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로 펀딩클럽] 소프트뱅크벤처스코리아 문규학 대표 2편
벤처캐피털은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그들의 성장을 도와주는 훌륭한 파트너입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는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 좋은 VC를 소개하고, 창업자들이 VC와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도록 2017년 2월부터 테헤란로 펀딩클럽을 개최해왔습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첫 번째로 소개한 벤처캐피털은 소프트뱅크벤처스코리아입니다. 문규학 대표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임정욱 센터장의 대담, 청중 질문을 공유합니다.
- [테헤란로 펀딩클럽] 소프트뱅크벤처스코리아 문규학 대표 1편 에서 이어집니다.
임정욱(이하 임) 제가 문 대표님을 처음 뵈었던 때가 20년 전이다. 이후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변화를 어떻게 체감하시는지.
문규학 (이하 문) 나는 평론가나 언론인이 아닌, 생태계에 빠져 오랜 시간을 보내왔다. 체감상, 20년 전은 10년 전보다 나빴고 10년 전은 지금보다 나빴다.
20년 전의 지분투자는 달랑 2장짜리 보통주 계약서 하나로 끝나는 과정이었다. 이전의 벤처캐피털은 담보를 잡고 융자를 기본으로 진행했다. 은행과 다를 게 없었다. 당시 테헤란로 섬유센터 빌딩 옆에 사무실이 있었다. 당시에는 집에 현금이 많은 어머니들이 20억 원씩 돈을 부풀려달라고 가지고 오셨다. 눈이 맑지 않은 기업가도 많았다. 상장 후 높은 수익만 챙겨 떠나려는 사람들이 많았던 거다.
요즘은 사람들의 마인드가 달라졌다. 창업자들은 내가 하는 도전이 내 인생을 걸만한 일인가를 고민하고, 정말 하고 싶어서 이 일을 한다는 확신이 생겼다. 얼마 전 대기업에 가서 강의를 했다. 마지막 인사로 "창업 생태계는 힘드니 함부로 도전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건넸다. 그런데 인사담당 상무님이 끝나고 내게 감사하다는 거다. 일주일에 열 명이나 창업하겠다고 회사를 박차고 나가는데, 내가 가서 그런 말을 한 거다(웃음). 이제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게 뭔지, 자기가 해야 하는 게 뭔지를 아는 창업가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임 요즘 창업자들의 실력도 예전보다 훨씬 뛰어나니 생태계가 고도화됐다고 보시는 건가.
문 실력이 좋다는 것의 기준을 무엇으로 잡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것 같다. 단순히 코딩 실력이 좋아졌다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스스로를 바라보는 실력은 확실히 좋아졌다. 내가 왜 이런 도전을 하고 왜 이런 고생을 하는지에 대해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실력들이 좋아졌다. 경영 실력이 발전하는 속도도 빨라졌다. 많은 실패를 겪고, 이를 보완해나가면서 개개인의 실력이 좋아지고 기업의 실력이 좋아진다. 그리고 생태계에 창업가들을 도와주려는 좋은 기관, 프로그램들이 정말 많다. 덕분에 생태계 전체의 실력도 좋아졌다.
임 벤처캐피털 자체가 리스크를 항상 감수해야 하는 모험자본 아닌가. 아까 과거의 한국 VC는 융자하듯 손해 안 보고 투자했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지금은 그런 자세가 많이 바뀌었는지 궁금하다. 소프트뱅크벤처스코리아가 팀원들이 어떻게 리스크를 감수하고 과감하게 투자하도록 이끄는 비법은 무엇인가.
문 사실 팀원들에게 "리스크 테이킹 잘 하라"고 눈에 띄게 배려하지는 않는다(웃음). 기업은 실패를 자산으로 성장한다. 투자자도 마찬가지다. 사업계획서 20페이지를 두고 투자를 결정하는데 이게 어떻게 항상 성공하겠나. 80%는 실패한다. 그런데 이 80%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이 80%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 한 번의 실패에 좌절하지 않는 사람들이 꾸준히 오래 투자하고 리스크 테이킹에도 자유롭다. 투자자도 사람이라 한번 실패하면 졸아서 손이 잘 안 나가게 마련 이어서다. 회사가 해줄 수 있는 배려는 그냥 해보라고 말해주는 수준이다.
임 그렇다면 문규학 대표가 지닌 투자자로서의 배포는 어디서 어떻게 배웠나. 손정의 회장에게서?
문 그렇다.
임 손정의 회장의 인연이 궁금하다.
