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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별 Jan 12. 2022

그토록 싫어했던
계단을 올라야 했던 날들

계단을 좋아하는 사람도 어딘가에는 있겠지만, 일단 나는 그렇지 않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반기지 않는 것 중 하나다. 그렇게 싫어했는데 중학교 시절 한 때, 나는 어떤 계단을 정말 많이도 오르락내리락했다.


그 계단이 좋아서 그랬던 건 아니었다. 계단으로 도피할 정도로 특정 장소가 싫었다는 표현이 더 알맞다. 그곳은 바로 학원이었다. 중학교에 가면서 성적이 약간 떨어졌던 나는 엄마의 강력한 의견에 따라 전과목 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억지로 갔다는 사실 외에도 당시 내가 학원을 극도로 싫어했던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1. 사교육에 대한 반감

2. 특히나 전과목 학원에 대한 반감

3. 스스로 학원 효과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어린 나이에 비해 거창하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당시 내겐 진심이었다. 지금은 더 심해졌지만 그때도 사교육 문제는 심각했고, 나 역시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을 수 있게 공교육이 더 나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전과목 학원이라니. 필요한 공부를 하는 게 아니라 그저 강제적으로 공부를 하게 하는 공간이라는 생각에 가장 싫어했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을 강하게 표출하진 않았다. 어린 날의 나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게다가 겉보기엔 성실한 모범생이었으니 학원 효과가 좋을 수밖에 없었다. 혼나기 싫어서(무서움보다는 자존심의 문제였다) 하라는 대로 다 하니 성적이 오를 수밖에. 덕분에 나는 약 1년 간 학원에 다녔다.




초반에는 그냥 참고 다녔는데, 역시나 점점 문제가 생겼다. 그건 바로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드라마 '시크릿 가든'이 생각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 드라마는 내가 중학교 시절을 겪고도 몇 년 후에 나왔는데, 남자 주인공인 김주원이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하고 계단으로 다니는 걸 보며 나도 놀랐었다. 그리고 그때서야 알았다. 저게 병이었구나.


당시엔 왜 몰랐을까 싶을 정도로 돌이켜보니 범상치 않은 증상이었다. 처음에는 약간 숨이 찬 정도였다. 학원이 6층이었으니까 엘리베이터를 타도 금방 내렸으니 괜찮았다. 그게 점점 심해지더니 나중엔 타는 것조차 두려워졌다. 사람이 가득 차 있을 땐 증상이 더 심했고 그래서 나는 계단을 택했다. 올라갈 때도, 내려올 때도.


계단에는 늘 나 혼자였다. 그래서 그때부터 계단을 너무 싫은 학원 속 유일하게 혼자 있을 수 있는 편한 공간으로 인식했던 것 같다. 그러고부터는 이동할 때뿐만 아니라 쉬는 시간에도 나와있었다. 끊임없이 계단을 찾았다. 학원에는 내가 마음 둘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 누군가를 만났다. 사실은 정확히 어떤 시기, 어떤 상황이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학원 강사들이 자주 바뀌는지 각 반의 담당 강사가 바뀌는 일이 흔했다. 전과목 학원이었으니 나중엔 그냥 강사를 기억하려는 노력도 안 했다. 그냥 역사를 가르치는구나, 수학을 가르치는구나 생각 뿐이었다. 그들도 학생에게 큰 관심은 없었으니 서로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문제는 내가 자꾸 계단에 나가 있다는 점이었다. 그 학원은 6층뿐 아니라 7~8층 공간까지 사용하고 있었고, 대체로 강사들은 강의실을 이동할 때 계단을 이용했다. 그러느라 자주 마주치는 게 불편하고 싫었지만 그 잠깐 때문에 공간을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계단에 있는 나를 보며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는 강사들도 더러 있었지만 잠깐이었다. 나 역시 관심을 바라지 않았고 그들도 굳이 깊게 관심 갖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한 강사가 그런 내게 관심을 보였다. 별 건 아니었고, 그냥 말 한마디였다.


"왜 항상 계단에 있어?"


어른들과 대화를 많이 나눠보지도 않았고, 그런 상황 자체를 피했던 나로서는 당황스러운 질문이라 단번에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고민 끝에 나온 대답은 간단했다.


"그냥 여기가 편해서요."


그래도 내가 대답을 하자 긍정의 신호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그때부터 그 사람은 내게 계속 말을 걸기 시작했다. 수업 시간이든 쉬는 시간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갈수록 부담스럽긴 했는데, 그래도 썩 나쁘진 않았던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 사람을 강사가 아닌 선생님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살면서 정말 선생님이라고 부를 가치가 있는 사람을 만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사교육을 비웃던 내가 학원에서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될 줄은 예상 못했어서 의외였지만, 막상 마음을 열고 나니 그런 건 상관이 없었다. 덕분에 나는 학원에서도 웃는 시간이 늘어났다. 물론 그 선생님 말고도 반이 바뀌며 만난 좋은 친구들의 영향도 있었다.


하지만 불행의 총량이 정해져 있는 건지, 그때쯤부터 학교 생활이 꼬이기 시작했다. 그에 스트레스를 받던 나는 엄마와 담판을 지어 결국 학원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렇게 인연은 끝이 났다.




그 시기는 어느 때보다 나 자신이 중요했고, 내게 집중했던 시기라 주변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래서 '그 시점'에 '그 선생님'을 만났다는 사실이 내게 행운이라는 걸 몰랐다. 암울했던 10대 시절을 견딘 후 20대가 되고 나서야 어렴풋이 느꼈다. 그때 참 다행이었다고.


물론 그런 인연이 없더라도 나는 어떻게든 그 시기를 견뎠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조금은 더 수월하게 버틴 건 사실이니까. 다시 생각해도 참 고마운 사람이었다. 지금도 어디서 무얼 하건 누군가에게 또 좋은 영향을 끼치며 살고 있겠지. 그런 당신을 추억하며 마음속으로 응원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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