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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릭 Apr 17. 2019

형이 왜 태연 노래에서 나와?

태연 "사계" 가사에서 만난 셰익스피어

태연의 새 노래가 나왔다고 해서 들어보다가 "셰익스피어"라는 말이 갑자기 귀에 들어오네요.

반가운 마음에 가사를 찾아 봤습니다.

언제야, 봄이던가
맞아 그땐 한참 서로가
셰익스피어의 연극 같은
마지막이 될 사랑 마주한 듯
둘밖에 안 보였나 봐
다른 걸 좀 보고파
(태연, "사계절" 가사 중에서)

계절이 오고 또 지나가듯 화자는 이제는 헤어진 연인을 생각하면서

그땐 마치 셰익스피어의 연극 같은 사랑을 했다고 말합니다.

셰익스피어의 어떤 작품, 어떤 인물을 염두에 두고 쓴 노랫말일까 궁금해졌습니다.  

따로 물어볼 방법은 없고 저혼자 이런 저런 작품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아무래도 가장 유명한 커플인 로미오와 줄리엣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두 사람은 첫 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는데 알고보니 원수 집안의 사람이었습니다.

반대와 어려움이 예상되었지만 그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바로 비밀 결혼식을 치릅니다.  

이 작품은 정말 모든 게 빨리 빨리 진행됩니다.

첫 눈에 반하고 다음 날 결혼하고 그날 로미오가 줄리엣의 사촌을 죽이고 다음 날 도시에서 추방되고 며칠 뒤에 두 사람은 무덤에서 다시 만나니까요.

마치 오늘만 사는 것처럼 불타게 사랑하는 로미오와 줄리엣, 그들이 처음 만난 그 순간이야 말로 마지막이 될 사랑 마주한 듯 둘 밖에 안 보였을 겁니다.

줄리엣이 왜 그렇게 급하게 결혼을 했을지 궁금하신 분은 다음 글을 읽어보세요. https://brunch.co.kr/@starwoods/4 


그런데 사실 셰익스피어의 비극에 나오는 연인들의 사랑은 대부분 다 마지막 사랑입니다.

비극의 주인공은 결말에서 죽기 일수라 다음 사랑의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으니까요.  

또 사랑의 관계가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는 점에서도 그러합니다.  


<오셀로>에서 오셀로와 데스데모나는 로미오와 줄리엣과 비슷하게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랑하고 결혼까지했지만, 그 사랑이 오래 지속되지 못합니다.

사악한 이야고의 간계에 속절없이 무너진 오셀로는 자기 손으로 사랑하는 아내를 죽입니다.

이야고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https://brunch.co.kr/@starwoods/7


<햄릿>의 주인공 햄릿과 오필리아의 사랑도 대표적인 마지막 사랑입니다.

어쩌면 이 둘은 극중에서 헤어지기까지 했으니 태연의 노래에 더 잘 어울리는 커플일 수도 있겠네요.

"수녀원으로 가라"는 유명한 대사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햄릿은 오필리아에게 이제 더 이상 결혼은 없을 거"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원수의 편에 서서 자기를 시험하는 모습에 햄릿은 크게 실망했던 겁니다.

이후 두 사람은 서먹서먹한 관계를 유지하다 햄릿이 실수로 오필리아의 아버지를 죽이고 그 충격으로 오필리아는 실성하고 결국 물에 빠져 죽습니다.

오필리아의 사연이 궁금하시다면 https://brunch.co.kr/@starwoods/6

햄릿은 오필리아의 장례식장에서야 자기가 누구보다 오필리아를 사랑했다고 외칩니다.

오셀로와 데스데모나도 그러했지만 햄릿-오필리아 커플도 정말이지 로코(로맨틱 코미디)와는 거리가 너무 멀죠?


사실 사랑 이야기는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비극 보다는 희극에 더 잘 어울리는 것이고,

실제로도 셰익스피어는 희극에서 훨씬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다룹니다.

희극은 대부분 주인공이 결혼하고 그후로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암시로 마무리되니 이 또한 '마지막 사랑'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셰익스피어의 몇몇 희극은 과연 그들이 결혼하고 행복하게 잘 살았을까 의심스러운 대목도 없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는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어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고 오늘은 몇 가지 밝은 예만 들어보겠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희극 <십이야 Twelfth Night>의 사랑은 아주 복잡하고도 흥미진진합니다.

주인공은 비올라라는 이름의 젊은 여성입니다. (비극과 달리 희극엔 여성 주인공이 적지 않습니다.)

비올라와 쌍둥이 오빠 세바스찬은 항해를 하던 중 폭풍우를 만나 배가 난파하고 생사를 모른 채 헤어지게 됩니다.

