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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릭 Mar 29. 2019

딸 가진 아버지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줄리엣의 목소리

일인칭 셰익스피어 - 비극편


줄리엣은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유명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인공입니다. 이 작품은 1596년에서 97년 사이에 처음으로 공연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셰익스피어의 초기 비극 중 하나입니다. 두 사람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는 400년이 지난 지금도 눈물을 짓게 만드는데, 사실 이러한 이야기의 역사는 훨씬 더 오래되었습니다. 두 젊은이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랑했지만 결국 불행하게 끝맺게 되는 사연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Metamorphosis>에 등장하는 퓌라무스와 티스베 커플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이 두 젊은이는 이웃에 살면서 점차 서로 사랑하게 되었지만 양측 아버지의 반대로 공개적으로 만날 수 없어서 두 집 사이 담장의 작은 구멍 사이로 서로의 숨결을 느끼고 사랑을 속삭여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 두 사람은 어느 날 도시를 떠나 들판 한 곳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티스베가 먼저 약속 장소에 도착했는데, 하필이면 그때 사자 한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소 떼 사냥을 마치고 갈증을 느껴 샘을 찾고 있었던 것이죠. 놀란 티스베는 근처 동굴로 숨었는데 하필 그때 목도리를 떨어뜨리고 말았고 그걸 사자가 발견하고는 피 묻은 입으로 갈기갈기 찢어버렸습니다. 잠시 후 약속 장소에 도착한 퓌라무스는 티스베는 보이지 않고 들짐승의 발자국과 피로 물든 옷만 남아 있는 것을 보고 티스베가 그만 짐승에게 당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절망한 퓌라무스는 차고 있던 칼을 뽑아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죠. 티스베가 다시 돌아왔을 때 퓌라무스는 이미 너무 많은 피를 흘리고 난 후였다고 합니다. 티스베는 죽음이 그들을 떼어놓을 수는 없다고 말하고 퓌라무스를 따라 칼 위로 몸을 던졌습니다. 


셰익스피어가 <로미오와 줄리엣>을 퓌라무스와 티스베에서 곧바로 가지고 온 것은 아니지만, 두 젊은이의 사랑, 부모의 반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따라 죽음에 이르는 것 등이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거리와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셰익스피어는 <로미오와 줄리엣>과 비슷한 무렵에 쓴 희극 <한여름 밤의 꿈 A Midsummer Night’s Dream>에서 퓌라무스와 티스베의 이야기를 극중극으로 다루기도 했습니다. (공작의 결혼식 축하 공연으로 이 이야기를 선택한 보텀과 피터 퀸스 일행의 무모한 도전은 다음 기회에 다루기로 하죠.)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로미오와 줄리엣, 그리고 퓌라무스와 티스베의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부모의 반대나 불화로 인해 젊은이의 사랑이 좌절되고 결국 목숨을 잃는 상황까지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대체로 주인공(들)이 어떤 거대한 (악한) 힘에 맞서다가 결국 쓰러지고 희생당하는 상황을 다룹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두 연인의 사랑이 대대로 내려온 두 집안의 불화와 반목 때문에 온전한 결실을 맺지 못하고 사그라드는 순간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작품이 비극인 이유는 두 집안의 오랜 혐오와 불화의 결과가 다음 세대의 희생이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피해는 비단 두 집안사람들 뿐만 아니라 그 도시의 다른 젊은이들에게까지 미칩니다. 로미오, 줄리엣은 물론 머큐쇼(이스캘러스 총독의 친척이자 로미오의 친구), 티볼트(줄리엣의 사촌으로 머큐쇼를 죽임), 그리고 패리스(이스캘러스의 또다른 친척이자 줄리엣의 구혼자)의 죽음은 베로나의 미래를 이끌 주역들이 한순간에 사라짐을 의미하는 것이죠. 어느 집단의 불화와 반목—혹은 우리나라의 실정에선 분단을 생각해볼 수도 있겠지요—은 기성세대의 기득권을 강화하고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들의 불화에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 그들에게 가장 소중한 자식들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죽음으로 인해 그들의 아버지 늙은 몬태규와 캐플릿이 만나 두 가문의 화해를 약속하면서 이 작품은 끝나지만 각자의 외동아들/딸을 잃고 맺은 이 약속은 그래서 허망하기만 합니다. 


이 무렵 셰익스피어는 부모 자식 간의 갈등, 그 중에서도 부녀 갈등을 반복해서 다루었습니다. 대체로 아버지가 딸의 연인을 허락하지 않는 데서 갈등이 벌어지는데, 둘의 싸움은 대체로 딸이 이기는 것으로 끝납니다. 앞서 언급한 <한여름 밤의 꿈>에서 허미아와 아버지 이지어스의 관계가 그러하고, <베니스의 상인>에서 샤일록과 그의 딸 제시카, 그리고 포오셔와 그의 돌아가신 아버지의 관계 역시 이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독자분들 중 아버지 되시는 분들은 저의 이런 해석이나 작가의 메시지가 불편하게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딸의 의지를 꺾으려는 아버지의 시도를 매번 실패로 돌아가게 한 셰익스피어 자신도 두 딸의 아버지였기에 어쩌면 이런 문제를 다룬 것은 작가 자신이 이 문제의 당사자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줄리엣은 셰익스피어의 주인공 중에서 가장 어린 축에 속하지만, 13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의 지혜와 용기를 가진 인물입니다. 많은 분들이 여전히 1968년에 올리비아 핫세(Olivia Hussey)가 맡았던 줄리엣, 그중에서도 발코니 장면을 기억하실 텐데 이 장면이 오래 기억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철학적 대사 때문일 겁니다. 


