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스얼레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타트업얼라이언스 Nov 05. 2018

[스얼레터#151] TMI가 필요한 순간

지난 해 9월, 체코 프라하에서 마주친 어떤 순간 ⓒ이승아


한때 '오글거린다'는 표현이 많이 쓰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주로 보는 사람이 못 견딜 정도의 감성 충만한 표현들, 열심히 멋부리려고 애 쓰는데 하나도 멋 없는 광경같은 걸 볼 때 쓰는 표현이었는데요.

물론 저도 되도 않는 표현들을 잘 견디지 못 하는 편이라 눈살을 찌푸릴 때가 많았지만, '오글거린다'는 말이 생기고 나서 그런 감성들이 웃음거리가 되는 건 좀 속이 상했어요. 모든 사람이 다 '쿨'할 필요도 없고, 표현력이나 어휘력이 부족하다고 해서 그들이 힘들거나 행복한 걸 표현하는 게 놀림받을 일은 아니니까요.

저는 요즘 'TMI', '투 머치 인포메이션'이라는 단어를 접하고, 쓸 때마다 가끔 비슷한 생각을 합니다. 가끔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나 취향을 상대방을 고려하지도 않고 쉴 틈 없이 쏟아내는 사람과 대화하고 나서 기진맥진하면 '아 정말 TMI...' 라고 생각하곤 하는데요. 그럴 때마다 '과연 TMI라는 신조어가 안 생겼어도 이런 생각을 했을까?' 싶어서요.

아무것도 말하지 않거나, 해야 할 이야기도 안 하는 것보단 '투 머치 인포메이션'을 주는 쪽이 훨씬 좋은 것 같습니다. 사실 나는 별로 관심 없을지도, 알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얘기를 그렇게 꺼낸다는 자체가 어쩌면 고마운 일이잖아요. 적어도 내가 들어줄 거라는 생각에, 나에게 말해도 된다는 생각에 하는 이야기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저희 센터장님과 이사님(내부에서는 정욱님, 기대님이라고 부르죠)이 자주 강조하시는 '오버 커뮤니케이션'이 조직 내부 뿐만 아니라 사람 사이에서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욱님이 블로그에도, 블로그를 모은 책에서도 언급하셨던 '오버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구절이 인상 깊어서 늘 기억해두고 있는데요. "경영진이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 않으면 중간 관리자 이하의 직원들은 'Guessing(추측)'을 하게 된다. 그리고 점점 회사의 방향에 대해 'Uncertainty(불확실성)'을 느끼고 불안해 한다"는 거예요. 

조직이든, 가족이든, 연인이든, 친구든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뭘 또 그렇게까지' 하나 싶은 이야기들을, 비록 정리가 안 되어 비논리적이더라도 털어놓다보면 추측 대신 이해를 할 수 있으니까요. 이해를 하면 좀 더 나은 대화를, 나은 상황을 만들어갈 수도 있겠죠. 그리고 아시죠? 추측은 오해가 생기는 시작인 것을요. 

모든 TMI가 긍정적인 것은 절대 아니지만, (상대방이 지칠 수도 있고, 좋은 이미지를 오히려 망칠 수도 있고요), 누가 아나요? 전혀 나를 이해하지 못 할 것 같은 사람이 내 TMI를 듣고 나를 이해할 수도 있고, 별로 흥미가 없었던 이와의 대화가 상대방의 TMI 덕분에 풍부해질 수도 있죠. 전혀 다르다고 생각했던 사람의 TMI 속에서 놀라운 공통점을 발견할 수도 있고요. 

어쩌면, 모두가 외로운 우리들에게 필요한 건 '쿨'하고 '시크'한 것보다 서로에 대한 '투 머치 인포메이션'일지도 몰라요. 그리고 사실 다들, 나에 대한 투 머치 인포메이션을 알려주고 싶어서 SNS도 하고, 이런 글도 쓰는 게 아니겠어요?

오늘자 여러분의 메일함에 배달될 이승아에 관한 TMI는 바로 이것입니다. '이승아는 TMI를 좋아한다'는 것이요. 
 

- 당신에 대한 TMI가 궁금한 이승아 드림









매거진의 이전글 [스얼레터#150] 나를 기다리는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