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또 걷기
며칠째 큰 폭으로 증시가 폭락하는 나날.
정겨운 부모님 댁에 와있지만 몇 달째 통제할 수 없는 상황들에 대한 불안감과 공포가 마치 고문관처럼
잠을 설치게 하고 아침엔 다시 날 흔들어 깨운다.
바닥이 깊을수록 더 높게 튀어 오르는 법.
모든 게 영원한 것 없이 떨어지고 나면
또 날아가는 날이 있다는 걸 머리론 잘 알고 있지만
싱숭 생숭한 마음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엄마가 사놓으신 건포도빵과 샐러드를 간단히 챙겨 먹고 걷기 위해 맨해튼으로 나섰다.
오늘의 목표는 센트럴파크의 호수를 크게 한 바퀴 돌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거였다.
날 따라붙는 걱정들을 떼어내는 의식처럼 맨해튼 기차역에 내린 후부터 걷고 또 걸어 센트럴 파크에 도착했다. 러닝 하는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도 달리고 싶단 생각을 했다. 좀 더 가볍게 가져오고 러닝화 신고 올걸. 무거운 마음에 집중하느라 가볍게 오지못한 이상황이 아쉬웠다.
산책 나온 귀여운 강아지들을 보니 집에 남아있는 순해가 생각난다. 순해도 여기 오면 참 좋아할 텐데 나이가 많아 비행기를 잘 탈 수 있을까 생각을 하니 울컥해진다.
혼자 공원을 걸으며 우는 사연있는 여자처럼 보일까봐눈물이 흐르기 전에 얼른 감정을 삼킨다.
세상 연한 분홍 잎을 피운 벚꽃들을 보니 맘이 말랑해지며 이 순간만큼은 안전하고 편안한 천국에 있는듯한 느낌이다. 그러다 저 벚꽃을 머리에 달고 뛰어다니는 상상이 돼 헛웃음이 나온다.
내 앞의 현실은 이렇게 아름다운데
내 폰 안의 또 다른 현실은 끝없이 폭탄이 날아들고 뒤지게 얻어맞은 개미들이 픽픽 쓰러져있는 전쟁터다.
어플은 잠시 멀리하고 평안하게 산책을 하고 운동을 하는 사람들 속으로 현실도피를 한다.
오늘 맨해튼을 나가며 쓴 비용은 총 기차비 왕복 10달러, 주스 4달러였다. 배가 고파 걷기 앱으로 받은 기프트 카드와 맥도널드 포인트로 도넛과 치킨너겟을 받아 야무지게 허기를 채웠다.돈버는 앱을 8개 돌리다 보니 절약도 되고 필요할 때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어 좋다. 근데 남편이 오늘 필요 없는데 20달러를 썼다는 전화를 받았다.. 와라라 잔소리를 했더니 만났을 때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한다.
한쪽에서 아끼면 이상하게 한쪽에선 또 그만큼 쓰며
또이또이 한 결과가 나오는 요상한 부부의 소비생활에또한번 헛웃음이 난다.
2만보를 좀 넘게 걸어 집에 드디어 도착했다.
배가 고파 엄마가 사놓으신 음식들을 먹고 물을 벌컥벌컥 마시며 갈증을 해결했다. 아무 생각 없이 엄마에게 맛있는 저녁을 얻어먹고 깨끗하게 씻고 글을 써본다.
과한 생각은 쓰기로
불안은 움직임으로
피곤할 땐 읽기로
혼란할 땐 걷기로
슬플 땐 운동으로
극복하란 말에 공감이되 저장해 놓은 적이 있다.
몸을 따라 내 감정도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되새기며
내일 아침에도 러닝을 하고 읽고 쓰고 부모님과 찜질방에 가서 땀을 한 바가지 쏟을 예정이다.
내가 좋아하는 이런 활동들이 차곡차곡 쌓여
나중에 맞닥뜨릴 힘든 상황을 버텨낼 수 있는 힘을 보충시켜 줄 거란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