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을 제대로 알 수 있는 수단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저는 카드 내역서가 꽤 정확한 근거라고 생각합니다. 소비 데이터는 뼈 아플 만큼 솔직해서 어디서 언제 무엇에 니즈를 느꼈는지를 투명하게 나타내거든요. 즉 내가 사용하는 상품과 서비스들이 합집합이 곧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만든다는 겁니다. 그래서 많은 핀테크 회사들이 이 데이터를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일지도요.
그리고 또 하나, 꾸준히 같은 서비스를 결제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매번 새로운 상호명이 업데이트되는 분도 있을 겁니다. 오늘은 그런 사람에 대해서 말해보고 싶은데요. 바로 '경험충'들입니다.
저는 확실한 경험충입니다. 구관이 명관인 사람을 제외하곤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걸 큰 즐거움으로 느끼거든요. 매달 새로운 브랜드를 찾고 괜찮다는 음식점이 있으면 두말없이 따라나섭니다. 새로운 문화생활도 항상 환영이죠. 어린 날 호기심에 뉴욕에서 처음 본 태양의 서커스는 다음 주에 예약해놓은 내한 공연까지 치면 벌써 세 개의 다른 작품을 보게 됩니다.
여행에서는 그 특징이 더욱 뚜렷해지는데요. 죽기 전까지 지구본을 까맣게 색칠하고 싶은 소망이 있는 것 마냥 새로운 나라를 최우선으로 선호합니다. 만약 같은 곳을 방문하게 되더라도 안 가본 지역을 선택하거나 다른 테마를 잡는 편이죠.
따라서 불법만 아니라면 '안 해본 것 = 하고 싶은 것' 방정식이 꽤 통하는 저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얼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이런 성향이 서비스 기획자로서 업에 충실하고자 하는 노력인 줄만 알았습니다. 분야를 막론하고 잘 나가는 서비스가 있다거나, 괜찮은 신규 앱 및 서비스가 출시되면 바로 사용해보는 것이 매주 일과 중 하나였거든요. 그런데 포지션이 바뀌어도 계속 이러는 것 보면 이건 성향이더라고요.
그리고 이 성향은 스타트업 지원기관 매니저로서 다행히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매달 새로운 스타트업 서비스에 결제를 서슴지 않으며 생태계에 일조하고 있으니까요. 이번 달에만 유료 결제를 통해 시작하는 스타트업 서비스가 벌써 2개. 늘 이런 식이라 이미 네 개의 서비스가 제 스타트업 탐구생활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돈이 쓰고 싶어서 이러는 건 절대 아닙니다. (진지) 그간 경험을 통해 어떤 서비스든 결제를 하고 써봐야 그 진면모를 경험할 수 있다고 믿거든요. 특히 유료 서비스라면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 가격 대비 만족스러운 경험이 얼마나 주어지는지, 무엇이 첫 결제를 하게 만드는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 결제를 하고 싶게 하는지를 사용자 입장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투자는 안 해봤지만 스타트업의 성장성을 판단하는 데에는 유저 관점의 WOW포인트가 가장 기본일 것 같기도 하고요.
신기한 것은 경험충의 쾌감이 아직도 사춘기 소녀 같다는 것입니다. 정말 잘 만든 서비스를 만나면 지갑이 조금 불쌍해져도 그 희열이 엄청나거든요. 나이가 들면서 조금 무던해질 만도 한데 참 쉽게 안 변하더라고요. 스타트업은 기존 질서를 기술적으로 또는 구조적으로 뒤집는 것이 핵심이기에 그 짜릿함이 더 강해서일까요.
또한 혼자 써보는 것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얼마 전 막내 갱님과 둘만 점심을 먹을 일이 있었는데요. 라멘을 먹는 내내 최근 경험해본 한 서비스가 어디가 그렇게 기가 막혔는지만 얘기했습니다. 이렇게 경험충들은 감동적인 경험을 제공한 서비스에 대해 충성 고객은 물론, 자연스레 에반젤리스트(전도사)가 되는 것 같아요.
소름 돋는 사실 하나 알려드리자면, 스얼에는 이런 사람이 6명이나 있습니다. 각각 관심분야가 다른 덕분에 넓은 영역의 경험들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스얼에서 일하는 큰 매력이기도 하죠. 또한 스얼이 스얼다운 이유라 생각합니다.
끝으로 훌륭한 서비스가 많이 나올수록 제가 가난해진다는 거, 참고해주시고요.
하지만 늘 감탄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 신체 나이는 먹어도 감탄의 나이는 먹고 싶지 않은 데이나 드림
스얼레터 152호 다시 읽기 : https://mailchi.mp/startupall/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