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폴리오 '트래블'은 작가와 함께 폭넓은 스테이 경험을 소개하는 콘텐츠입니다.
글ㆍ사진 ㅣ 고서우
행원리의 낮과 밤은 모두 고요하다고 생각하다 문득, 이곳의 각 객실명이 ‘낮’과 ‘밤’이 아닌, ‘볕’과 ‘밤’임을 떠올리고는, 이름 지음에 호스트의 진중한 고민이 있었음을 깨달아볼 수 있었다.
‘볕’ 그리고 ‘밤’
가느다란 골목길에 짙게도 스며있는 바닷가 냄새를 맡으며 두 객실을 번갈아 봤다. 괜스레 이 앞을 걷고 싶은 뭉근함을 주던 모습의 스테이 ‘그슬’. 배낭 하나씩 메고 걸어가던 올레꾼들의 목소리는 열어둔 창문을 타고 들어오기도 했다.
“여긴 가정집인가? 뭐야, 와! 정말 예쁘다.”
내세우지 않은 ‘볕’과 ‘밤’이라는 간판이 아무래도 눈에 크게 띄지는 않는지, 다들 궁금해하는 속에서 공통된 감탄들이었다. 나 역시도 똑같은 반응으로 ‘그슬’을 처음 마주했으니까.
나는 이렇게 지나치는 사람들의 감탄마저 여러 번 듣게 하는 제주의 예쁜 숙소들을 정말 많이 다녀보았는데, 이곳은 출발 전부터 좀 더 각별한 마음이 있었다. 이유라면, 그간의 내가 주로 1박의 여행기만을 종종 써 왔다면, 이곳에서는 2박의 여행기를 써 올 여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설령 2박 3일 이상의 여행을 하더라도 같은 숙소에 2박 이상을 머무는 일은 거의 없었기에, 한 곳에서 느긋한 2박을 보낸다는 자체로도 이미 기분에서부터 남다른 여유가 느껴졌다.
‘내일은 이 앞 주차선에 주차를 하면 되겠구나.’
나는 먼저, ‘밤’의 문을 열었다.
내가 ‘그슬’을 만난 날의 하늘은 잔뜩 흐렸다. 아니, 먹구름이 울먹거리다 이내 거센 울음을 터뜨리던 날씨였다. 하늘에서 보는 모습이 궁금했고, 노을빛이 건물에 반사되는 모습을 보고자 했기 때문에 그 점은 나를 몹시 서운하게 했다. 학수고대 해오던 모든 얼굴들이 멀어져가는 중이었다.
그렇게 터덜거리는 걸음으로 본 객실, ‘밤’의 모습은 오히려 좋았다고 표현해도 크게 과언은 아니지 싶을 만큼 이 어두운 날씨에 잘 어울렸다. 사실, 무척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는데, 이 하늘이 이렇게 운치 있는 공간이라면, 맑은 날 자연광이 깃드는 모습은 어땠을까 하는 정도의 아쉬움이었다고 남기고 싶다. 내 손이 조금 빠른 편이었더라면, 릴스용 짧은 영상이라도 담을 게 많았을 거다.
가장 먼저, 친구에게 보여줄 영상을 재빠르게 하나 담았다.
집들이 브이로그라도 찍듯이, 있는 그대로의 구석구석을 모두 촬영해 자랑했다. 오늘, 내일 머물다 갈 곳이 이렇게 예쁘다고.
‘그슬’의 ‘밤’은 들어가자마자 반기는 요소가 하나 있었는데, 그 이름에 맞게 ‘빛우물’이었다.
아주 높은 천장에 뚫려있는 저 동그란 빛우물을 통해서 사계절 모든 날씨와 시간을 이 공간에 내려다 주겠지, 상상하니, 우두커니 서서 보는 탁한 백색의 구름도 그저 멋진 풍경이 됐다. 옆에서 떠들어대는 이 없는 상황 속에서 혼자 올려다보기에 이보다 알맞은 것은 없었다.
‘밤’은 이 내부 중정을 기준으로 양옆에 생활공간을 두고 있는데, 나는 먼저 우측의 미닫이문을 열었다.
문을 열면, 바로 보게 되는 것이 내부 자쿠지다.
내부 자쿠지 옆으로는 책을 볼 수 있도록 작은 여백 공간이 있는데, 이곳은 책 말고도 여행객 각자가 취향에 맞는 것들을 준비하여 꺼내놓는 공간으로 쓰이면 좋을 것 같았다. 기분 좋은 습함과 잠이 올 것 같은 자쿠지의 온도. 그것들과 어울릴 만한 것은 떠올리기 나름일 테니까.
그렇게 목욕으로 나른해진 몸을 이끌고, 우리는 곧바로 침실로 향하게 된다. 적어도 나는 그 동선을 좋아한다. 그 동선에 맞게 자쿠지 바로 옆으로는 침실이 위치해 있는데, 침대 사이즈가 제법 넉넉하기도 하고, 낮은 위치에 난 깨끗한 창이 공간감을 시원하게 느끼도록 해 주기도 하여, 침실에 대한 만족도가 이미 시각적으로 높게 올라간 상태가 되었다.
요새 들어서 내가 어릴 때와 비교해 달라진 게 있다면, 암막 커튼과 어두운 조명으로 공간을 꽉 막아버린 것 같은 곳에 있으면, 어릴 때 느끼던 아늑함과 프라이빗함은 온데간데없고, 가슴이 답답하고 눈이 침침해지는 듯해서 당장이라도 바깥으로 나가고 싶어진다는 점이다.
