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폴리오 '트래블'은 작가와 함께 폭넓은 스테이 경험을 소개하는 콘텐츠입니다.
글ㆍ사진 ㅣ 신은지
일상에서 물러서고 싶을 때 항상 제주를 찾았다. 고립을 원할 때, 그러나 현실로부터 큰 괴리가 아닌 기분 좋은 거리감이 필요할 때 제주는 내게 늘 최적의 휴식을 주었다. 그렇게 봄의 제주를 방문했고, 여름의 초입에 들어선 6월의 마지막 주, 제주에 한 번 더 방문했다. 계절마다 제주로 떠나게 되는 것을 보니 충분한 휴식이 필요한 해인 듯.
이번에는 수학여행 이후 처음 제주를 방문하는 친구와 함께라 더 뜻깊었다. 세상의 전부가 연남동인 양 매번 동네에서만 놀게 되는 12년 지기 친구. 여행을 통해 우리를 일상으로부터 분리하되, 우리를 항상 회복하게 해주었던 동네 산책 루틴은 그대로 가져가는 계획을 했다. 1박 2일은 온전히 월정리에서 보낼 계획이었고, 우리의 휴식을 완벽하게 만들어 준 '스테이 디움'을 만났다.
이틀 내내 동네에만 머무를 뚜벅이들이었기에 위치가 제일 중요했는데, 스테이 디움은 월정리 해수욕장 도보 2분 거리에 자리해 주변을 살피기에 굉장히 편한 숙소였다. 디움을 원문으로 표기하면 'The UM'. 여기서 'UM'은 라틴어로 '장소'를 뜻한다고 한다. 그 스테이명처럼 참 좋은 장소에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스테이 디움은 간결한 색과 담백한 구조를 통해, 비움의 공간이자 머무는 곳으로서의 장소적 본질에 집중하는 곳이었다. 머무는 이가 오직 여행에만 몰입하며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도록.
우리가 머무른 공간은 'hidden' 룸으로, 개별 마당과 야외 플런지풀을 갖추어 개방적이고 자유로웠다. 내부는 거실과 주방, 욕실, 침실의 구성이 짧은 동선으로 이어지는데, 거실의 천장을 높게 올리거나 침실에 큰 창을 내는 등 각 공간의 구조를 적절하게 매만졌다.
거실에서는 플런지풀이 자리한 프라이빗한 마당으로 나갈 수 있다. 플런지풀은 작은 규모지만 청량한 수공간을 만들 수 있어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나 여유로운 휴양지 감성을 끌어올린다. 따듯한 온수가 나와 오래 걸어 지친 다리를 마사지하며 풀어줄 수도 있었다. 더불어 화단에는 향긋한 허브 종류가 자라고, 한쪽에는 선베드와 벤치가 있어 시간을 보내기에 좋았다.
현관 맞은편, 안쪽으로 들어가면 침실이 나타난다. 작은 단을 올리고 침대를 배치한 간결한 구조라 수면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 비어 있지만 허전하지는 않다. 감각적인 펜던트 조명에 자기 전에 읽기 좋은 책 몇 권, 나긋한 향과 푸른 식물이 있어 침실에 기대하는 편안함을 시각으로 구현한 듯했다.
짐을 풀고 나니 출출한 기분이 들어 주방을 살폈다. 바스켓을 열어보니 제주 로컬 제품으로 유명한 돗멘과 딱멘, 제주위트와 제주펠롱 등 맥주류, 탄산수와 생수가 놓여 있었다. 제주의 맛을 집약적으로 모아둔 야식 구성에 탄성을 내뱉으며, 벌써 해가 저물기를 기대했다. 웰컴 바스켓의 경우 숙박일수와 아이 동반 여부에 따라 구성이 변경된다고 해 호스트님의 세심함을 느낄 수 있었다.
