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퇴사할 즈음엔 이미 '청년창업 사관학교'라는 정부지원 프로그램에 합격해 있는 상태였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정부로부터 사무실과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당장의 돈과 사무실은 해결한 상태였다. 하지만 입주 날짜가 퇴사한 날보다 더 뒤에 있었기 때문에 그때까지 팀원들이 모일 수 있는 다른 공간이 필요했다. 대표는 이를 위해서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오픈 오피스'를 찾아다녔고 숙명여대 창업보육센터가 모든 팀원들에게 가장 교통이 편리한 장소였기 때문에 당분간은 그곳에서 일을 진행하는 것으로 결정했었다.
나는 퇴사한 바로 다음날부터 이곳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사실은 막 퇴사했기 때문에 조금은 느긋함도 즐기고 싶었지만 다른 팀원들이 일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 혼자 그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처음 출근하여 건물로 들어설 땐 굉장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창업보육센터는 물론 작지 않은 건물이었지만 매일 으리으리한 건물로 출근하던 나에겐 초라하게 보였다. 입구나 로비, 엘리베이터 모두가 작아 보였었다. 조금은 우스울지도 모르지만 그 차이에서 '큰 울타리로부터 벗어났구나'란 느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런 느낌은 일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받았던 것 같다. 자리를 잡을 때, 장비를 세팅할 때, 점심시간에 사내식당 대신 바깥에서 돈을 주고 밥을 사 먹을 때, 누군가의 도움 없이 일을 진행해야만 할 때 등 사소한 것들 모두에서 이제 정말로 스타트업을 시작하는구나란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몰래 진행할 때와 다르게 이젠 진짜 돌아갈 곳이 없구나란 생각이 드니 등이 서늘해졌다.
하지만 반대로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도 분명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 손으로 개발한 무언가가 곧 세상에 나오려고 하고 있었고, 여럿이서 옹기종기 모여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마치 대학생 시절로 돌아가 순수하고 즐겁게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게다가 진짜 대학교 바로 앞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또한 무엇보다도 내가 그동안 무척이나 하고 싶었던 '내가 하고 싶은 소프트웨어 개발'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마음속에 작은 불안이 분명 있었지만 예전부터 원하던 것들을 마음껏 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단기적인 목표(제품 출시)가 확실했기 때문에 즐겁게 일했었다. 매일매일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확실히 알고 있었고 그에 대한 동기도 확실했기 때문에 하루를 꽉 차게 생활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