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칭 셰익스피어 - 비극편
저는 호레이쇼라고 합니다.
햄릿 왕자님의 신하입니다.
왕자님은 저를 친구로 대하셨지만, 저는 감히 그러지 못했습니다.
이제와서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지만 저 역시 왕자님을 친구로 대해야 했습니다.
이 엉터리 시합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말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게 너무 아쉽습니다.
왕자님은 그야말로 만인의 귀감이 되는 분이셨습니다.
비텐베르크에서 공부하면서 얻은 가장 큰 선물이 바로 왕자님과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지체높은 친구가 생겨서 좋았다는 게 아닙니다.
물론 제가 덴마크에 있었다면 제 신분으로는 그저 먼 발치에서 왕자님의 행차를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을 겁니다.
햄릿 왕자님은 제가 만나 본 그 어떤 사람 중에서도 가장 인간적인 분이었습니다.
냉철한 두뇌와 뜨거운 가슴을 가진 사람이셨죠.
두 가지를 함께 가지기가 쉽지 않고 외람될 수 있으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더더욱 드문 일이죠.
역사상 수많은 비극이 여기서 비롯되지 않았던가요?
멍청한데 열정만 앞서거나, 똑똑한데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지도자들이 수많은 민중을 도탄에 빠지게 했죠.
훌륭한 왕이 되실 분이었는데 이 고결한 심장이 깨져버린 게 너무나 원통합니다.
저는 고대인의 성정을 가지고 있어서 왕자님이 돌아가시는 순간 저도 함께 독배를 마시려고 했습니다.
그걸 왕자님이 말리셨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달라고 하셔서 차마 목숨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제 비루한 언어로 왕자님을 온전히 담을 수는 없습니다만, 왕자님의 유지를 받들어 그간 벌어진 일들을 전하고자 합니다.
선왕께서 갑작스레 돌아가시지만 않았더라도 왕자님은 비텐베르크에서 즐겁게 지내셨을 겁니다.
비텐베르크에서 왕자님은 마르틴 루터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엄밀히 말해 신학적으로는 열렬한 루터의 제자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어딘가에 얽매이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라 교리 논쟁에는 애초 큰 관심이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루터라는 한 인간이 양심의 자유를 위해 교황의 권위와도 맞서 싸우는 모습이 왕자님을 감동시켰고, 결국 왕과 맞서 싸우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도 루터의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는 왕자님이 덴마크의 왕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파리나 베니스가 아니라 비텐베르크에서 생활하는 왕족이나 귀족이 워낙 드물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왕자님이 자신의 신분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랬죠.
저는 친구가 된 이후에야 비로소 그분이 왕자님이신 걸 알게 되었습니다.
왕자님은 연극을, 그리고 연극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셨습니다.
인간이 만들어놓은 서열, 제도, 관습을 뒤집고 비웃는 연극인들이야 말로 진정한 자유인이자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그들을 칭송하셨죠.
아마 왕자님이 연기에 조금만 더 재능이 있었더라도 왕위를 포기하고 극단을 좇아 다닌다고 하셨을 겁니다.
물론 왕자님이 이런 생각을 하실 수 있었던 건 선왕께서 선정을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선왕께서 붕어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왕자님은 급히 엘시노어로 돌아가셨습니다.
저도 곧 왕자님을 따라 귀국했었죠.
하지만 다시 왕자님을 만났을 땐 많은 게 바뀌어 있었습니다.
선왕이 갑자기 돌아가신 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지만, 저는 한편으로 왕자님이 다스리게 될 덴마크를 상상하며 기대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장례가 끝나고 바로 이어서 선왕의 아우가 왕비와 결혼을 하고 왕좌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왕자님은 왕위를 빼앗겼다는 것 보다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마자 어머니가 재혼하는 모습에 더 큰 실망에 빠졌습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극진히 사랑하셨던 걸 누구보다 잘 알았던 왕자님이기에 왕비님의 선택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셨던 겁니다.
왕자님을 다시 만난 건 그 무렵이었습니다.
비텐베르크가 아닌 이상 제가 감히 아무 때나 왕자님을 알현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왕자님이 꼭 아셔야 하는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왕자님을 찾아 뵙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선왕이 돌아가신 직후 노르웨이에서 군사적 움직임이 감지되었고 덴마크 군에는 비상 경계령이 내려졌습니다.
포틴브라스 왕자님이 이 일의 주역이시니 구태여 자세히 설명드리지는 않겠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엘시노어 성에 선왕의 생전 모습을 한 유령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떠돌았습니다.
