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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호흡으로 삶을 다스릴 때 [제주 숙소 | 토투가]

스테이폴리오 '트래블'은 작가와 함께 폭넓은 스테이 경험을 소개하는 콘텐츠입니다.



거북이에게 배우는

느림의 미학


글ㆍ사진  전욱희


때로는 삶의 속도를 낮춰야 할 때가 있다. 어느 날 끊어둔 제주행 비행기에 바삐 흐르던 일상을 멈추고 떠났다. 쉼이 절박해 브레이크를 건 건 아니었지만, 비행기 취소 수수료를 핑계로 떠나고 싶었던 게 맞겠지.


어렴풋이 이번 제주 여행의 목적지를 서쪽으로 정하고 나니, 머릿속에 떠오르는 스테이가 하나 있었다. 3년 전, 제주에서 살던 시절 마음에 품었던 스테이, 토투가. 한적한 해안도로 옆 위치한 토투가 커피에서 빼꼼 보이는 하얀 주택이 스테이라는 걸 알고 나서, 언젠가 한 번쯤 이 풍경을 베고 누워보리라 마음먹었던 것이 생각났다. 망설임 없이 숙소를 예약하고, 느슨한 서쪽 여행을 다짐하며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



‘토투가’는 스페인어로 거북이라는 뜻. 거북이를 형용하는 단어는 단연 느림이다. 로고도 거북이의 등껍질을 닮은 이곳에 ‘느림의 미학’이 담겨 있을 거란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여행의 목적은 항상 그래왔듯 삶의 부산물을 털어내고, 나에게 맞는 호흡을 되찾는 것. 바쁜 일터의 속도에 맞추어져 있던 나에게는 이러한 의도적으로 속도를 낮춘 느린 호흡이 여행의 목적을 상기시켜 준다. 이러한 기대 속에서 공항에서 차를 찾고 토투가가 있는 서쪽으로 향했다. 선택한 방은 101호. 스테이에 도착해 문을 연 순간, 이번 휴가에 꼭 맞는 곳이라는 걸 깨달았다.



테이크아웃해 온 저녁을 차리고 먹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해는 빠르게 지고 수평선에 반딧불이처럼 밝은 빛들이 걸리기 시작했다. 101호의 옆에 사는 행복이의 인기척이 들리고,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다 내음과 함께 시원한 맥주를 마셨다. 어느덧 기분 좋은 나른함이 찾아와 반갑게 잠자리에 들었다. 



이곳의 시선은 모두 한곳을 향한다. 토투가 앞으로 펼쳐진 귀덕리의 너른 바다. 바다를 마음에 담아가는 것이 다인 숙소. 화장실 외엔 막힌 공간이 없이 바다를 향해있도록 간결히 실내가 연출되어 있다. 곳곳에 옛집의 흔적이 켜켜이 남아 있다. 이런 공간 안의 켜가 바다를 바라보는 장면을 각기 다르게 연출하는 듯했다. 침대 앞 옛 창틀의 프레임을 통해 바라본, 그리고 바테이블에서 식사하며, 느긋이 커피를 내리며 창 너머로 바라보는 바다의 모습은 같은 듯 달랐다. 침대에서 바라보던 바다는 고요한 수평선으로 나의 잡념을 잠재웠다면, 바테이블에 앉아 바라본 바다는 해안도로를 향해 일렁이고 부서지며 더 깊은 사색으로 나를 인도하는 듯했다.



다음 날엔 날씨가 꽤 흐렸던 탓에 평소보다 늦게 일어났다. 비가 올 줄 알았는데, 다행히 오지 않아 가볍게 아침 산책하러 나갔다. 토투가가 위치한 귀덕리의 아침은 해녀의 시간이었다. 저 멀리 어렴풋이 보이는 까만 형체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으니 그제야 해녀가 물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모습이란 걸 알았다. 아침 산책은 조금 늦은 시간이었는지, 해녀 작업장 근처에서는 이미 물을 털고 퇴근하는 할머니들도 보였다.


