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로 펀딩클럽] 카카오벤처스 유승운, 정신아 공동대표 2편
벤처캐피털은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그들의 성장을 도와주는 훌륭한 파트너입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는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 좋은 VC를 소개하고, 창업자들이 VC와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도록 2017년 2월부터 테헤란로 펀딩클럽을 개최해왔습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네 번째로 소개한 벤처캐피털은 카카오벤처스입니다. 행사는 유승운, 정신아 공동대표*의 카카오벤처스 소개,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과의 대담, 그리고 참석하신 분들의 Q&A로 진행됐습니다.
- [테헤란로 펀딩클럽] 카카오벤처스 유승운, 정신아 공동대표 1편 에서 이어집니다.
*본 행사는 2017년 3월 진행됐습니다. 당시 사명은 케이큐브벤처스였으며, 공동대표로 소개해드리는 정신아 대표는 당시 상무로 재직했습니다. 해당 시점 언론보도에는 케이큐브벤처스, 유승운 대표, 정신아 상무로 기재됐음을 알려드립니다. 본 글은 재구성한 시점(2018년 8월)을 기준으로 변경된 사명과 직함으로 표기합니다.
(본 글을 업로드하는 시점인 2019년 1월을 기준, 카카오벤처스는 유승운 대표의 스톤브릿지벤처스로의 이동으로 정신아 단독대표 체제로 변경됐습니다.)
임정욱 센터장(이하 임) 게임은 소비자가 직접 사용하기 전까지는 시장 반응을 예측하기 힘든 분야다. 이런 산업의 경우 어떤 기준으로 투자를 진행하시나. 또 게임사들이 매년 대규모로 폐업하고 있다며 시장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에 대해 카카오벤처스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유승운 대표(이하 유) 영화도 극장에 걸리기까지 몇 명이 이 영화를 볼 지 전혀 예측하기 어렵지 않나. 게임도 마찬가지다. 한때 우리나라 게임 업체들이 온라인 게임 분야에서 전 세계를 호령하던 시절이 있었다. 중국뿐만 아니라 대만, 일본, 태국의 게임 선호 순위에 항상 한국 게임이 가득했다.
그래서 우리는 게임 시장에
여전히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
긍정적으로 변할 것이라고 믿는다
이때 좋은 게임을 만든 인재들이 여전히 한국 게임 업계에 남아있고, 전 세계적인 게임 시장 크기도 계속해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VC에 비해 조금 더 용감하게 게임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
우리는 제2의, 제3의 스마일게이트가 한국에서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고 믿는다. 물론 게임 산업에 흐름은 있을 수 있다. 플랫폼과 장르가 한 바퀴씩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니 예전에 한국 게임 업계가 잘 나갔던 분야에서 다른 분야로 장르가 이전될 수는 있지만, 여전히 게임 산업과 시장의 가능성은 확실하다고 본다.
아까 팀워크, 팀원 간의 신뢰와 호흡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 기준대로 지금까지 합을 맞춘 게임 인력들의 역사, 팀원들이 함께 개발한 게임의 방향을 보고 앞으로도 계속 과감하게 투자할 생각이다.
정신아 대표(이하 정) 덧붙이면 사실 게임이야말로 사람을 보고 투자하는 행위의 정점에 있다고 본다.(웃음) MMORPG를 개발했던 사람들은 웬만하면 계속해서 MMORPG를 개발하고, 이 분야에서 새롭게 창업한다. MMORPG를 개발하다가 갑자기 캐주얼 게임을 개발하겠다고 장르를 바꾸시진 않더라는 이야기다.
게임은 출시하면 바로 다음날부터 돈을 벌기 시작하기 때문에, 그때 들어가는 투자는 초기 투자가 아니다. 팀이 결성되는 순간에 찾아가서 “저희한테서 투자받으시죠”라고 말씀드려야 투자할 수 있는 분야가 게임 분야다.
임 흔히 말하는 ‘사후 관리'는 어떤 부분을 중점으로 이루어지나.
정 투자 포트폴리오가 많아지다 보니 우리 포트폴리오 내에서도 스테이지 별로 다양한 스타트업들이 생겼다.
투자받고 2년 정도까지는 한 달에 한 번, 또는 이 주에 한 번씩 만나서 서로 의견을 나눈다. 대화 상대가 되어 사업 제휴나 개발을 도와주고 각종 네트워크를 소개해주는 데 중점을 둔다.
2년이 지나고 나면 스타트업들이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한쪽은 이제 성공해서 우리와 굳이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하던 대로 계속 잘하면 된다. 이분들은 그 단계부터는 정기적으로 만나기보다는 필요할 때마다 제휴나 네트워크 부문에서 원하는 사항을 먼저 이야기하시고, 이를 도와드리는 편이다.
한쪽은 아직 사업이 자리잡지 못해서 계속해서 사업의 방향을 고려해야 하는 분들이다. 이분들에게는 밀착지원으로 우리가 붙어서(웃음) 끊임없이 추후 방향성을 논의한다. 마음의 벽을 허물고 어려운 고민을 기꺼이 함께할 수 있도록 각종 논의와 토론을 진행하는 편이다.
