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23 스얼레터#124
어린 시절, 종이접기 좀 해보셨나요?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은 모르겠네요. 제가 유치원을 다닐 때만 해도 꽤 많은 시간을 종이접기에 보냈던 기억이 나거든요. 갑자기 왜 종이접기 이야기를 꺼냈을까요. 그 시작은 일주일 전 휴가로 갔던 후쿠오카의 숙소 이야기일겁니다.
저와 친구가 에어비앤비로 묵었던 하늘색 집은 5살짜리 아이와 부부가 살고 있는 곳이었어요. 둘째 날 아침, 부스스하게 일어나 향한 1층에서는 엄마 마사코와 5살 타카타가 한창 종이접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보자마자 저는 ‘오리가미?’라고 물으며 옆에 앉았어요. 다른 나라에서 태어난 우리가 같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에 무척 기쁜 마음이 들어서요.
마침 타카타는 뭔가 잘 안 풀린다는 얼굴로 쫄래쫄래 무얼 가지고 왔습니다. 와.. 정말 오랜만에 보는 ‘종이접기 도안’. 그러더니 아이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도안의 16번을 가리킵니다. '그다음 순서로 넘어가는 법을 모르겠다’라는 의미. 공룡을 상상하며 눈을 반짝이는 아이를 위해 함께 이리저리 접어보며 고군분투를 했죠. 하지만 도안에 적힌 일본어를 읽지 못하는 저희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어른의 크나큰 자괴감이란 ㅎㅎ
이제 슬슬 나갈 준비를 해볼까 하며 일어나려는데 “나는 저런 걸 안 해봤어”라고 툭 내뱉는 친구. “나는 어릴 때 저런 도안처럼 뭔가 정해진 걸 만들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처음에는 가볍게 듣고 넘겼어요. 그는 독일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 그런가 보다 하고요. 그러다 갑자기 번뜩 떠오른 생각 하나. '어릴 때부터 도안이 정해준대로 종이접기를 했던 경험들이 '항상 정답 그대로 해내야 한다'라는 압박에 꽤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그 생각은 꽤 오래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창의적이게 일하는 방법’ ‘자주적인 삶’ 등의 글들을 개인적으로 찾아 읽으면서도, 어떤 일을 할 때마다 종이접기 도안 같은 정답이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다른 사람들의 ‘도안'인 사례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하죠.
그래서 여행을 다녀온 후 작은 목표가 하나 생겼습니다. 단순한 과업이 아닌 이상, 남의 도안이었던 사례를 가장 먼저 찾지 말자는 것.
분명, 꽤 오랜 어린 시절을 종이접기 도안과 함께 보낸 저에게 쉽지 않은 과제일 겁니다. 그래도 여러분에게 이 이야기를 공유하며, 다시 한번 나만의 종이접기를 위한 결심을 해보려고요. 도안은 멀리 치워두고 말이죠. 공룡이 안되면 어떤가요. 요상한 동물이 탄생하더라도 그것이 종이접기 도감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날이 올지도 모르니까요.
- 딱 일주일 전, 후쿠오카의 카페로 돌아가고 싶은 데이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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