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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은 나에게

by stay cozy

갑자기 날아온 세금고지서

2024년을 시작하며 제일 먼저 우릴 찾아온 건

예상치 못했던 세금이었다.

알아보니 멜라루스(신도시등에 각종 기반시설 마련 세금) 같은 것이었는데 연말까지 다 세금을 냈다고 안심하던 연초에 갑자기 고액의 세금 고지서가 날아오니 준비가 돼있지 않았던 우린 급하게 크레딧 카드로 세금을 낼 수밖에 없었다. 내고 또 내도 연초에 까지 들이닥친 세금폭탄에 억울하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일단 해당 기관에 전화를 걸어 이제부턴 연말 전에 미리 보내주길 당부했다.

2025년이 되기 몇 달 전 우린 세금으로 낸 크레딧 카드비를 드디어 다 갚을 수 있었다.


사이드잡 해고

남편이 사이드잡으로 일하는 회사가 사정상 감축을 하며 남편도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이 또한 예상하지 못했고 하루아침에 통보를 받게 된 일이었다. 다음 달 월급까진 지불해 주기로 했지만 다음 달 이후의 생활비를 충당하려면 하루빨리 다른 일을 구해야 했다. 나또한 집 근처 식당과 가게에 가서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보았다. 하나같이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남편은 바로 그 저녁에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고 다행히도 다른 재택근무 일을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숙지해야 하는 사항이 너무 많고 본업을 방해할 정도가 되어서 며칠 가지 못하고 그 일은 그만두어야 했다. 우린 몇 달간 모아두었던 돈과 최소한의 생활비로 버텨 나갔고 다행히 몇 달 후 남편의 본 직장에서 오버타임이 늘어나며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엄마의 혈액암 수술

몇 년 전 다 제거가 된 줄 알았던 엄마의 혈액암이 아직 남아있다는 결과가 나왔고

엄마는 다시 수술대에 오르게 되었다.

수술 며칠 전 바쁜 남편은 집에 남아야 했고 나 홀로 엄마집으로 향하는 내내 마음이 우울하고 무거웠다.

다 제거되었다더니 왜 아직 남아있는 건지.. 지금 내가 엄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화가나고 동시에 무력감을 느꼈다.

엄마는 다시 머리를 파내는 수술을 했고 노란 헝겊을 피부와 같이 꿰매 물이 들어가지 않게 했다. 엄마는 그런 상황에서도 '머리에 노란 꽃을 꽂은 여인'이라며 농담을 하셨다. 아닌 말이지만 내 동생은 부정적인 아빠가 아닌 긍정적인 엄마가 이런 상황을 겪으셨기에 자신도 더 절망적이지 않을 수 있었다고 했다. 엄마도 많이 힘드셨을 테지만 우리에게 티를 내지 않으시려고 많이 노력하셨겠지.. 재수술 후 앞으로도 자주 폐검사, ct촬영등을 해야 하지만 엄마는 좀 더 채식 위주로 드시고 튀긴 음식을 멀리 하시고 물을 더 자주 마시는 습관을 기르고 계신다.

엄마는 가끔 내게 신나게 라인댄스를 가르치고 계시는 모습을 카톡 동영상으로 보내주시곤 한다. 엄마 친구분들과 행복한 한때를 보내고 계신 모습에 내 맘도행복해진다.


시어머니의 담석수술

몇 달 전부터 소화가 잘 안돼고 자주 체한다고 하시던 시어머니가 어느 날 배가 너무 아파서 죽겠다고 전화를 하셨다. 근처에서 일하고 있던 시동생네가 어머니를 모시고 근처 병원으로 갔다. 담석이었다. 여기 말고 더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어머니는 배가 터질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병원비를 걱정하셨다. 일을 하지 않고 계셨던 어머니는 몇 달만 있으면 의료보험이 적용되는 연세가 되니 좀 더 있다가 수술하면 안 되겠냐고 물으셨다. 의사는 담석이 너무 많아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우리는 어머니에게 일단 비용 걱정 마시고 수술을 잘 받으시라고 했다. 그 후 수술 날짜가 하루 이틀 미뤄졌다. 미국 병원은 하루 입원해 있을 때마다 어마무시하게 돈이 붙는다. 어머니는 제일 강한 마약성 진통제를 투여받는데도 통증이 느껴지셨다. 애 낳을 때 보다 더 큰 고통에 병원비 걱정까지 더해져 더 괴로우셨다고 한다. 며칠 후 수술에 들어갔다. 최근 수술을 받아본적 없으셨던 어머니가 수술 동의서에 쓰인 " 수술 중 사망할 수도 있다는 것에 동의함" 이란 글을 보고 펑펑 우셨다. 아들들한테 해준 것도 없는데 죽으면 어떡하냐고 아이처럼 우시는데 이건 모든 수술동의서에 의례적으로 있는 글이라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진정시켜 드렸다.

