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29 스얼레터#150
유독 기다림이 힘든 순간이 있습니다. 그 기다림은 대부분 저를 기다리는 때인데요. 충분한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여전히 제자리에 서 있는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남들은 저만큼 앞서 있는데 혼자만 뒤처져 있다는 생각이 몰려오죠. 조급해하지 말자고 다짐하지만, 왜 아직도 이것밖에 못 하냐며 자신을 채찍질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기다림의 시간은 결국 자기반성의 시간으로 변하고 맙니다. 서둘러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은 급해지고, 지나친 반성으로 온몸에 한껏 힘이 들어가게 되죠. 평소에 익숙하던 것마저 괜히 무겁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힘을 빼고 자신만의 속도로 기다림의 시간을 맞이하면 된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마음처럼 잘되지 않더라고요.
그러다 최근에 마음을 고쳐먹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다름 아닌 씨앗 때문인데요. 얼마 전 처음으로 식물을 키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영 싹이 트지 않더라고요. 초반에는 기다리는 과정이 마냥 답답했습니다. 왜 이렇게 변화가 없는지 꼭 저의 모습을 보는 것 같더라고요. 찬찬히 생각을 다듬고 식물이 잘 자라기 위한 요소를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물의 양은 적절한지 햇빛은 잘 드는지 확인했죠. 말 그대로 씨앗을 성장시키는 데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오래 지나지 않아 두 눈에 파릇한 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겨우 돋은 싹이 준 뭉클함은 꽤 묵직했는데요. 앞으로 잘 뿌리내려서 꽃도 피울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러고 나니 내일은, 다음 주는, 다음 달은 또 얼마나 자라있을까 기다려지더라고요. 분명 기다림이 설레고 두근거렸습니다. 기다림의 즐거움을 이제야 알겠더라고요.
그동안 저는 성장을 기다리는 시간을 질타하는 시간으로 사용해왔습니다. 기다림은 힘들 수밖에 없었죠. 자신을 믿지 못한 채 앞만 보고 달리고만 있었으니까요. 마음속은 발전하지 못할까 봐 두려움으로 가득했고요. 씨앗이 싹트는 과정을 기다리며 어떤 자세로 기다림을 마주해야 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조급함에 앞서기보다는 무엇이 더 필요한지 살펴야 하겠더라고요. 누구보다 자신을 믿고 나아가야 한다는 것 또한 느낄 수 있었고요.
지금 당장 할 수 없는 일이여도, 여전히 시행착오가 필요한 일이여도 언젠가 능숙하게 해낼 수 있을 나를 기다려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더 깊어진 자신을 만날 수 있는 설렘으로 가득한 채 말이죠. 저와 여러분들 안에 심어진 씨앗은 내일 또 얼마나 자라 있을까요. 그리고 곧 피어날 꽃은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그 시간이 벌써부터 기다려집니다.
모든 씨앗이 자신만의 속도로 잘 자라나길 바라며 인경 드림
스얼레터 150호 다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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