급기야 제 친구들마저 그 유령을 목격하고 저에게 도움을 구했습니다.
대학에서 배운 식자이니 유령에게 말이라도 걸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들의 말을 반쯤 의심하며 망루에 나갔다가 유령을 보고는 몸이 젤리처럼 녹아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간신히 몇 마디 말을 걸어보려 했지만 유령은 제 말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사라졌습니다.
왕자님 또한 처음에는 제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희 표정을 보시고는 저희가 거짓말하는 게 아니라고 직감하셨죠.
사실 그 무렵 누가 그런 일로 왕자님을 희롱할 수 있겠습니까.
그날 밤 왕자님이 저희와 함께 망루에 오르셨고 자정이 지난 직후에 유령이 어김없이 나타났습니다.
유령은 왕자님을 알아보고는 손짓을 하며 한적한 곳으로 데려갔습니다.
저희는 혹시라도 유령이 왕자님을 해할까 걱정이 되었지만 도저히 왕자님을 말릴 수 없었습니다.
뒤따라 갔을 땐 이미 유령은 떠났고 왕자님만 홀로 계셨지요.
그때 왕자님의 표정을 기억합니다.
공포, 슬픔, 분노 어느 하나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눈빛이었습니다.
처음에 왕자님은 유령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알려주시지도 않았고 그저 오늘 있었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며 함구령을 내리셨습니다.
특히 당신이 앞으로 이상한 행동을 하더라도 절대 왜 그러는지 안다는 기색을 보이지 말라고 하셨죠.
왕자님은 한참이 지나서 저에게만 따로 그날 유령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알려 주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저는 비로소 왕자님이 왜 유령을 만난 이후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는지 알 수 있었죠.
들리는 소문으로는 그날 이후 왕자님은 헝클어진 머리에 옷이며 양말이며 다 풀어헤친 채로 성안을 돌아다니셨고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혼자말을 중얼거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왕과 왕비도 왕자의 돌연한 변신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맹세한 게 있어서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지만, 어서 왕자님을 만나 도대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노르웨이에서 사신들이 돌아온 날 밤이었을 겁니다.
왕은 노르웨이와의 갈등이 외교적으로 잘 마무리된 것을 기뻐하며 잔치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날 갑자기 왕자님이 저를 부르시더니 엄청난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난 번 성곽에 나타난 유령은 당신의 죽음에 가려진 비밀을 아들에게 전하러 온 선왕의 혼령이었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하셨죠.
유령은 왕자님에게 자신이 독사에 물려 죽었다고 알려진 것은 사실을 날조한 것이며, 실제로는 그 순간 왕관을 쓰고 있었던 왕자님의 숙부 클로디어스가 낮잠을 자고 있던 자신의 귀에 독약을 부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유령은 이 사실을 전하면서 왕자님에게 복수를 명령했습니다.
하지만 왕자님은 선뜻 나설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에 이어 숙부가 어머니와 그렇게도 빨리 재혼하며 왕이 된 모든 과정이 설명되는 말이었지만, 그것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방법이 없었던 겁니다.
지금 상태로는 설령 왕을 죽인다 하더라도 그것이 정당한 복수였음을 누구에게도 믿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왕자님은 실성한 사람처럼 굴면서 적당한 방법과 기회가 찾아오기를 기다렸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게 순전히 미친 사람을 흉내내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왕자님의 연기를 오래 봐 왔던 제 눈에는 연기를 넘어 실제로 마음에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왕자님이 보였습니다.
왕자님은 마침 성을 찾아온 도시의 비극 단원들을 보면서 유령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할 방법을 찾았다고 했습니다.
이 상황에서도 연극에서 답을 찾다니 역시나 햄릿 왕자님스러운 모습이었죠.
왕자님은 왕과 왕비 앞에서 선보일 연극 한편을 준비시켰습니다.
베니스 왕실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클로디어스 왕에게 보여주고 그 반응을 지켜보자는 것이었죠.
능청스럽게도 왕자님은 연극의 제목을 '쥐덫'이라고 지었습니다.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클로디어스는 짐짓 모른 척 아닌 척 하고 있었지만, 시해자가 잠들어 있는 왕의 귀에 독약을 부어 넣는 바로 그 순간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저는 그 순간 왕의 눈빛이 흔들리는 걸 목격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무척이나 기뻤습니다.
유령의 말을 믿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돌이켜 보면 우린 무척 순진했던 것 같습니다.
