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연히 어떤 영상을 보았다.
한 애니멀 커뮤니케이터가 강아지와 주인을 보며
"이 강아지는 당신의 유년시절 키우던 요크셔였는데 다시 강아지로 태어나 당신 곁에 와있네요.
자신을 두고 다시 제주도에 갈까 봐 걱정하고 있기도 하고요.
모습은 다르지만 같은 영혼의 강아지예요. 당신을 지켜주러 왔어요 "라고 말해 주었다.
강아지 주인은 커뮤니케이터에겐 예전에 키우던 강아지에 대해서나 , 강아지를 맡기고 제주도에 다녀온 것에 대한 얘기를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자주 듣는 유튜브채널에서도 한 애니멀 커뮤니케이터의 인터뷰를 들었다.
너무나 사랑하던 반려견이 무지개다리를 건너게 되자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주인이 의뢰를 하게 되었고 강아지와의 교감을 시도했다고 한다. 강아지는 몇 달 후 그 여성분의 아이로 태어나려 한다는 말과 함께 그 이후엔 자신의 모든 기억을 잊게 될 거라 교감은 어려울 거란 말도 덧붙였다. 여성의 남편은 이야기를 듣고 사기 치지 말라며 화를 냈지만 강아지와 교감한 커뮤니케이터가 가족들과 강아지만이 겪었던 어떠한 일에 대해 말을 하자 놀라는 눈치였다. 그리고 실제 몇 달 뒤 난임이었던 여성분은 딸을 임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코웃음 칠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3차원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더 큰 세상이 존재한다고 믿는 나에겐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얘기들이었다. 어쩌면 작은 희망 같은 이야기였다.
나이가 많은 강아지를 키우는 입장에서 한 번씩 뜨는 펫로스 증후군 기사들은 언젠가 내게도 기어이 찾아올 불청객같아 의식적으로 피하게 된다. 매일을 옆에 붙어서 어디든 같이 다니던 강아지가, 나만 쳐다보고 나만 기다리는 이 소중한 생명이 인간보다 7배 빠른 생의 주기로 어느 날 영영 볼수없는 곳으로 가버릴 그 상실감을 생각하면 어떤 밤엔 자고 있는 강아지를 바라보며 눈물이 난다. 반려동물과의 이별도 이러한데 부모님이나 가족은 오죽할까.
나이가 많은 강아지와 나이 드는 모습이 매해 선명해지는 부모님 사이에 내가 있다. 늙어 간다는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내가 제일 아끼는 존재들이 자꾸 멀어져 간다는 의미이기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과 상실감을 느끼게 한다.
책을 읽다 그런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에게 같은 슬픔을 가진 의사가 이야기해 주었다.
그 아이와 같이 했던 10여 년의 행복했던 시간을 기억하자고.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고 너무 소중했던 그 시간을 떠올리며 감사하자고. 너무 큰 슬픔이지만 잠시나마 같이 할 수 있었던 그 시간들을 가질 수 있었음을 추억하자고. 경험해 보지 못한 나로선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슬픔이지만 더는 같이 할 수 없음에 슬픈 마음을 그간 같이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는 맘으로 바꾸기까지 마음속 깊은 구멍같은 공허를 얼마나 처절하게 극복해 왔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많은 사람들이 반려동물들을 정말 자식처럼 가족처럼 생각하고 아낀다. 말은 못 하는 동물이지만 영혼이 있는 생명과의 교감과 사랑을 하찮다 여기고 사람과 사람 간의 교감만 못하다 할 수 있을까.
다가올 이별에 슬퍼하기보다 현재 더 많이 아끼고 사랑해 주자고 생각한다.
우리 강아지를 챙겨주는 건 단순하다. 좋아하는 산책을 오늘 더 오래 시켜주고 더 많이 쓰다듬어 주고 좋아하는 고기도 잘 챙겨주자. 혼자 있는 걸 많이 싫어하니 오래 혼자 놔두지 않는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 같이 할 수 있었던 날들이 참 행복했다고 서로 기억할 수 있게.
사랑하던 반려동물을 보내고 많이 슬퍼하시는 분들에게 어떤 위로가 있었으면 한다. 모습은 다르지만 같은 영혼의 강아지가 다시 찾아온 것처럼.
애니멀 커뮤니케이터의 말처럼 어디선가 반려동물들은 다른 차원에서든 아님 실제 다른 모습으로 주인을 생각하고 지켜보고 있을 수도 있다고. 못해줬던 일들은 금세 잊고 또 주인만 바라보는 이 순수한 영혼들은 어디에 있던 함께 했던 시간 동안 참 행복했다고 추억하고 있을게 틀림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