이름 안에 뭐가 있어? 우리가 장미라고 부르는 건
다른 어떤 이름이라도 여전히 그 향기는 달콤할 텐데
What’s in a name? That which we call a rose
By any other word would smell as sweet.  
(2막 1장 또는 판본에 따라 2막 2장)


로미오가 몬태규 집안의 아들이란 사실을 알게 된 줄리엣은 그의, 그리고 자기 이름이 사랑에 장애물이 된다면 그 이름을 과감히 버리자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침 이 말을 엿듣고 있던 로미오가 이 말에 용기를 얻어 두 사람의 사랑을 확인하게 되죠. 이처럼 두 사람의 관계에서 더 급진적인 생각을 가지고 움직였던 것은 줄리엣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원치 않는 결혼을 강요하고 있었던 배경도 작용했을 테지만, 그런다고 모두가 줄리엣처럼 과감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에게는 이 작품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인물이 줄리엣이었고 그래서 그의 관점에서 이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요약해보고 싶어 졌습니다.  




내 이름은 줄리엣이야. 

그런데 사람들은 내 이름보다 내 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지. 

아니 어쩌면 그 성도 그 자체로 중요한 게 아니라 또 다른 성과 특별한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중요했어. 

사실 우리 집 성이나 그 집 성이나 정말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어. 

하지만 우리 집 사람들도 그 집 사람들도 단지 성씨 때문에 죽고 죽이기를 반복했지. 

그 덕분에 두 집안이 유명해졌으니 이걸 노이즈 마케팅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우리 두 사람의 사랑도 이 노이즈 마케팅이 없었다면 그렇게 오랫동안 사람들이 기억하지 않았을 테니 이 노이즈 마케팅의 가장 큰 수혜자는 어쩌면 나와 내 사랑이었을지도 모르겠네.

 

그 사람을 보고 첫눈에 사랑하게 되었어. 

왜 그랬을까, 어떻게 그렇게 모든 걸 빨리 결정하고 움직일 수 있었을까?  

어쩌면 아버지로부터, 아버지가 물려준 성씨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어. 

아버지가 정해준 사람과 결혼하는 건 아버지 집에 계속 있는 것과 다를 게 없으니까.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았던 것도 있는 것 같아. 

그때 아버지의 말을 순순히 따랐다면 나도 엄마와 같은 삶을 반복했을 거야. 

열세 살에 결혼해서 딸을 낳고 그 딸을 다시 열셋에 결혼시키고. 

그게 잘못된 건 아냐. 

그렇게 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

하지만 적어도 엄마를 13년간 보고 자란 내가 내린 결론은 난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거였어.

 

너무 늦게 안 걸까, 아니면 너무 일찍 본 걸까. 

모든 게 그렇게 빨리 결정된 내 삶에서 왜 로미오란 이름만은 뒤늦게 알게 된 걸까. 

그가 몬테규인 걸 먼저 알았다면 난 그와 입 맞추었을까. 

내가 깨기 전에 그가 내 무덤에 올 거란 걸 알았다면 난 약을 마실 수 있었을까.


아버지를 일부러 화나게 하려고 했던 건 아냐. 

난 그냥 오필리아처럼 착한 딸이 아니었던 거야. 

난 그저 나로, 나 대로 살고 싶었던 것뿐이었어.

그런데 아버진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더라. 

자기 뜻을 따르지 않는 딸년이라면 차라리 길바닥에서 죽는 게 낫다고 하더라. 

그 말을 듣는 순간 몰래 결혼하길 잘했다는 생각부터 들더라고. 

아버지 원수 집안의 아들하고 결혼했다고 말해버릴 걸 그랬나? 

아, 로미오가 추방될 때 같이 베로나를 떠났어야 했어.

 

로미오는 도대체 무슨 소식을 어디까지 들었던 걸까. 

내가 깨어나길 기다렸다가 날 데리고 무덤 밖으로 나가기로 했는데, 왜 내 옆에 쓰러져 있는 거야. 

우리의 운명은 왜 이렇게 까지 엇갈려야 하는 걸까. 

나는 가짜 독을 마시고 죽었다 깨어났고, 내 남편은 내가 진짜 독을 마신 줄 알고 진짜 독을 구해 마셨어. 

나는 이제 더 마실 가짜 독도 진짜 독도 없고. 

남편의 칼. 

결국 이렇게 또 몬테규의 칼이 캐플릿의 피를 흘리는구나. 

부디 이것이 마지막이기를. 

칼아 너의 새 칼집에 들어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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