문 미국에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취직하려고 알아보던 중 우연찮게 소프트뱅크 미국을 방문했다. 사장과 비서가 스타벅스에서 면접을 보겠다기에 일단 나갔는데, 왜 여기서 면접을 하냐고 물으니 아직 사무실이 없다는 거다. 나는 지금은 없어진 한 컴퓨터 회사에 다니다가 그만뒀는데, 사표 낼 때 앞으로 직원수 100명 넘는 회사에선 일 안 하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사람이 많으니 본질보다 비본질, 내용보다 주변에 얽매인다고 생각했다. 형식적인 것에 얽매이기 싫었다. 그런데 사무실도 없다는 거다. 사장도 마음에 들었다. 도전의식이 생겼다.
6개월 정도 근무했는데, 비서가 급하게 나를 찾더니 미국에 온 손정의 회장을 공항에서 픽업해야 하는데 사람이 없다더라. 리무진 기사가 사고가 나서 못 왔다는 거다. 파트너 차를 빌려주면서 나더러 손 회장을 픽업 해오라는 거다. 운전하며 가는 내내 너무 떨려 한 마디도 못했다. 손 회장도 나를 기사로 알았는지 내리면서 가방을 건네줬다. 정신 차리고 다음 스케줄을 이야기하니, 웬 운전기사가 나한테 스케줄을 이야기하는지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더라. 그제야 근무한 지 6개월 정도 된 사람이라고 인사했다.
임 손정의 회장의 투자 스타일은 어떤가. 진짜 있는 그대로 리스크 테이킹의 연속인가?
문 무식하게 밀고 나가고, 뒤도 안 돌아본다. 그런데 그만큼 투자 전에 많은 생각을 한다. 소프트뱅크가 전대미문의 120조 원짜리 펀드를 출범했다. 외부에서는 이런 펀드가 탄생한 사실이 다소 갑작스러울 수 있다. 그렇지만 들여다보면 몇십 년을 갈고닦은 손정의 회장의 안목과 비전이 뒷받침한 결과물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저유가로 큰 타격을 받고 나서 다양한 방식으로 경제구조를 개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소프트뱅크의 투자는 여러 가지 환경을 굉장히 오랜 시간, 끈질기게 살펴본 후에 성립된다.
임 한국 벤처캐피털 중 유일하게 외국인 심사역이 있는 벤처캐피털이 아닌가 싶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문 각 나라의 파트너들이 각국에 대해 해주는 이야기를 최대한 많이 들으려고 한다. 국내 심사역들이 기업 시찰할 때 같이 방문하기도 한다. 이스라엘이나 실리콘밸리, 각자의 분야에서 전문성 있는 스타트업들을 많이 만나도록 장려하고 있다.
임 최근 VC가 되고 싶어 하는 학생, 사회초년생이 많다. 한국에서 VC가 되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문 소프트뱅크벤처스코리아에서 작년 말 처음으로 공개채용을 진행했다. 벤처캐피털은 사실 굉장히 닫혀있는 동네다. 한국은 VC가 되면 자기 실적을 정부에 다 등록해야 하는데, 그 인원이 총 1,420명(행사일자 기준)이다. 굉장히 적은 수다. 이 숫자가 확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닷컴 버블 때 800명까지 줄었다가 다시 늘어났지만 이 규모에서 갑자기 크게 늘어나진 않을 거다.
VC가 되고 싶다면 대기업이든, 스타트업이든 상관없이 우선 기업을 경험해봐야 한다. 기업을 적어도 4~5년 넘게 경험하면서 기업 경영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VC는 ‘새로운 것을 보면 신나는 사람’이 해야 한다. 기질과 성격상 시큰둥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분들은 약간 곤란하다. 새로운 것을 보면 너무 흥분하고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어야 한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인내심이다. 투자를 하고 난 후 진득하게 스타트업의 성공과 실패를 함께 해야 한다. 그래서 주식 투자하는 사람은 VC를 못한다고 들었다. 답답해서…(웃음) 아픈 것을 인내하고 발판으로 삼을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피플 스킬도 있어야 한다.
임 이제 스타트업의 입장에서 질문을 드려보겠다. 소프트뱅크벤처스코리아는 어떤 스타일의 창업자를 선호하는가.
문 똘기 충만한 사람. 평범한 사람들은 평범하게 된다. 똘기 충만하고 비범한 사람들이 좋다. 눈빛에서 그게 느껴진다.
임 포트폴리오사 중에 사례가 있나.
문 SE웍스의 홍민표 대표님. 처음 봤을 때 정말 해커 같았다. 매니지먼트 피칭 자리에 청바지를 입고 비니를 쓰고 왔다. 그런데 왠지 그 모습에서, 아 이 사람 보안시장에서 한 가닥 할 것 같다는 비범함을 느꼈다. 비범함에서 흘러나오는 말과 행동, 우리가 질문했을 때의 답변, 일에 대한 진정성과 자신감이 한눈에 보이는 분들이 있다.