일리리아라는 섬으로 표류하게 된 비올라는 세자리오라는 남자로 변장하고 올시노 공작의 시종이 됩니다. (젊은 여성이 독자적으로 사회 활동을 할 수 없었던 당시 상황을 고려할 때 어쩔 수 없이 남장을 한 듯 합니다. 게다가 비올라에게 쌍둥이 오빠가 있었다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성별이 다른 일란성 쌍둥이가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비올라가 남장을 하면 어떻게 보일지가 아주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올시노는 마침 올리비아라는 여백작에게 구애 중이었는데, 오빠를 잃은 지 7년이 지나도록 상중에 있던 올리비아는 매번 그의 호의를 거절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올시노가 세자리오를 올리비아에게 보내 자기 사랑을 전하게 하면서 일이 복잡해집니다.

올시노가 세자리오를 보고 첫눈에 반했던 것이죠.

그런데 정작 세자리오로 변장한 비올라는 올시노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이 엇갈린 삼각 관계는 나중에 세바스찬이 나타나면서 해결됩니다.

삼각 관계를 사각 관계로 만들어 해결하는 작가의 솜씨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셰익스피어는 거의 마지막 작품인 <폭풍우 Tempest>에서 첫 사랑을 다루었습니다.

이 작품은 보통 '로맨스'라는 장르로 따로 분류하는데, 보통 주인공이 오랜 시간 우여 곡절을 겪은 끝에 행복에 이르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희극과 비극 중에서는 희극에 가깝습니다.

주인공 프로스페로는 예전에 밀라노의 공작이었지만, 지금은 아우의 반역으로 쫓겨나 외동딸 미란다와 함께 어느 외딴 섬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는 마법사였습니다. 과거의 모든 불미스런 일들을 한번에 해결하기 위해 마법으로 폭풍을 일으키는데, 그로 인해 근처을 항해하고 있던 나폴리 왕 알론조의 배가 난파합니다.

이 배에는 알론조와 그의 아들 페르디난드는 물론 프로스페로의 아우 안토니오 일행도 함께 타고 있었는데 배가 난파하면서 프로스페로가 머무는 섬으로 표류하게 되는 것이죠.

이제 그들 일행이 하나씩 죽어나가도 이상할 게 없겠지만... 프로스페로는 자기 원수들에게 복수를 하는 대신 화해를 선택합니다.

그리고 그 화해는 미란다와 페르디난드 두 젊은이의 사랑으로 정점을 이룹니다.

아버지 외에 *온전한 인간을 한 번도 본 적없는 미란다는 어느 날 갑자기 섬에 찾아온 페르디난드를 보고 첫눈에 반합니다.

*이 섬에는 프로스페로가 노예로 부리고 있는 원주민 칼리반이 있지만 프로스페로 미란다 부녀에게 이 인물은 괴물로 취급받습니다. 미란다를 겁탈하려 한 칼리반 또한 잘 한 게 하나도 없지만, 프로스페로가 칼리반을 바라보고 다루는 방식은 다분히 제3세계 원주민을 착취한 서구 제국주의자들의 태도와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이 또한 프로스페로의 계획에 있던 것입니다.

프로스페로가 약간의 골탕을 먹이지만, 결국 그들은 다시 만나 용서를 빌고 화해를 이릅니다.

그리고 결혼으로 하나가 된 미란다와 페르디난드에게 두 나라를 맡기는 것으로 이야기는 훈훈하게 마무리됩니다.

사실상 셰익스피어의 은퇴작인 이 작품에 나타난 마법이란 다름 아니라 허구적 세계를 창조하는 극작가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그런 점에서 <폭풍우>는 다음 세대에게 극장을 맡기고 떠나는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사랑 같은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노파심에 한 마디 덧붙입니다. 

이 글의 제목은 그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셰익스피어를 만난 저의 느낌을 요즘 유행어로 표현해 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칫 대중음악에는 셰익스피어와 같은 대문호의 이름이 언급될 수 없다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다는 뉘앙스로 비쳐지지는 않을지 걱정됩니다. 

저는 셰익스피어가 위대한 작가라고 생각하지만, 그의 작품이 가진 힘은 대중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당시 2천명 이상이 들어갈 수 있는 극장에서 공연되었던 대중 예술이었고, 셰익스피어는 극장의 수익을 나눠 갖는 위치에 있었기에 흥행에 민감했던 대중 예술가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셰익스피어를 너무 어렵게 생각해서 그렇지 대중음악에 셰익스피어가 나오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셰익스피어 본인도 작품에서 자주 당시 유행가를 사용하기도 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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