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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릭 Apr 23. 2019

오늘이 내 생일이라고요?

셰익스피어의 생일을 둘러싼 미스터리

월요일 마다 브런치에 글 하나씩을 연재하려고 맘 먹고 있는데 어제는 다른 곳에 글을 쓰느라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오늘 달력을 보고 급하게 브런치를 열었습니다. 

4월 23일은 '셰익스피어가 세상에 태어나고 또 세상을 떠난 날'이라고 알려져 있는 날이거든요. 

어쩌면 셰익스피어는 생몰일마저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같을 수 있는 걸까요? 

오늘은 이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합니다. 


William Shakespeare(1564.04.23~1616.04.23)

셰익스피어는 1564년에 태어나 1616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셰익스피어가 세상을 떠난 지 이제 400년이 조금 더 지난 것이죠. 

그런데 그가 죽은 날짜는 4월 23일이 확실하지만 태어난 날짜는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그의 죽음은 그 당시에도 큰 뉴스였을 겁니다. 그때 BBC가 있었다면 대대적으로 보도를 했었겠지요. 

그래서 그가 세상을 떠난 날짜는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렇지만 1564년 런던 외곽인 스트래트퍼드에서 장갑을 만들어 팔던 상인 존 셰익스피어의 아내가 셋째 아이 윌리엄을 낳은 것은 결코 큰 뉴스거리가 되지 못했을 겁니다. 그래서 셰익스피어가 정확히 몇 일에 태어났는지에 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셰익스피어=드래곤 슬레이어?

그럼 4월 23일로 알려진 그의 생일은 무엇일까요? 이건 약간의 사실과 약간의 허구가 더해진 결과입니다. 

그때 영국에서는 (대부분의 유럽이 그러했겠죠) 아이가 태어나면 교회에서 유아세례를 받았고 세례 기록이 교회 문서로 보관되었습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아기는 1564년 4월 26일 스트래트퍼드의 성삼위일체 교회(Holy Trinity Church)에서 세례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의 기일과 아주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후대 사람들은 셰익스피어가 태어난 지 3일 후에 세례를 받았다고 가정하고 그가 태어난 날도 4월 23일로 생각하고 싶었던 겁니다. 

4월 23일은 성 조지의 날(St. George's Day)이라는 축일인데, 서양 회화에서 용을 죽이는 기사 이미지로 자주 등장하는 성 게오르기우스는 잉글랜드의 수호 성인으로 추앙받던 인물이기도 했기 때문에 영국 사람들로서는 자국을 대표하는 작가의 생일이 기왕 불확실하다면 성 조지의 날로 기념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생일과 기일이 같아 외우기도 간편하죠. 

라파엘로, 성 조지와 용 (1506경) https://g.co/arts/s9mF7CqjKUvygCRo6 

이 가정을 뒷받침하기 위해 당시 아이가 태어나면 3일 후에 유아세례를 시행한다는 설도 있는데 그건 사실과 다르다고 합니다. 당시 지침에 따르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생후 첫 일요일이나 교회 축일 이전에 세례식을 거행하라고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반드시 '3일 후'라는 건 어디에도 없는 규정이기 때문에 이걸 근거로 셰익스피어의 생일이 4월 23일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한편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뭘 그리 서둘렀냐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우리 전통에선 태어나고 삼주('삼칠일') 정도는 외부와의 접촉을 막는 관습이 있었으니 삼일이든 일주일이든 너무 서두르는 것 아니냐 생각하실 분도 계실겁니다. 또 유아세례를 우리 식으로 이해해서 일종의 출생신고로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 우리 나라에선 반대로 실제 나이가 주민등록상의 나이보다 많은 어르신들이 많이 계십니다. 방향은 정 반대이지만 둘다 영유아 사망률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선 아이가 첫 돌을 무사히 지나면 비로소 호적등록을 해도 되겠다 생각했던 것이고, 과거 서양에서는 반대로 아이가 갑자기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유아 세례를 받게 했던 것입니다. 세례를 받고 죽은 아이는 구원과 부활의 소망이 있다고 믿었으니까요. 


다시 생일로 돌아와, 

그의 생일이 4월 23일이 아닐 가능성이 몇 가지 더 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무덤 묘비에 남아 있는 기록에는 그가 53세의 일기로 별세한 것으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적어도 생일이 기일보다 하루라도 빠를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셰익스피어의 손녀 딸(엘리자베스 홀)이 "집안의 저명한 어른을 기념하여" 그의 탄생 62주년이 되는 날인 4월 22일에 결혼식을 올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기록을 근거로 하면 셰익스피어의 생일은 4월 23일보다는 22일일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겁니다. 

하지만 여전히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물론 셰익스피어를 기념하는 이벤트를 많이 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생일과 기일이 다른 게 유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날짜가 달라도 일주일 안에 있는 이상 한 주에 이벤트를 두번 하는 것도 큰 효과가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그냥 오늘 4월 23일에 몰아서 축하하고 추념하는 게 좋겠습니다. 


셰익스피어 영감님 생일 축하합니다.


한줄 요약

100% 팩트는 아니지만 '셰익스피어는 4월 23일에 나서 4월 23일에 죽었다'고 생각해도 문제될 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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