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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진 Nov 05. 2018

한정판 출간의 뒷이야기

<퇴사준비생의 런던> 한정판이 나오기까지


될거 같다가도, 안될거 같다가도, 될거 같은 생각이 왔다갔다 한다. 새로운 시도를 고민할 때마다 어김없이 거치는 과정이다. 결과를 예측해 볼 수는 있지만 알 수는 없기에 의사 결정의 기준을 결과 보다는 의미에 둔다. 그러면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후회가 덜하다. <퇴사준비생의 런던> 한정판을 준비할 때도 그랬다. 보통의 경우는 이미 출간한 책을 기념할 일이 있을 때 한정판을 내지, 출간에 앞서 한정판을 내는 케이스를 찾긴 어렵다. 특히 '골즈보로 북스' 사례처럼 책의 한정판에 넘버링을 하는 사례는, 조사한 바로는 없었다. 책을 재정의 하며 책의 설자리를 찾는 시도를 해보고 싶었고, '한국에서는 안될거야'라는 선입견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새롭게 시도하는 일에 의미를 담았다고 해서,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해서 결과를 운에만 맡길 수는 없었다. 독자들의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한 고민이 필요했다.


출발점은 '골즈보로 북스' 모델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였다. 한국 실정에 맞게 응용하기 위해서도, 한정판의 매력을 알리기 위해서도 골즈보로 북스를 깊이있게 분석해야했다. 몇가지 가설을 가지고 조사를 시작했다. 이 때 세훈이의 도움이 컸다. 2017년 5월 취재 때 찍은 사진에 보이는 모든 책들의 1년간 가격 변화를 추적했고 가격이 오른 책들에 대한 원인을 조사했을 뿐 아니라, 골즈보로 북스가 그동안 출시했던 모든 한정판에 대해 살펴봤다. 적어도 한국에서 골즈보로 북스 사례에 대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연구를 했다. 세훈이가 조사해준 내용을 바탕으로 골즈보로 북스가 내세우는 서명받은 초판본에 대한 의미를 디코딩해 콘텐츠로 썼다.  


다음으로 협업을 할 서점을 찾아야 했다. 함께해 줄 서점이 없다면 골즈보로 북스 모델을 구현하는 건 요원했다. 협업을 할 수 있는 여러 서점 중 가장 먼저 논의를 해보고 싶었던 서점은 '책발전소'였다. 책발전소의 팬층이 두텁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퇴사준비생의 도쿄>가 김소영 대표 덕분에 많이 알려진 부분이 있어서 이번 기회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골즈보로 북스 사례가 독립 서점이 추구할 수 있는 하나의 모델일 수 있는데, 책발전소가 <퇴사준비생의 런던>으로 실험을 해볼 수 있기를 바랐다. 책발전소와의 협업은 이상적이었다. 실험적인 시도임에도 불구하고 설득의 과정이 필요없었기 때문이다. 김소영 대표는 문제의식에 대한 공감대가 있었고, 센세이셔널한 이벤트에 대해 열려있었다. 물론 비즈니스적으로 상호 발전적인 의미가 있었기 때문에 협업이 가능했지만, 주은이가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데 가교 역할을 했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건 응용이었다. 한정판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콜렉터라는 개념이 낯선 한국의 상황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책이 소품화되는 경향에 소구할 수 있어야 했다. 그렇다고 일반판과 표지 디자인 차이가 크면 독자들 입장에선 다른 책으로 인지할 가능성이 컸다. 양장본 외에 달리 방법이 없어보이던 문제에 경희가 아이디어를 냈다. 표지 디자인에 야광을 입히자는 것이었다. 표지 디자인이 런던의 풍경과 비경을 담은 스카이라인을 표현한 건데 일반판과 디자인이 동일하면서도 밤이 되면 그 스카이라인에 빛이 들어온다는 설정은, 낭만적이었다. 또한 독자들의 성향을 고려했을 때 한정판에 굿즈를 포함하면 더 반응이 있을 것이라는 김소영 대표의 아이디어에 경희가 아이디어를 더했다. 책발전소 책소개의 시그니처인 크래프트지로 포스트잇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독자들의 인터랙티브한 독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유가 있는 굿즈였다.


될거 같다가도, 안될거 같다가도, 될거 같았는데, 결국 됐다. 그렇게 나온 한정판은 기대 이상의 반응이 있었다. 온라인 판매 수량은 순식간에 마감되어 매장 판매분을 돌려 온라인 판매분을 2배 가량 늘렸고, 매장에서 판매했던 수량도 일주일만에 완판되었다. 온라인 판매라면 당연시 여겨지는 10% 할인도 없었고 택배비도 별도로 받았지만 독자분들은 책발전소에 주문을 해주셨다. 또한 한정판을 구하기 위해 가까운 서점 대신 당인리와 위례까지 발걸음을 해주셨다. 한정판 책과 독립서점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한국에서는 안될거야'라는 선입견을 깰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모든 한정판 독자 분들에게 몸둘 바를 모를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새로운 시도는 고객의 응원으로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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