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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연 Mar 21. 2024

엄마와 달리기(2)

덜컹거리는 트럭 안에 몸을 실고는 머리카락을 묶어 올렸다. 학교 앞이었다. 엄마는 늘 정문에서 조금 떨어진 옷수선 집 앞에 차를 대어주었다. 엄마와 짤막한 인사를 나누고 차에서 내려 학교를 향해 걸었다. 정문을 지나치자 앙상한 가지만 남은 큰 나무가 보였다. 무지개색 계단을 하나씩 밟아 올라가며 건물 입구로 들어섰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아이들이 많지는 않았다. 교실에 도착해 몇몇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가운데 줄 제일 끝자리에 가서 앉았다. 칠판이 잘 보이지 않는 자리였지만 또래보다 키가 컸던 나는 뒤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무료하게 창밖을 보고 있으니 곧 종이 울렸다. 수업이 시작되었다.


오후 2시, 이제 집에 갈 시간이었다. 책가방에 필통과 알림장을 넣고 숙제를 해야 하는 수학책도 집어넣었다. 옆자리 짝지와 짧게 인사를 하고 우다다다 뒷문을 향해 달렸다. 버스 시간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마음이 급했다. 학교 정문에서 조금 더 내려와 문방구 앞 버스 정류장에 줄을 섰다. 곧 버스가 도착했다. 주머니에서 200원을 꺼내 돈통에 넣고는 뒷바퀴가 위치한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렇게 40분을 가 00 대학교 정문 앞에서 내렸다. 횡단보도 앞에서 발을 쿵쿵 구르며 빨간 불이 초록색이 되기를 기다렸다. 마음속으로 하나, 둘, 셋...... 구십구까지 세고 초록불이 들어온 반대편으로 걸었다. 조그만 아이가 대학생들 사이에 껴 있으니 조금 우스운 모양이었는지, 지나가던 대학생들이 나를 보고선 귀엽다는 듯이 웃었다. 예쁘게 입은 언니에게 살포시 윙크를 날리고 앞으로 뛰어갔다. 뒤에선 깔깔 대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저 앞에서 보이는 엄마의 인영에 와다다 달려가 안겼다.


"엄마! 나 왔어."

"어~ 딸 왔어?"

"이제 시작해? 천막 걷을까?"

"응, 저쪽 천막 걷어줘~"


트럭 반대편으로 넘어가 천막을 돌돌 말아 올렸다. 작은 손으로 말아 올린 천막은 어딘가 삐뚤삐뚤했지만 그런대로 잘 고정되어 있었다. 잠시 후 엄마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엄마는 옆에서 붕어빵 팥 속을 넣고 있었다. 잠시 뒤면 하얀 이불 같은 반죽이 팥을 숨길테다. 그러고 뚜껑을 덮고 붕어빵 모양 틀을 갈고리로 눌러 뱅글 돌려준다. 내가 제일 좋아라 하는 순간이었다. 잠시 후 완성된 붕어빵들을 앞에 줄지어 올려두면 어느새 손님이 와있었다. 돈통에 2천 원을 집어넣는 키가 큰 오빠를 잠시 보다가 앞에 있는 떡볶이를 휘휘 한 바퀴 저어 주었다.


"연이야, 엄마 화장실 좀 다녀올게"


옆자리로 냉큼 엉덩이를 옮겨 붙였다. 손보다 한참 큰 장갑을 끼고는 갈고리를 손에 들었다. 아마도 다 익었을 붕어빵을 꺼내기 위해 갈고리로 붕어빵 틀을 한 바퀴씩 돌려주었다. 뚜껑을 열고 갈고리로 붕어의 입꼬리에 고리를 걸고 툭, 붕어빵을 꺼냈다. 잘 익은 붕어빵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 사이 손님도 왔다. 손님이 오면 반갑게 인사를 해야 한다는 엄마의 신조에 따라 말갛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익숙한 솜씨로 종이봉투에 붕어빵을 착착 담아 건넸다. 앞에 선 손님은 우리 가게가 처음인 듯 주위를 둘러보며 '어른'을 찾았다.


"어른, 지금 없어요. 화장실 갔어요."


당당하게 뱉은 말에 앞에 선 아줌마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고는 붕어빵을 받아 들었다. 어린아이가 붕어빵 기계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으니 다들 지나가며 한 번씩은 쳐다보았다. 오히려 좋았다. 이목이 집중된 김에 큰소리를 내었다.


"붕어빵 사세요~~!!"


금세 돌아온 엄마는 기가 찬다는 듯 나를 쳐다보셨다. 그러곤 울상인 얼굴로 한숨을 쉬셨다. 엄마는 내가 장사를 잘할수록 슬퍼 보였다.


장사는 저녁에 되어도 끝나지 않았다. 앞 좌석에서 졸던 나는 배고픔에 눈을 떴다. 트럭 앞에서는 웬 아저씨 두 명이 테이블을 가져다 두고 무언가를 팔고 있었다. 어두운 밤에 플래시를 켜고 종이에 이것저것 적는 게 보였다. 불편해 보이기에 자동차 라이트를 켜주었다. 앞에서 쳐다보는 시선에 왜인지 부끄러워져서 좌석 밑으로 쏙 들어가 숨었다. 잠시 후 두 아저씨는 붕어빵을 한가득 사갔다.


오후 9시가 넘으면 엄마는 나를 집에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엄마는 밤새 대리운전을 뛰고 와서 새벽에 잠을 잤다. 아침이 되면 나를 데려다주고는 다시 들어가 쉬었다. 점심때가 지나 내가 학교를 마칠 즈음에는 트럭을 끌고 나왔다. 나는 매일 학교를 마치고 엄마의 직장으로 달려갔다. 그게 내가 엄마와 함께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으므로. 나는 그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하루는 엄마에게 물었다. 왜 학교 정문이 아닌 옷수선 집에 내려주는지. 엄마는 당황한 듯 잠시 머뭇거리셨다.

누가 봐도 장사하는 트럭을 타고 등교하면 내가 부끄러워할 줄 알았단다. 가난이 무엇인지 잘 모를 그 나이에도 엄마의 축 처진 어깨가 안쓰러웠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고작 부끄럽지 않다고 말하는 것뿐이었다. 실제로도 부끄럽지 않았다. 우리 집은 가난했지만 나는 다른 아이들이 부러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내가, 엄마가, 가족이 부끄러웠던 적도 없다. 아마도 엄마가 가장 최선의 모습으로, 가장 크고 아름다운 햇볕으로, 가장 기꺼이 나를 위해 존재하고 있었기에. 나는 그 무엇도 부럽지 않고 부끄럽지 않은 나일 수 있었다.

숨 막히는 인생에서 나는 언제부터 달리기 시작했는지 궁금했다. 어느 날에는 너무 느린 내가 원망스럽기도 했고 가끔은 남들보다 빠르게 뛰고 싶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나의 달리기는 엄마가 더 빨리, 죽어라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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