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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Feb 01. 2023

4년 만에 캐나다 영주권 취득

2019년에 캐나다 땅을 처음 밟고 수없이 많은 분들께 도움을 받으며 2023년 1월에 영주권을 얻었다. 많은 이민자들이 증언하듯 영주권은 시작일 뿐이고, 더는 핑계가 없어진 내게는 앞으로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지만, 이정표를 세우기로 한 첫 순간을 기억하고자 두서없는 글을 쓴다.


지난 사 년간 캐나다에서 배운 것은 많지 않다. 타국에 대한 환상이 사라지고 현실을 깨달을 즈음 나는 내가 디딘 땅보다 낯선 곳에 내던져졌다. 생계에 관련된 걱정과 불확실한 미래와 조바심과 걱정 같은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은 어느덧 나의 일부가 되었다. 오히려 전에는 그런 것들을 개의치 않았기에 먹물을 빨아들이는 도화지처럼 그것들은 내게 쉽사리 스며든 듯싶다. 누구는 이를 "철이 든다"고 표현하지만 이에 동의하지는 못하겠다. 통제를 벗어난 고통은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고통을 지불해 얻어낸 대가는 값지다. 이곳에서 나는 혼자서는 무엇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이치를 깨달았다. 문자 그대로 생존에 급급했던 내게 아무런 대가 없이 도움을 베푼 고마운 사람들 덕분에 지금까지 나는 살아있을 수 있었고, 앞으로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한 커리어를 생각할 지혜를 얻었다. 이 하나만으로도 나는 지나간 20대의 절반을 절대 후회하지 않을 터다.


여전히 간혹 못난 시절의 내가 꿈에 등장한다. 자기만의 잣대로 타인을 판단하고 섣불리 행동했던 과거의 자신. 나름의 정당한 이유를 들어 주위에 상처를 줬고 나 역시 상처를 입었다. 아주 오래도록 누구나 삶의 주체라는 착각에 빠진 채, 자취를 하기 시작한 성인 때부터, 볼품없거나 내세우기 곤란한 성취를 하나둘씩 쌓던 20대 초반에서, 방황하는 사람들을 비웃던 25살까지, 본인의 인생에 책임지지 못한다 여겨지는 이들을 주제도 모르고 경멸하곤 했다.


그러한 나의 고집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 줬음을 부정하진 않는다. 나는 본인과 타인에게 겁도 없이 냉소를 던지며 스스로를 늘 배고프게 만들었고, 허기에 이끌린 내가 지금 내디딘 밭을 벗어나 끝없이 헤매며 더 실한 열매를 찾도록 유도했다. 하지만 그것은 화전민의 삶과 다름없다. 순전히 코앞의 미래를 위해 과거와 현재를 불태우며, 결국엔 더는 태울 것이 남지 않을 때까지 계속 도망치는 삶. 그동안 무심코 불질렀던 것들이 공공재였음을 생각하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게다가 나는 여전히 그 고집을 떨쳐내지 못했다. 짐작컨대 그것은 나를 그림자처럼 평생 따라다니며 때로는 이정표를 대행할 것이다.



이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또 무엇을 해야 할까. 이곳에서 낯선 이들에게 환대를 받으며 나는 겸손을 배웠다. 사람이 남에게 이유 없는 도움을 베풀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것이 아름다운 사회에 일조한다는 것을 배웠다. 무엇보다 그동안 내가 야생이라 굳이 믿었던 이 세상이 알지 못했던 이들의 손으로 가꿔진 화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 나는 지금껏 정성들여 만들어 낸 누군가의 세계를 수없이 태우고 그 열량을 연료 삼아 나아갔던 것이다.


더는 그렇게 살지 않으려 한다. 앞으로 커리어를 쌓고 힘을 갖추면 사람들에게 선뜻 손을 내미는 사람이 될 것이다. 한평생 사랑했던 취미를 즐기며 최소한 내 주변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 것이다. 하지만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의심의 여지가 없다. 상술했듯 나는 아직도 과거의 고집과 조금도 멀어지지 않았으니까. 내가 과거를 부끄러워하지만 미워하지 않는 것은 나의 이면을 부정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 내가 나만의 화단을 어느 정도 가꾼 시점이 찾아온다면 나의 고집도 나를 떠나리라 믿는다. 내가 내 일부를 사랑하듯 나의 일부도 그러할 것이다.


그럼 그때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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