조리 기구 또한 다양했다. 숙소에서 무엇이든 요리할 수 있도록 냄비와 프라이팬, 각종 도구와 식용유, 후추, 소금 등 기본적인 재료가 구비되어 있었다. 특히 iittala 플레이트와 고블렛 잔 등 다양한 브랜드의 제품이 마련돼 평소에 관심 있던 식기를 사용하는 즐거움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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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우리에게 양질의 휴식을 제공했던 건 욕실의 역할이 컸다. 전체 규모 대비 욕실의 면적이 넓은 편이기도 하고, 구조적으로 중요하게 다루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호텔 욕실처럼 고급스럽고 깔끔한 분리형 구조이면서 실용성도 놓치지 않았다. 세면 영역, 위생 영역, 욕조 영역 모두 별도로 구분되어 쾌적하고, 세탁기도 있어 물놀이한 후 탈수가 가능해 무척 편리했다. 수건 위에는 정원에서 보았던 향긋한 허브 잎이 올려 있고, 감각적인 오브제와 디퓨저도 마음에 든다.
스테이 디움에서는 환경 보호를 위해 일회용 욕실용품을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 플라스틱 용기가 필요하지 않은 고체 치약과 대나무 칫솔, 루파 샤워스펀지를 비치했다. 숙박객이 이에 자연스럽게 동참하며 친환경 어메니티를 사용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샤워와 욕조 공간은 다른 곳과 달리 천장이 무척 높아 독특한 샤워 경험을 안겨주었다. 옆에는 대나무숲이 보이는 낮고 긴 창이 있었는데, 이 공간 또한 밝은 뉴트럴 톤이라 푸른빛이 사방에 번져 작은 숲속 동굴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준다.
조적 욕조는 2명이 같이 들어가도 넉넉한 크기다. 목욕 소금과 인센스, 아로마 에센스가 함께 구성돼 더욱 깊이 있는 물의 경험이 준비되었다. 샤워 어메니티는 몰튼 브라운으로 통일되어 있었다.
인상깊었던 또 다른 부분은 곳곳에 숨겨져 있었던 호스트님의 마음. 침실 서랍장을 열면 비상 약품 상자가 나타나고, 작고 귀여운 도기 함을 열면 귀여운 캐러멜 한 쌍이 나타난다.
이뿐만일까, 파라솔과 피크닉 매트 등 비치 용품도 무료로 준비되어 있고, 웰컴 키즈존인 만큼 가족 단위로 오는 손님들을 위한 또 다른 무료 옵션도 준비해 두었다. 임산부를 위해 바디 필로우와 디카페인 커피를, 어린이들을 위해 하이 체어와 세면대 발판, 변기 커버 등을 신청할 수 있으며, 24개월 미만 영아 동반 시에는 무스텔라 키트를 제공한다고 한다.
스테이 디움은 곳곳이 여유롭게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배려로 가득 채워진 공간이다. 사용자가 온전히 자신의 경험에 집중할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와주고 챙겨준다. 친구와의 여행, 커플 여행, 가족 여행 등 어떤 순간에라도 든든하게, 안심하고 머무를 수 있다.
이렇게 숙소를 천천히 둘러보며 쉬는 시간을 가졌다. 마음에 드는 자리를 찾아 뒹굴거리다 다시 월정리 여행을 나섰다.
호우경보에 풍랑주의보까지 겹쳐 걱정했는데 밖으로 나서니 하늘이 맑아졌다. 골목 어귀를 지키는 큰 나무 몇 그루를 지나고, 편의점 앞 터줏대감인 고양이와 인사하며 동네 여행을 시작했다. 목적지는 월정리 해수욕장. 산책과 여행의 경계에서 골목을 돌아다니다 봉자네상점에도 들렸다. 두툼한 모둠카츠와 해물우동으로 맛난 저녁 식사를 챙겼다.
서서히 해가 기울어갈 무렵 도착한 월정리 해수욕장. 사방이 따듯한 빛으로 가득했다. 우리는 스테이 디움의 에코백에 돗자리와 비치타월을 담아 와, 모래사장에 작은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어린아이처럼 바닷가에서 뛰어놀았다. 바다는 많이 봤지만 직접 들어가는 건 오랜만인지라 들뜨는 마음을 거스를 수 없었다. 바닷물도 놀랄 만큼 맑다. 발에 채는 해초 줄기나 우리의 움직임에 놀라 도망가는 작은 게, 수면 위로 뛰어오르는 작은 물고기를 잡으려 안달을 냈다.