특히 투자자가 질문했을 때 어떻게 답변하는지가 굉장히 중요하다. IR 슬라이드를 아무리 멋지게, 오랫동안 만든다고 해도 사실 제일 중요한 건 투자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왜 이 일을 하는지, 왜 이 일이어야만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데 의외로 답하지 못하는 창업자가 많다. 그 답을 하실 줄 아는 창업자여야 한다.
임 어떤 스타트업들에겐 VC 투자가 막연하게 느껴지곤 한다.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도 모르고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지도 모른다.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 상태에서 VC에게 다가가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문 역설적으로 VC에게 안 다가가는 게 제일 좋다. 정말 좋은 기업에겐 VC가 진짜 찾아간다. 못 믿겠지만 사실이다. 투자 안 받겠다고 버티는 좋은 기업이 생각보다 정말 많다. 고수들 사이에서는 실력자가 어떤 회사인지 모두 알고, VC가 먼저 만남을 청한다.
이게 조금 힘들다면 두 번째 방법을 택해야 한다. 기업의 성장단계를 놓고, 그 단계에 투자하는 가장 뛰어난 플레이어들과의 접점을 넓히는 것이다. 내가 지금 어떤 규모의 팀을 꾸렸는지, 그들에게 어떤 역할을 배정했는지, 어느 정도의 투자를 원하는지 잘 파악한 후 그 단계에 맞는 인큐베이터 또는 액셀러레이터를 만나는 것이다. 한국은 이제 성장단계별 투자자, 지원기관 라인이 막 정착하기 시작했다. 각자 기업의 현재적 수준과 규모, 성장 단계를 잘 가늠하고, 그에 맞는 우수한 플레이어를 타깃해 접점을 넓혀가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콜드 콜은 사실 많은 경우 거절당한다. 투자사는 봐야 할 자료가 너무나 많고,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좋은 플레이어를 만나러 가기도 바쁘다. 위의 두 가지 방법이 어려운 분들은 투자사와 아는 사람에게 추천을 받는 것이 도움된다. 직간접적으로 추천받아 오는 분들은 당연히 한번 더 살펴보게 마련이다.
투자사들 사이에, 몇 년간 특정 기술을 개발 중인 실력 있는 회사라고 소문난 곳들이 분명 있다. 네트워크 속에 항상 안테나가 서있다(웃음). 우리가 하는 일 중 가장 중요한 일이 딜 소싱이지 않나. 우리가 직접 찾아가는 딜이 항상 가장 좋았다. 기회란 마구잡이로 돌진하는 것보다는 집중해서 내 일을 잘 하고 있다 보면 어느새 옆에 다가와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임 자기와 핏이 맞는 투자자를 찾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문 각 VC가 어떤 영역에 주로 투자를 하고 있고, 어떤 영역에 관심이 있고, 어떤 스타트업을 원하고 있는지는 주변 레퍼런스를 체크해보면 얼마든지 알 수 있다. 최근에는 공개된 정보가 아주 많다. 조금만 더 관심을 갖고 VC에 대해 탐구하고 다가가는 자세가 중요하다.
Q 투자 대상 기업을 발굴, 심사하는 일과 투자한 포트폴리오사를 서포트해주는 일 중 어떤 일에 더 집중하는지 궁금하다.
A 우리는 업무를 세 가지로 나눈다. 투자 발굴과 심사, 투자 후 관리, 엑싯이다. 절대 시간으로 따지면 50:30:20 순이다. 투자는 돈이 있으면 할 수 있다. 그런데 소프트뱅크벤처스는 늘 투자 후 성공을 위한 노력에 집중한다. 이사회 참여를 통해서도 회사의 성장을 많이 지원하는 편이다. 많은 스타트업이 기술개발과 사업 확장은 잘하는데 의외로 인사관리나 자금관리를 포함한 기업경영에서 큰 어려움을 겪는다. 사람이 떠나거나 돈이 떠나면 기업이 안된다. 시장이나 경쟁에서 실패하는 스타트 업보다 기업경영에 어려움을 겪어 실패하는 스타트업이 의외로 많고 굉장히 안타깝게 느낀다. 이것을 훈련시키고 단련시키며 역량을 키워내는 일에 많은 공을 들인다.
Q 투자한 스타트업이 일본 시장과 접점을 만드는데 어떤 도움을 주는지, 지금까지 포트폴리오 회사들 중 일본 진출에 도움을 준 사례가 있는지 궁금하다.
A 일본 진출과 관련된 미팅은 수없이 주선해봤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일본 기업에 비해 우리 기업이 시장 사전조사를 미흡하게 진행한 경우가 너무 많다. 그래서 중간에 엎어진다. 일본에서 성공하고 우호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먼저 친구가 돼야 한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막무가내로 사업 아이템을 들이대면 일본 사람들은 화들짝 놀란다. 일본 시장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도전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 일본은 23년째 야후 재팬이 일등인 나라다. 절대로 만만한 시장이 아님을 파악하고 준비를 단단히 하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