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지만 기분 좋은 가을 러닝
다 녹일 듯 찐득하게 눌러앉아있던
캘리포니아의 더위도 때가 되니 서늘한 가을에게 슬슬 자리를 내어주고 떠나가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달리기 제일 좋은 계절을 맞이하니 운동화 끈을 묶고 밖을 나서는 마음이 더 가볍다.
얇은 갈색 티셔츠와 길어서 대강 반으로 잘라버린 검은 레깅스에 리복 조깅화, 이어폰과 팔에 차는 폰 홀더가 내 러닝 준비물들이다.
주로 오디오북이나 유튜브강의, 간혹 뛰고자 하는 맘이 안 생기는 날엔 좋아하는 음악목록을 들으며
러닝 앱에 5km를 설정한 뒤 달리기 시작한다.
그날 기분에 따라 5km 코스는 달라진다.
조용하게 달리고 싶은 날엔 한적한 우리 동네만 세 바퀴 돌기,
좀 더 에너지가 있는 날엔 사람들과 차를 구경하며 옆동네까지 크게 돌고 오기.
달릴 때 우리의 뇌는 잡생각을 멈추고 달리는데만 집중한다. 그래서 달리기를 꾸준히 하면 다른 일을 할 때도 집중력이 향상된다고 한다.
요즘 같이 짧은 영상에 절여져 있는 현대인의 뇌를 원 상태로 되돌려 놓을 수 있는 해답은 글쓰기, 독서에 이어 달리기에 있을 수 있다.
이번 여름엔 저녁에도 건식 사우나 안을 뛰어다니는 기분이었다.
남아 있는 뜨끈한 도로의 열기가 숨 쉴 때마다 코와 입으로 훅훅 빨려 들어와 입안이 바싹 마르곤 했다.
시원해진 요즘은 그때에 비해 정말 천국이다.
시원한 공기와 반짝이는 아침 햇살 속에 붉게 변해가는 나무 사이사이를 지나간다.
아기자기한 꽃들을 심은 마당과 핼러윈 데코의 집들도 구경하고 동그란 눈으로 쳐다보는 강아지들에게 눈인사를 하기도 한다.
달리는 도중 대마초를 하며 지나가는 커플을 본다.
달릴 때 우리 몸에서는 모르핀과 같은 성분인 엔도르핀과 대마초같이 신경을 안정시키는 강력한 천연 호르몬인 아난다마이드가 나온다고 한다. 달리기를 하는 건 천연 아편과 대마초를 동시에 피우는 것과 같다고 하니
그래서 달리기에 빠지면 뛸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중독을 경험하는 거 아닐까.
달리기는 계속해서 나를 지표면에서 들어 올리는 행위이다.
숨이 차고 다리가 당기는데 반복해서 들어 올린 만큼 몸과 마음이 중력에서 벗어나듯 가벼워진다.
힘이 들지만 기분이 너무 좋다, 상쾌하다.
내 안의 묵은 호흡과 에너지를 밖으로 내보내고 새로워지는 기분이다.
난 이 기분이 참 좋다. 달리기를 하고 부기가 빠지는 느낌.
몸 안에 무겁게 채워져 있던 것들이 비워지는 가벼운 상태.
내일 또 나는 달릴 것이다.
시원하고 맑은 아침 공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내쉬며
오늘도 이렇게 두 발로 상쾌하게 달릴 수 있음에 감사하며
높고 파아란 하늘과 가을색으로 물들어 가는 풍경들에 감탄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