몸이 슬슬 서늘해지자 자리를 정리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모래 투성이인 발에 슬리퍼를 되는대로 욱여 신고 어슬렁거리며 동네를 돌아다녔다. 몸에 묻은 모래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숙소 바깥에 물로 씻어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 젖은 옷은 세탁기로 탈수하고 야식 준비를 시작했다.
야식의 시작은 웰컴 바스켓에 들어 있던 제주 컵라면부터. 그리고 근처 월정리 카페 인더파이에서는 바질롤치즈파이와 호두피칸파이를, 아기자기한 정원이 인상적이었던 오늘도화창에서는 당근케익을 사와 달콤한 한 상을 만들었다. 가 볼 만한 카페들이 도보 1-2분 내외에 여럿 있었던 점도 스테이 디움의 매력적인 점. 디저트와 함께 숙소에 있던 다기로 차를 내려 마시니 아주 흡족했다.
숙소에서 바다가 코앞이라 사방이 어둑해진 밤에도 마실을 나가게 된다. 편의점에서 꽃불을 사와 검게 물든 해변에 앉았다. 타닥거리는 기분 좋은 소리, 그리고 작은 별이 주위로 쏟아지는 빛의 형상과 함께 우리만의 작은 불꽃놀이를 즐겼다. 꺼져가는 마지막 불꽃에는 아직 이루지 못한 소원도 빌고.
밤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욕조에 뜨거운 물을 가득 받고 친구와 함께 몸을 녹였다. 준비된 목욕 소금을 풀고 아로마 오일을 뜨겁게 달구니 몸은 물론이고 마음마저 편안한 향으로 가득 차올랐다. 이제 나이가 나이인지라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둥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관절과 근육 구석구석을 풀어주었다. 뚜벅이 여행자에게는 온욕이 정말로 중요하다.
완벽하게 잘 준비를 마쳤지만, 내일을 맞이하기 아쉬운 마음에 대화를 멈출 수 없었다. 스테이 디움에는 스탠바이미가 있어 어디서든 원하는 장소에서 ott를 시청할 수 있다. 거실에 있던 스탠바이미를 침실로 끌어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프로그램을 같이 보며 수다를 이어 갔다.
언제 잠든 줄도 모르고 깜짝 놀라 일어난 아침. 부드러운 텍스처의 커튼 너머로 햇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스테이디움은 체크인이 15시 30분, 체크아웃이 10시 30분이다. 커피를 내려 비몽사몽한 정신을 완전히 깨우고, 큰 창이 매력적인 거실 테이블에 앉아 방명록을 남겼다. 벌써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은 상황에서, 아쉬운 마음을 다독이며 여행의 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야속하게도 떠나려는 무렵에야 하늘은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줬다. 어쩌면 늦게라도 쨍한 여름 볕을 품은 디움의 정원을 보게 되어 다행이었던지. 작은 나무의 잎사귀가 모여 수면에 아름다운 그림자를 만들어 냈다.
다음에는 더 오랜 시간 머무르리라. 창 너머로 살랑이는 바람과 반짝이는 볕에 샘을 내며, 작은 다짐을 하고 문을 나섰다.
월정리의 매력을 잊고 있었다. 동네를 거닐기만 해도 만족스럽고 마음이 평온해지는 감각을 오랜만에 느꼈다. 쉼을 통해 나와 우리를 새로이 발견하게 되는 일이 어떤 것인지 또한 오랜만에 되새겼다. 아마도 아무런 걱정 없이 내게 주어진 시간에만 편안하게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존재하는 것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이 더 어렵다. 본질에 집중한 담백한 구성으로,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의 환대를 전해 준 스테이 디움. 나의 무엇도 거스르지 않고 그저 묵묵히 필요한 것을 내어 주는 공간. 하얀 바탕은 스스로가 빛나기 위함이 아닌, 누군가의 일상을 비추고 보듬는 배경이 되기 위해서였던 공간 덕분에 모든 순간이 즐거웠다.
친구와 나는 정체불명의 감정이나 피로의 찌꺼기, 일상에 묻어 있던 모든 모호한 것들을 정리하고 더욱 명료한 시야로 스스로를 가다듬었다. 이 여행의 감각을 고스란히 일상으로 가져가, 다시금 내일을 잘 살아 내자는 가벼운 약속을 했다. 그리고 조금씩 약속을 지키는 중이다. 다음 여행이 오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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