜소해 보여 식물용 영양제를 구매했고, 돌보는 데 재미를 붙인 나머지 생육환경 상 채광이 문제가 될 것 같단 판단에 결국(...) 식물 생장용 LED까지 사 버렸습니다.

고기 굽기가 식물 생장용 LED 구매로 이어진 이 황당한 소비 흐름을 생각하다, 우연히 ‘디드로 효과’라는 걸 접하게 되었습니다. 친구에게서 멋진 빨간 가운을 선물 받았는데, 붉은 가운과 자신의 낡은 물건이 안 어울렸던 겁니다. 붉은 가운과 어울리게끔 가구를 하나하나 바꾸다 보니 집 안의 인테리어를 모두 바꾸게 되었고, 큰돈을 지출했다는 디드로의 일화에서 이름을 따온 용어입니다. 

이 일화의 제목인 ‘나의 오래된 가운을 버림으로 인한 후회’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야기 속 주인공은 빨간 가운의 노예가 되었다며 우울해합니다. 다행히 아직까지 전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집에서 즐기는 요리와 음료 레퍼토리도 하나 늘었고요, 전등으로는 어두웠던 화장대도 밝히고, 원래 키우던 다른 식물에게도 같이 쪼이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집이 조금 더 좁아졌다는 생각이 드는 지금쯤은 이 흐름을 멈추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주인공이 현타를 느낀 건, 방이 '내 방'이 아닌 '붉은 가운'의 방이 되어 버렸단 걸 깨달았던 지점이었죠. 고기를 맛있게 굽는 것도, 로즈마리가 잘 자라는 것도 좋지만, 이 모든 지름의 목적은 결국은 제가 쾌적하고 행복하게 지내는 거였으니까요.


- 동은 드림 -



� 스얼레터 222호 보러가기: https://mailchi.mp/startupall/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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