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그때가 중학교 1학년 초였는데, 첫 시험부터 국어 성적이 좋았고, 마침 담임 선생님이 국어 담당이었고, 주말에 특별한 일정이 없었다. 이 별 거 없는 소소한 우연의 겹침으로 나는 난생처음 백일장에 참가하게 됐다. 그전까지는 들어만 봤지 뭘 하는 건지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는데 대뜸 그렇게 나가게 된 것이다. 그것도 학교 대표로.
그날은 정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일단 토요일 오후에 학교 행사로 인해 모르는 학생들 틈에서 교사와 함께 대중교통 수단으로 어딘가에 간다는 게 유쾌한 일일 수는 없는 법이지 않겠는가. 심지어 뭔지도 모르겠는 행사에 말이다. 그때 나는 너무나 소극적인 학생이었고 거의 끌려가듯 행사장으로 갔다.
그렇게 도착한 장소는 같은 지역이지만 거의 가본 적 없는 먼 경기장이었다. 도착해서 받은 안내문을 읽고 나서야 백일장이 당일 발표되는 글제로 진행되는 글쓰기 대회라는 걸 알았다. 인솔해준 선생님은 드넓은 경기장 한쪽에서 글을 쓸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주고는 끝나는 대로 집에 돌아가면 된다며 떠났다.
어리둥절한 채로 주변을 둘러봤다. 그날은 유난히 날씨가 좋았는데, 뻥 뚫린 경기장 너머로 펼쳐진 하늘이 정말 새파랗고 예뻤다. 기분 좋게 살랑 스치는 바람, 시끌시끌하고 어수선한 분위기, 경기장 내부를 오가던 수많은 사람들, 멀리 보이던 전광판에 뜬 글제까지. 이상할 정도로 그 별 거 아닌 모든 게 하나 같이 설렜다.
어느새 주말에 억지로 끌려온 기분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오히려 정말 오랜만에 기분 좋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취미라 할 만한 것도 없던 내 인생에 아주 중요한 무언가가 생기던 순간이었다.
여전히 어떤 글을 써야 하는지, 실제 경험으로 써야 하는 건지 아니면 지어내서 쓰는 건지조차 알 수 없었지만 그냥 원고지에 글을 써 내려갔다. 정확히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그저 백일장에 있던 내내, 그리고 혼자 돌아오는 길마저 두근거렸다는 감정만 남아있다.
돌이켜보면 백일장에 다닌다는 행위 자체가 나와 굉장히 잘 맞았던 것 같다. 다양한 장소에서 새로운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것, 혼자서도 얼마든지 다닐 수 있다는 것, 준비물조차 필요 없고 그저 펜만 있으면 된다는 것, 무엇보다 글을 쓰는 대회라는 점이 그랬다.
낙서는 좋아하는데 그림은 못 그렸던 난 언제나 글로 낙서를 했다. 처음에는 좋아하는 문구를 따라 쓰다가 종종 직접 지어내어 쓰기도 했다. 즐거워서 했던 건 사실이지만 본격적으로 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 정도는 그냥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그리고 그 사실은 내가 백일장에 나가면서 달라졌다. 뭔가 남들과는 다른 걸 하고 있다는 느낌. 획일적인 학교 생활 속에서 숨통을 조금 트이게 했던 게 바로 백일장이었다. 더 많은 백일장에 나가고 싶어 고등학생이 되는 게 기다려질 정도였다.
그렇게 글을 쓰고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말로는 표현하지 않던 진짜 내 생각을 담은 그런 이야기를.
그때도 지금도, 대체 국어 성적과 백일장이 무슨 상관인가 싶다마는 결론적으로 내게 엄청난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내가 주관이 강한만큼 그걸 표현하는 것에도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었다면 아마 참가를 거절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살면서 백일장에 나갈 일도, 글을 제대로 쓰기 시작할 일도,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올릴 일마저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또 다른 계기로 글을 쓰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솔직히 이 글을 쓰면서, 결론적으로는 작가가 되지도 못했고 관련 직업을 가진 것도 아니면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지금 내 상황을 생각하면 이게 정말 행운이었던 걸까 싶기도 했다.
고민 끝에 그래도, 행운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글쓰기는 어떤 방식으로든 내 삶에 남았고, 이게 없었다면 이겨내기가 힘들었을 위기들이 꽤 많았다. 특히 고등학생이었던 날 버틸 수 있게 도와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글을 쓰고 있으니까. 끝은 아직 모르는 거니까. 이 추억을 소중한 우연이 만들어준 행운으로 남기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