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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트업얼라이언스 May 18. 2020

[스얼레터#226]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생님은

20.05.18 스얼레터 #226

지난 금요일은 스승의 날이었습니다. 미취학 아동 시절부터 참 많은 선생님들을 만났는데요, ‘스승의 날’하니 가장 먼저 떠오르는 분은 발레 선생님이더라구요. 최장기간 뵙는 선생님이기도 하고, 기대하지 않았던 여러 가지 것들을 가능케 하신 놀라운 분이라 그렇습니다. 

전 직장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발레를 접했습니다. 돈 벌기 시작했으니 월급으로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자 싶어서 눈에 띄는 건 다 지르고 나니는 시기에, 다양한 경험 정도 선에서 마무리되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으로 시작했구요. 제 몸의 작동원리를 비로소 깨닫는 새로운 경험을 하며 즐겁기도 했지만, 힘들었습니다. 돈 주고 왜 고생을 하고 있나 하는 순간은 오히려 금방 지나갑니다. 이리 저리 자세를 잡아 주신 첫 강사님의 얼굴에 뭔가 이상하다는 표정이 스칠 때, 운동보다 재활이 필요한 것 같은 몸뚱이에 부끄러움이 들더라구요.

발레가 슬슬 지겨워지던 시점에 지금의 선생님이 오셨습니다. 유니버설 발레단 출신이시고, 전공생 작품만 주로 봐 주시는 분이라는 얘기에 무리한 걸 시키시진 않을까 덜컥 겁부터 났습니다. 몸 사릴 방법만 궁리하고 있었는데, 첫 수업은 의외로 굉장히 순한 맛이었습니다. 동작 순서도 그렇게 어렵지 않았고, 근력운동도, 스트레칭도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라고 하시더라구요. 그 순한 맛 수업은 놀랍게도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유연한지, 근육이 잘 붙는지, 지적을 어떻게 수용하는지, 평소에 식습관은 어떤지도 파악하고 계시다 보니 거의 맞춤형 수업이 되기도 했죠.

선생님께 수업을 들은 지 5년이 넘어갑니다. 보통 이런 얘기를 하면 많이들 물어보시는 것들이 있는데요, 살도 안 빠졌구요, 진짜 발레리나처럼 몇 바퀴씩 돌지도 못하고, 발표회 계획도 없습니다. 그럼 왜 하냐구요? 발레리나가 되는 게 아니라, 건강과 재미를 찾는 게 목표였으니까요. 물론 드라마틱하진 않지만 변화도 있습니다. 유연함과는 담을 쌓은 저지만, 3년 정도 지나니 세로로는 다리찢기가 되었고, 어디서 본 것 동작들을 어설프게나마 흉내낼 수도 있게 되었고, 토슈즈도 신게 되었습니다. 조금씩은 다르지만 비슷한 과정을 겪어온 발레 동지들과도 끈끈해졌구요. 언젠가 들었는데, 다치지 않고, 흥미를 잃지 않고 꾸준히 운동하게 하는 게 저희 선생님의 목표셨다고 하더라구요. 아마 정말 별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전 계속 발레를 할 것 같습니다.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해 알지 못하는 사이 변화를 만들어 주신 선생님 덕분에요.


- 동은 올림 - 



✔️ 스얼레터 다시보기: https://mailchi.mp/startupall/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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