유 카카오벤처스가 다른 VC와 다른 점은 초기 스타트업의 홍보를 도와준다는 점이다. 스타트업이 투자를 받으면 투자 관련 보도자료는 우리가 배포한다. 해당 스타트업이 스스로 홍보의 기능을 갖기 전까지는 서비스나 프로덕트를 알릴 때 우리가 홍보를 대신해준다. 투자 보도자료를 내면 많은 경우에 후속 인터뷰가 잡히는데, 이 부분도 일정 기간까지는 서포트해드린다. 이 부분에 대한 만족도가 상당히 높다.
임 카카오벤처스로부터 투자받고 싶은 스타트업은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콜드 메일도 읽으시나.
정 이메일로 보내주시는 사업계획서도 다 확인한다. 물론 누군가의 소개를 받으면 만날 확률이 높기는 하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비즈니스 플레이어다
공식 계정으로 사업계획서를 받아도
의미 있다고 판단되면 당연히 만난다
모든 내용을 다 이메일에 쓰지는 않는 편이 좋다. 내용도 길어지고 읽기 어렵다. 한 줄 설명과 함께 스크린샷을 보내고, 우리 팀이 가장 자신 있는 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가장 내세울만한 것이 무엇인지를 드러내면 된다. VC에게 보내는 이메일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유 사실 스타트업에게 사업 계획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루닛이나 두나무도 최초의 사업 모델과 완전 다른 방향을 선택했다. 본인의 회사를 소개할 때, 잘 만든 사업계획서보다 이 서비스에 대한 고민이 얼마나 진지하게 선행되었는지를 부각하는 것이 좋다.
임 그럼 반대로, 카카오벤처스가 먼저 스타트업을 찾아갈 때는 주로 어떤 팀을 찾아가나.
정 열심히 찾는 편이다. 핸드폰을 두 개 쓰면서 세 가지의 앱스토어를 매일 살펴본다. 매일 새로 올라오는 서비스를 확인해 보고, 사용하고, 괜찮은 팀에게 연락한다. 위에 말한 것처럼 서비스를 기획하고 개발하기까지 많은 고민을 한 것이 돋보이는 스타트업이 있다. 이런 분들을 찾으면 꼭 만나고 싶다. 페이스북 메시지를 다짜고짜 보낼 때도 있다. 리서치를 잘해야 한다.(웃음)
임 그렇다면 일주일에 새로운 팀을 몇 개 정도 검토하시나.
정 서비스 파트에서는 주로 일주일에 30개 정도의 팀을 만난다. 심사역과 파트너 세 명이 같이 움직일 때도 있고 따로 움직일 때도 있지만, 다 합치면 그 정도 된다. 초기 스타트업들이 카카오벤처스를 어려워하고 접근성이 떨어진다고 느끼면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 힘들고 바쁘더라도 최소한 30팀을 만난다는 것을 늘 일주일의 목표로 삼는다.
임 이제는 큰 틀에서 이야기해보고 싶다.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가 3년 전과 비교해서 어떻게 발전했다고 보시나.
정 좋은 팀은 항상 나온다. 재작년에도, 작년에도 ‘이제 좋은 팀은 다 나왔다’고 했는데 자꾸 새로 나온다.(웃음)
유 맞다. 매년 연말쯤 ‘아, 내년에는 올해만큼 좋은 팀은 만나기 어려울 것 같다’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다른 VC들도 우리처럼 낙관론보다는 신중론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우리가 모르는 어디선가 좋은 팀들이 항상 등장한다. 스타트업들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시도하면서 새로운 좋은 팀들이 생겨나는 것 같다.
임 그렇다면 좋은 스타트업 생태계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 최근 여러 컨퍼런스에 가보면 “이제 나올 건 다 나온 게 아니냐. O2O 분야도, 모바일 분야도, 웬만한 서비스는 나올 만큼 나와서 더 이상 새로울 게 없어 보인다”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모두가 실리콘밸리는 끝났다고 했을 때 구글이 나왔고, 구글만한 회사가 또 나오겠냐고 했을 때 페이스북이 나왔다. 페이스북 이후에 뭐가 더 나오겠냐고 했을 때는 우버가 나오지 않았나.
유 모든 서비스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건너올 때 굉장히 많은 기회와 기업이 생겼다. 온라인에서 모바일 플랫폼으로 넘어오면서 또 엄청난 기회와 기업이 생겼다. 우리는 이 정도의 혁신을 가져올 새로운 트렌드가 분명히 또 생길 것이라고 믿는다.