적에게 왕자님의 본심을 다 드러내고 말았으니까요.
정작 왕자님은 다음 행동을 망설였습니다.
이제 서둘러 왕을 죽여야 했지만, 왕자님은 선뜻 나서지 못했습니다.
대신 어머니가 이 모든 일을 알고 있었는지 알고 싶어 하셨죠.
왕자님이 이런 일에 서투른 게 안타까웠지만 그걸 탓할 수는 없습니다.
클로디어스 같은 자들이나 잘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그 사이 클로디어스는 민첩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왕자님을 잉글랜드로 보내 몰래 제거할 계략을 세우고 있었던 겁니다.
왕자님은 왕비의 내실로 찾아가 어머니를 심하게 질책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다 누군가가 엿듣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는데, 그게 왕이 아니라 다른 사람일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하셨을 겁니다.
남의 일에 참견하기 좋아하던 대신 폴로니어스가 그 방에서 몰래 엿듣고 있다가 그만 왕자님의 칼에 맞아 죽고 말았습니다.
이 일 때문에 왕은 왕자님을 잉글랜드로 보낼 명분이 생겼고, 왕자님은 쫓기듯 배에 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왕자님은 배 안에서 클로디어스가 잉글랜드 왕에게 보내는 서신을 발견하고 당신을 죽이려는 음모를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왕자님은 그 자리에서 편지의 내용을 바꿔 잉글랜드 왕이 그 편지를 받자 마자 편지를 전달한 두 사람을 즉시 처형하도록 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왕자님이 탄 배가 해적선의 공격을 받고 선상에서 싸움이 벌어진 끝에 왕자님은 해적선에 옮겨 탔다가 다시 덴마크로 돌아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때 가장 가까운 친구였으나 클로디어스의 심복이 되어 왕자님을 배신했던 로젠크랜츠와 길던스턴은 그렇게 영문도 모른 채 자신의 죽음을 향해 잉글랜드로 가고 말았습니다.
왕자님이 왕궁을 비운 사이에 많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폴로니어스의 죽음이 가져온 여파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오필리아는 자기가 사랑했던 사람에 의해 갑자기 아버지를 잃게 된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했습니다.
결국 제정신을 잃고 의미 없는 말을 하며 돌아다녔습니다.
오필리아의 오라비인 레어티즈는 급히 파리에서 돌아와 폭도들을 이끌고 성으로 쳐들어 왔습니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왕을 벨 것 같았던 레어티즈는 이내 왕에게 고분고분해졌다고 합니다.
그 무렵 저는 왕자님의 편지를 받고 해안에서 왕자님과 다시 만났습니다.
성으로 돌아오는 길에 장례식을 목격했는데, 아주 초라한 장례식에 왕과 왕비, 그리고 레어티즈가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오필리아의 죽음을 직감했고, 이내 왕자님도 그것이 누구의 장례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장례식이 엉망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왕자님의 슬픔과 연이어 가족을 잃은 레어티즈의 슬픔이 마치 누구의 슬픔이 더 큰지 내기라도 하듯 서로 부딪혔습니다.
왕자님은 나중에 레어티즈에게 너무 심하게 굴었다며 미안해 하셨지만, 그때 레어티즈가 꾸미고 있던 일을 생각하면 미안해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왕은 두 사람의 화해를 주선한다는 명목으로 검술 경기를 제안해왔습니다.
말이 제안이지 거절이란 선택지가 없었기에 강요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건 분명 함정이었습니다.
저도 왕자님도 그걸 느낄 수 있었죠.
하지만 왕자님은 불길한 예감을 무시하자고 하셨죠.
죽음이 이제라면 장래엔 오지 않을 테고, 장래에 오지 않는다면 지금이 그 때일 거라며 그냥 오게 하자고 하시더군요.
저는 말릴 수도 대신 싸울 수도 없었습니다.
온전히 왕자님이 감당해야 할 싸움이었습니다.
예상대로 그건 함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왕도 레어티즈도 몰랐을 겁니다.
독배를 왕비가 마시게 될 줄은,
왕자님의 검과 레어티즈의 검이 바뀌게 될 줄은.
그 둘은 자기 꾀에 걸려 마땅히 받아야할 심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왕자님도 그들에게 걸려 함께 넘어지셨죠.
왕자님은 마지막으로 포틴브라스 왕자님에게 덴마크 왕실을 부탁하셨습니다.
이상이 햄릿 왕자님께 일어난 일의 전부입니다.
저도 왕자님도 더 이상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