작업장을 따라 항구를 따라 걸으며 가까이서 일렁이는 바다를 보면 작은 물고기들도 보이고, 타박타박 걷는 소리에 갯강구들이 후다닥 도망가고, 이를 뒤따라 작은 게들도 피신한다. 귓가에는 바람 소리와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만이 들려 꽤 느린 걸음으로 오래 걸었다. 



산책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마주한 토투가의 모습. 이런 집과 아침 산책이 있다면 언제든지 돌아오고 싶은 공간이었다. 나의 일상이 되었으면 하는 하루를 경험해 볼 수 있는 스테이. 스테이와 함께하는 여행은 나의 일상 취향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채비를 하고 좀 더 서쪽으로 나갔다. 간단히 점심을 먹고 나니, 해가 나기 시작해 수영복을 챙겨 금능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많아 북적대는 해수욕장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여유로움. 바닷가에서 오랜만에 수영을 했다. 물에 둥둥 떠 바라본 하늘은 시시각각 달랐고, 몸에 부딪혀 오는 파도의 모양도 매번 달랐다. 감각에 집중하며 보낸 시간이 언제쯤이었을까 곱씹어 보며 놀다 보니 어느새 2시간이 흘러있었고, 손과 발은 물에 퉁퉁 불어있었다. 넉넉지도 않은 해수욕장 샤워실에서 물을 끼얹고 걸어 나오니 기분 좋은 허기짐이 찾아왔다.



토투가로 다시 돌아와 수영복을 널어두고 얼른 저녁을 먹으러 갔다. 물놀이하고 먹는 푸짐한 저녁에 맥주를 곁들이니 절로 행복해졌다. 바로 옆에 찾아와 앙증맞게 앉아있는 고양이들 덕도 있었다. 코로 노래를 흥얼거리며 나오자마자 하늘에서 하나둘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이내 비가 주룩주룩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 없이 나왔던 우리는 낭만 있게 걸어가기로 마음먹었다가 거세지는 빗줄기에 항복하고 얼른 우산을 샀다. 택시가 잡히지 않아서 깜깜한 제주의 밤길을 걸어 숙소로 향했는데, 저 멀리 밝게 불이 들어온 하얀 토투가가 멀리 보였다. 하염없이 걷던 우리에게 반가운 토투가. 얼른 들어가 따뜻한 물에 샤워하고 나오니 이번에도 기분 좋은 나른함에 금방 곯아떨어졌다. 



눈을 뜨고 나니 어느덧 휴가 마지막 날 아침. 창문을 여니 들어오는 따뜻한 바닷바람에 커피를 내리고, 책을 읽었다. 객실에는 책이 무심한 듯 쌓여있지만, 이 바다를 배경으로 읽어봄 직한 책들이었다. 책을 몇 권 꺼내 문장 몇 줄 읽고, 바다 한 번, 그리고 커피 한 모금. 그저 행동으로만 채워지는 시간을 보냈다.



나의 삶이 쌓여갈수록 느끼는 건, 오히려 일상으로부터 비워낸 시간은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 용기로 채워지곤 한다는 것. 바쁨을 덜어내고 나만의 느린 호흡을 맞이할 수 있다는 걸 확인한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휴가가 된다. 시간이 갈수록 이런 느슨한 휴가를 꼭 계획하게 되고, 휴가 속에서 일상으로 돌아갈 회복력의 힌트를 찾고는 기뻐한다. 토투가는 이러한 리추얼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인 공간이었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도 비슷할 듯하다. 


빼곡히 적힌 방명록을 아쉬운 듯이 들춰보고 토투가를 나섰다. 바닷속을 헤엄치다 육지로 나와 충분한 호흡을 채우고 가는 거북이처럼, 바쁜 일상에서 나와 느린 박자의 충분한 쉼을 채우고 간다. 이곳에서는 하루도 좋지만, 이틀의 시간을 내어보시길. 온전히 토투가에서의 하루는 당신의 바쁜 일상을 기꺼이 멈추게 해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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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과 사진은 저작권이 있으므로 작가의 동의 없이 무단 복제 및 도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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