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2024
한 번씩
반려동물 그림을 그리기 전
오늘 내가 잘 그려낼 수 있을까란
불안이 찾아올 때가 있다.
반려동물들의 종과 색도 다양해서
처음 그려보는 종이 거나
털색이 특이한 경우 미리 겁이 날 때가 있다.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책상에 꺼내놓으며 생각한다.
처음부터 스케치가 잘 안 되면 어쩌지?
열심히 다 그렸는데 사진이랑 안 닮아 있으면?
날 믿고 맡긴 걸 텐데 받는 분이 좋아하셔야 될 텐데..
그러다가
슬금슬금 내속에서 누군가 외친다.
그림 하나 그리는 걸로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야?
남들은 이 힘든 세상 더 어려운 일들도 척척해내는데!
아냐 저마다 스트레스를 받는 기준은 다를 수 있는 거니까.
스트레스받으면 받는 데로
난 그냥 그런가 보다 인정해 주면 되지..
하며 나름 자책하는 소리를 뭉게 버린다.
오늘 아침은 운동도 건너뛰고
간단한 샤워 후 머리가 다마르기도 전에
질끈 묶어 흘러내리지 않게 한다.
공부든 뭐든 시작하기 전 예열을 해줘야 하는 과정이 다들 있을 거다.
난 한 번씩 그림을 그리기 전 매운 라면이 당긴다.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어묵, 새우, 계란 부추까지 넣어
이걸 아침에 어떻게 다 먹어 생각이 들 정도로
냄비 꽉 차게 끓이고 있었다.
내가 좀 많이 불안한가 보구나 ㅎㅎ
내 불안만큼 꽉 채워 넣은 아침 라면을
역시 다 먹지 못하고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놨다.
좀 먹다 보니 내가 지금
배가 고픈 게 아니었단 걸 느꼈기 때문이다.
오늘 그릴 루시.
대강의 스케치를 따주고 얼굴 세부묘사부터 들어간다.
이목구비만 잘 잡혀도 그림의 반은 완성이기에,
특히 눈이 잘 그려지는 게 제일 중요하다.
사진으로 대강 볼 땐 몰랐는데
그림을 그리면서 보니 루시의 깊은 갈색눈이
참 매력적이구나 느끼게 된다.
직접 바로 보고 있는 건 아니지만
사진으로 반짝거리는 강아지 눈을 마주 보고 있으면
이때 얘는 어떤 감정이었을까 생각해 본다.
아마 엄마가 얌전히 앉아보라고 한 말에
뭔지 몰라도 동그란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며
앉아있었겠지.
바탕은 심플하게 해달라고 부탁하신 거처럼
루시는 털색이 어두워서 바탕을 안 하는 게 훨씬
번잡함 없이 예쁘게 그려질 거 같았다.
그림이 조금씩 조금씩 메꿔지는 만큼
내 안의 불안은 조금씩 사그라든다.
루시그림을 완성하고 사진을 찍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실키테리어 종으로 추정되는
루시가 지그시 바라보는 모습이 멋졌다.
실물의 귀여움을 다 그려내진 못해도
그려낸 강아지그림은 뭐랄까,
오일색연필 특유의 따뜻함으로
그림책 속 주인공 같은 분위기를 내는 게 좋다.
작은 다목적 카드도 선물로 만들어 드렸다 :)
그림을 다 그린 후 때마침 시원하게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휴. 할 일을 마쳤으니 이젠 좀 편안한 마음으로 오후를 보낼 수 있을 거 같다.
오늘의 기록은 나의 작은 불안에 관한 이야기다.
불안은 계속해서 그 일을 해야 없어지기 마련이다.
큰 무대에 자주 서야 되는 가수들에게 불안을 어떻게 없애냐고 물으면 자꾸 무대에 서다 보면 점점 줄어든다고 한다.
나도 내 그림에 연륜이 쌓은 만큼 그림에 대한 불안이 줄어들겠지.
항상 처음 스케치를 할 땐 떨리더라도
귀엽고 소중한 존재들을 작게나마 꾸준히 그려나가고 싶은 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