트렌드의 전환은 몇 개의 벤처 기업이
이뤄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신기술이 어떤 임계점에 도달하면
다 같이 옮겨가는 산업의 문제다
개인적으로는 이미 기업에서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하신 분들의 창업이 더 활발해져야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가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 대기업에 계신 분들의 사내벤처와 분사가 활발하던 때가 잠깐 있었다. 최근 여러 스타트업 지원 활동들이 청년 창업을 붐업시키고 독려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지 않나. 하지만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에 재직 중인 30대와 40대 경력직의 창업도 정말 중요하다. 누구보다도 좋은 정보와 노하우를 가진 분들이다. 트렌드를 잘 아는 분들이 지금보다 조금 더 도전적으로 창업했으면 한다. 이런 창업자와 청년들의 시너지가 합쳐질 때 더 풍성한 스타트업 생태계가 자리 잡을 것이다.
정 스타트업 엑싯의 방법 중 하나인 M&A는 속도 싸움이다. 큰 기업들 사이에 ‘내가 이 스타트업을 인수하지 않으면 다른 기업이 이들을 인수하겠지?’하는 긴장이 항상 존재해야 한다. 한 팀을 두고 큰 기업들이 인수에 경쟁을 붙이는 상황이 계속되다 보면 스타트업 생태계에도 인수가 활발해지고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스타트업 생태계가 보다 풍성해질 것 같다.
임 테헤란로 펀딩클럽을 진행하면서 많은 VC분들이 스타트업에게 투자 계약을 맺을 때 조건과 계약서를 꼼꼼히 검토하라는 말을 많이 한다. 창업자 편에서 계약서 검토 팁을 주신다면.
유 계약서를 좀 더 꼼꼼히 읽으실 것을 권장해드린다. 투자받는 액수에 관계없이 가능한 한 전문적인 자문을 받는 게 좋다. 계약서라는 것은 나의 권리와 책임, 의무가 적힌 굉장히 중요한 문서가 아닌가.
원래 계약서는 딱 두 번 열어보는 문서라는 말을 많이들 한다. 회사가 너무 잘돼서 ‘도대체 투자자들한테 얼마를 줘야 하나’ 싶을 때, 혹은 회사가 너무 안 돼서 ‘도대체 내가 얼마나 피해봐야 하고 내 책임은 어디까지지’ 하는 생각이 들 때다. 그렇게 오래 열어보지 않고 금고에 넣어두기 위해서는 계약서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전부 이해하지도 않고 도장 찍었다가 나중에 놀라면 이거야말로 굉장한 실수다. 과거에 비해 지금은 계약서 조항에 대해 자문을 구할 방법이 많아졌다. 투자를 받고 대가로 지분이 오가는 거라면 당장 비용이 들더라도 전문가 자문을 받는 게 중요하다.
임 최근 VC가 되고 싶어 하는 분들도 많다. VC가 되고자 하는 분들에게 조언을 건넨다면.
유 어려운 질문이다. 기본적으로 자기 분야의 경력이 필요한 직종이라고 생각한다. 나이야 어떻든 사업하는 대표님들을 만나야 하는 직업이 VC 아닌가. 그러다 보니 본인이 회사를 세우고, 청춘을 바치고, 사명감 갖는 분들께 때로는 조언도 해드리고 그분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한다. 그분들과 함께 지낼 줄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경력이 필요하다. 과거에는 재무 쪽 지식이나 경험이 우선시됐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재무 지식이 있다고 좋은 VC가 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것을 어려워하지 않고 바로바로 받아들일 수 있는 스펀지 같은 자세, 그리고 투자를 통해 창업자들과 고난을 헤쳐나가겠다는 열정을 가진 긴 안목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VC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임 스타트업, 특히 VC의 세계에 여성 인력이 많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항상 있다. 정 대표님이 생각하는 여성 VC, 여성 심사역의 중요성이란 어떤 것인지.
정 사실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무림의 고수로 남은 여성 심사역들이 생각보다 많다.(웃음) 그 선배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훌륭한 성과를 냈기 때문에 나 역시 심사역으로 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스타트업들을 만나다 보면 “정신아 파트너님은 정말 잘 이해해주시네요, 이 부분은 남성 심사역분들이 이해를 잘 못 하시더라고요”라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그런데 사실 이런 부분은 여성이라서 잘하는 건 아니고,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여성이 잘한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라고 보는 게 맞다. 솔직히 나 자신을 여성이라고 생각하고 사회생활을 한 적은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여성 심사역으로서 잘하는 게 아니라 그냥 심사역으로서 잘하는 거다. 다양한 시각을 가진 심사역으로서 열정을 가지고 창업자들과 함께 하다 보면 남들과 다른 새로운 시각을 가진 좋은 심사역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여성성’이 아니라 ‘다양성’이다
VC는 선입견을 갖는 순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직업이다
내가 나를 가두고 혁신에서 멀어지게 하면 새로운 시각을 갖기 어렵다. 투자사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시각을 갖고 있는 여성 VC가 등장함으로써 투자사의 심사역들이 서로를 스테레오 타입에 가두지 않게 된다. 투자할 스타트업을 고를 때 시장의 여러 각도를 자연스럽게 고려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다양성의 측면에서 여성 심사역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