이렇다 보니, ‘그슬’의 ‘밤’ 침실은 요즘 나의 심리에 꼭 맞는 곳이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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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스러운 침실과 자쿠지를 다시 돌아 나와, 맞은편 문을 열었다. 그간에 더 세게 쏟아지고 있던 비가 마침 잘 어울리는 공간을 만났다. 바로 찻테이블이 놓인 거실 겸 주방.
테이블이 놓인 거실 겸 주방이라고는 했으나, 내가 느낀 이곳은 주방과 제법 높은 단차로 분리되어 있는 별도의 공간으로써, 찻방의 개념이었다. 가까운 바닷가를 뷰로 한.
‘그슬’의 바로 앞에는, 지형적으로 바닷물이 호수처럼 가두어진 소(小)바다가 있다. 성산일출봉 근처에서도 본 적 있는 모습이었는데, 그보다 훨씬 작고, 인위적이지 아니하여 운치가 있기로는 이곳이 비교할 수 없이 우수했다. 이 모습을 뷰 삼아 공간을 만들어 놓으니, 욕심이 나는 위치라고 표현하는 게 맞다.
새 떼들이 물 위에 앉았다, 날아갔다 하는 게, 그야말로 그림 같았다.
저 멀리에는 풍차가 돌아가고, 돌담에는 물이 흠뻑 스며서 색이 짙어진 것이, 그림 같지 않다면 어떤 게 그림 같은가 반문해야 했다.
주방 쪽으로 몸을 돌렸는데, LP가 보인다. LP 음악을 좋아하는 지인 생각이 났다. 나야, 사진 욕심에 날씨 운도 지지리 없다고 투덜거렸지만, 그게 아니라면, 박수를 치며 반겨야 할 LP판!
주방에는 요리할 수 있도록 준비된 것들이 정말 많았다.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일회용 파우치 후추, 소금, 고춧가루 등. 덕분에 미리 가져간 갈비탕을 취향껏 잘도 먹었다는 뒷이야기.
이 모든 공간을 누리며, ‘그슬’의 ‘밤’을 보냈다. 시간을 흘려보내는 순간마다 바깥을 내다보았다. 잠이 드는 그 순간까지도, 옆으로 누워 감기는 눈앞에 돌담을 두었다. 따뜻한 체온이 이불 밑으로 잘 가둬지기까지 하니, 금세 잠이 든 나는, 아침이 오는 줄도 모르고 깊은 잠을 잤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다음날,
나는 옆 객실 ‘볕’으로 자리를 옮겼다. 차만 앞으로 살짝 이동해서, 다음 ‘밤’을 쓰게 될 손님들이 자리하도록 한 뒤에, 뽈뽈뽈 짐을 옮겼다.
‘볕’은 ‘밤’과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들어가니, 이곳은 바로 마주하게 설계된 거실 공간이 ‘밤’보다 크게 느껴졌다. 그리고 특이한 점은, 침실 공간이 중간에 마당을 사이에 두고 별도의 건물에 분리돼 있다는 것이었는데, 재밌으면서도 정말 특이하다 여겨지는 부분이었다.
거실을 넓게 쓰며 가지고 온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기엔 이곳이 더 알맞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실제로 저녁을 먹을 땐 노트북으로 영화도 보고, 유튜브 영상도 봤다. ‘밤’이 조금은 낯선, 여행지의 밤 기분을 주었다면, ‘볕’은 내 집 같기도 했다.
‘볕’은 야외에서 불멍을 할 수 있는 넓은 마당이 있었다.
장작을 태워서 불을 피우면, 타닥거리는 소리와 바닷물 일렁이는 소리를 함께 들을 수 있었다. ‘밤’보다는 바깥 공간을 더 넓게 쓸 수 있도록 설계가 된 곳. ‘볕’에는 야외 자쿠지도 보였다.
‘그슬’이라는 스테이 골목을 걷던 어제의 나는, 오늘 그 안으로 들어와서 마당을 걷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었다. 너무 춥지도, 덥지도 않게 불어오는 바람이 기분을 즐겁게 해 주었다.
침실의 경우는 ‘볕’에서 완전히 더 좋았다. 지나치게 좋다는 감탄은 피하는 편이 옳겠지만, 너무 좋았다. 일단은 천장이 매우 높았고, 밝은색의 침대 발치에는 차를 마실 수 있는 찻상과 작지만, 파노라마 뷰를 볼 수 있는 창문 등.
아늑하면서도 탁 트인 공간감은 바로 이곳에다 두고 해야 할 말이라고 또 한 번 흡족감을 느꼈다. 정말 잠을 자면서, 이 밤이 길었으면 좋겠다고, 눈을 떠서는 이 침실, 이 침대에서 딱 하루만 더 자보고 싶다고 생각했을 만큼의 안락함이 컸다.
마지막 날까지도 결국 흐린 하늘만을 보여주던 ‘그슬’이었지만, 나 하나는 정말 만족스러웠던 스테이로 기억에 남았다. 이 가득참을 아름다운 사진으로 보여주면 좋았겠지만, 흐린 하늘 아래 ‘그슬’도 이만큼 예쁘다고. 부디 내 사진이 그렇게 보였으면 하는 바람을 글로써 한 번 더 표현해 본다.
‘볕’과 ‘밤’
그 어느 곳 하나를 더 좋았노라고 이야기하기에는 각각의 공간별 장점 요소가 뚜렷했던 곳.
어제 만난 그 새 떼들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이틀 얼굴 마주한 너희들에게도 이만 인사하며, 짐을 챙기고 돌아 나왔다.
“안녕, 나의 이틀 밤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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