수술을 마치고 혹시라도 의료보험에 가입된 게 있는지 찾아보던 간호사가 기쁜 소식을 알려주었다. 예전에 가입하신 보험이 하나 살아있다고. 어머니가 아주 예전에 깜박하고 해지하지 않은 보험이 하나 남아있었기에 의료비 폭탄에서 벗어나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속으로 의료비 고지서 폭탄을 맞을 생각에 덜덜 떨고 있던 우리, 시동생네 그리고 어머니는 만세를 불렀다.


어머니집 수도관 터짐 공사

몇 달 전 시어머니 집에 갔는데 바닥이 이상하게 온돌바닥처럼 따뜻했다. 좀 이상하다 싶었는데 알고보니 수도관이 터진 거였다. 집이 20년 이상 되다 보니 이제 손볼곳이 많아진다. 결국 공사하시는 분을 불러서 수도관 공사를 하셨다.

최근 12월이 되었을 때 어머니집 천장과 벽에 다시 누수가 된다고 하셨다.예전 공사하시는 분이 제대로 공사를 안한 탓에 다시 세는 거였다. 공사하셨던 분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를 계속 안 받으시다가 며칠 후 연락이 왔다. 간암이 재발해서 지금 상태가 좋지 않으시다고. 몸이 좋지 않은 분에게 오셔서 보수를 해달라고 부탁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물도 쓸 수가 없어 씻질 못하고 오래 놔두면 누수가 더 심해질 것 같았다.

마침 시동생네 아시는 분이 어머님집 근처에서 공사를 하고 계셨고 사정을 해서 어머니집부터 공사에 들어갔다. 우리 집도 최대한 공사비를 보태드렸고 어머니가 잘 깎으셔서 거의 반 가격에 해주시기로 했다. 큰돈이 들긴 했지만 정말 다행히도 많이 할인을 해주셨고 빨리 보수를 시작할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다.



돌아보면 나의 2024년은 '괴로움 속의 감사함'이라 하겠다.

몇 달마다 괴로운 일들이 터졌지만 끝에는 감사하게도 마무리가 지어졌다.

큰돈이 나갈 때도 있었지만 그 돈을 갚고 나면 그동안 먹고 싶던 피자를 한판 사 먹기도 했고 친정,시어머니가 차례로 아프셨지만 좀 나아지시고 나서 같이 시내로 놀러 다니기도 했다.

갚을걸 다 갚은후 먹은 피자는 더 맛있었고 아팠던 가족이 퇴원을 하고 함께하는 시간은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며 언제 있을지 모를 위급한 상황을 대비해 필요치 않은 물건은 사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더욱 꾸준히 돈을 모으기로 결심을 하게 되었다.

나부터 건강을 챙겨야 다른 가족을 돌볼 수 있단 생각에 매일 10km를 뛰며 몸에 좋지 않은 설탕,밀가루 ,튀김 ,과자들을 끊고 10kg 이상을 감량했다.


마음이 흔들리고 괴로울 때 독서와 글쓰기가 나를 위로해 준다는 걸 느끼며 나름 꾸준히 브런치에 글을 쓰고 독서하는 습관을 기를 수 있었다.


2024년 한 해는 개인적으로도 이상하리 만치 연달아 일들이 일어났었고

내가 살아온 한국, 내가 살고있는 미국 모두 큰 사건들이 많았던 해였다.


그리고 며칠 전 새해를 코앞에둔 29일

큰사고가 일어났다.

한국이 겪은 이 큰 참사에

전 세계사람들이 참담한 심정으로 슬퍼하고 애도하고 있다.

참사로 인해 희생되신 분들과 형언할 수 없는 아픔 속에 계실 유가족 분들을 애도하며

2024년 마지막 날을 보낸다.



정지우 작가의 인스타 그램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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