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폴리오 '트래블'은 작가와 함께 폭넓은 스테이 경험을 소개하는 콘텐츠입니다.
글 · 사진 ㅣ 김송이, 신은지
꽃봉오리가 힘껏 꽃잎을 펼치던 4월 초, '임영고택'을 만났다.
강릉은 언제 와도 인심이 느껴지는 지역이다. 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엔 할머니들이 서로의 안부를 나누고, 교복을 입은 학생들은 집에 갈 채비를 한다. 동네 사람들과 함께 버스를 기다리고 있노라면 우리도 자연스럽게 동화된 것만 같다. 동네를 구경하며 오다보니 어느새 임영고택의 문 앞에 도착했다.
봄볕이 따사롭게 내린 마당과 툇마루. 툇마루 위에 걸린 팻말은 '淨几橫琴曉寒 梅花落在絃間(깨끗한 책상에 거문고 타니 새벽이 차갑고, 매화가 떨어져 줄 사이에 있네.)’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이 팻말은 옛날 어느 서당의 훈장님이 결혼 후에 이곳에서 지내려던 딸에게 지어준 시이다. 이곳 또한 그분의 딸이 지은 공간이라고 하던데 팻말과 공간을 함께 보고 있자니 오늘의 날씨처럼 마음이 따스해진다.
밤색과 화이트로 이루어진 내부는 차분함이 감돈다. 나무 창살과 작은 소반이 있는 다실은 귀여우면서도 한옥 본연의 느낌이 묻어난다.
화장실은 안쪽에 자쿠지가 있는 곳과 다실 옆에, 총 2개가 마련되어 있다. 특히나 다실 옆 화장실은 없는 게 없었다. 디퓨저가 든 수납장 아래 서랍에는 치약, 빗 등 사소하지만 숙소에서 쉴 때 꼭 필요한 것들이 준비되어 있다. 무언가 챙기지 않은 것이 있다면 이 서랍을 열어보시라.
주방은 다양한 식기와 커피 머신, 그리고 차를 마실 수 있는 여러 가지 다구가 준비되어 있었다.
다구를 보자마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우리는 국화차 티백과 잔을 챙겨 곧장 툇마루로 나왔다. 문영님이 내려준 차를 한 모금 머금고 있으니 혀끝에서 꽃향기가 피어난다. 눈앞에 있는 배롱나무는 50년이나 되었단다. 우리는 시원한 바람이 지나가는 툇마루에 그저 앉아 있었다. 생각보다 행복은 가까이에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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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 자쿠지는 두 명이 들어가도 넉넉할 만큼 굉장히 넓었다. 자쿠지가 넉넉한 만큼 여유를 가지고 물을 받아 두어도 좋겠다. 파우더리한 향을 머금은 입욕제는 사해 소금이다. 준비된 소금만큼 자쿠지에 풀어서 사용하면 피부진정과 각질 제거에 도움이 된다.
침실은 천창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하얀 침구 위에 떨어지는 햇살의 조화가 참 좋았다. 바쁜 일상 속에서는 독서할 시간조차 찾기 어려운데 여유로움이 가득한 이곳에 들어서면 책 한 권과 차분한 공간을 선물 받을 수 있다.
해가 저물자 저녁을 준비했다. 내부에서 요리를 하기엔 적절치 않아 주변에서 배달을 했다. 숭어회는 초면이었는데 생각보다 정말 맛있었다. 처음 음식을 마주할 때는 첫입이 참 중요한데, 강릉의 숭어회 덕분에 좋은 미식 경험을 했다. 회의 식감은 신선할 수록 또렷이 전해져오는 법인데 역시 강릉이다.
창으로 작은 조명을 두른 나무들이 보인다. 저녁 식사 후에는 책을 읽거나 LP를 듣거나 사진을 찍으며 각자 본인만의 시간을 즐겼다. 비슷한 듯 다른 우리가 여유를 즐기는 방식이다.
다실은 저녁이 되면 영화관이 된다. 우리는 맥주와 주전부리를 들고 빔 프로젝터 앞에 모였다. 게스트가 어떤 채널을 좋아하더라도 그 취향을 존중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OTT 서비스도 구비되어 있다. 무엇보다 화질이 정말 좋다. 우리는 요즘 화제가 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보았다. 모든 프로그램이 그렇듯, 함께 보니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가 어느새 새벽이었다. 이제 잠에 들 시간이다.
아침의 임영고택은 눈부시다. 하얀 커튼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공간은 한 점 흐트러짐 없이 단정한 상태로 우리의 기상을 기다려 주었다. 기분 좋은 아침이다.
방명록에는 머무른 사람들의 여러 감상이 적혀 있다. 하나하나 읽어 보면 그들이 얼마나 행복했는지가 전해진다. 우리도 이곳에서의 추억이 잊히지 않도록 서둘러 펜을 잡았다. 우리의 행복도 다음 사람에게 전해 지기를.
고무신을 신고 뒷마당 의자에 앉아 잠시 눈을 감았다. 여행은 함께하는 사람도, 머무르는 공간도 참 중요하다. 모든 것이 완벽했던 이곳은 우리에게 포근한 기억을 남겨주었다. 마치 지금의 계절처럼. 단정하고 다정한 공간을 찾는다면 우리는 주저 없이 임영고택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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