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폴리오 '트래블'은 작가와 함께 폭넓은 스테이 경험을 소개하는 콘텐츠입니다.
글ㆍ사진 ㅣ 신은지
태초의 자연을 품은 땅, 제주. 제주를 제법 자주 여행하는 편이지만 여전히 이 땅은 내게 미지의 세계다. 바다로 내려앉는 검은 대지와 하늘로 향해 높이 솟은 한라의 기세, 신비로운 화산 지형을 가득 채운 수많은 생명은 늘 경이로움을 준다. 제주를 더 알고 싶다. 제주를 더 깊게 경험하고 싶다. 그런 욕구에 휩싸이고 만다.
소중한 여행의 경험을 허투루 흘려 보내지 않고, 제주의 본질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곳을 찾고 싶었다. 그러던 중 알게 된 '스테이 느릇'. 서귀포 표선면에 자리한 스테이 느릇은 농업 회사인 보롬왓에서 운영하는 팜스테이 스타일의 숙소다.
보롬왓은 메밀, 보리와 같은 작물과 유채, 튤립을 비롯한 꽃 등 여러 분야의 농업을 다룬다. 이를 바탕으로 지역 축제뿐 아니라 화장품, 생활용품, F&B 등 산업을 확장하며, 보롬왓을 만난 이들이 제주의 자연을 통해 더 건강한 삶을 영위하도록 돕고 있다. 제품은 모두 직접 재배한 작물로 제작해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다. 이들이 기획한 숙소라면 얼마나 총체적인 경험이 가능할지 궁금했다. 조식과 카페 메뉴가 그렇게 맛있다는 소문도 있고.
더불어 감도 높은 공간을 만들어온 지랩이 디자인한 숙소이기도 해 기대가 컸는데, 드넓게 펼쳐진 들판과 숲 사이로 고요히 자리한 느릇의 자태를 보자마자 마음을 뺏기고 말았다. 그리고 이 기대감은 제주에 도착해 스테이 느릇을 실제로 눈앞에 마주한 순간, 완벽한 충족감으로 바뀌었다.
Room 제주 자연과의 독대
Playground 여행 속 여행, 땅의 이야기를 듣다
Food 모두의 취향을 만족할 로컬 미식회
Activity 수국길에서 목장까지 보롬왓 탐험하기
스테이 느릇의 '느릇'은 제주 방언으로 '내리막길' 혹은 '내려다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 이름처럼 지면에서 아래로 가라앉는 듯한 공간 배치가 굉장히 인상적이다. 숙소는 하늘 높이 솟은 삼나무숲과 지면 넓게 뻗은 메밀밭 사이에 숨겨져 있다. 6월 마지막 주, 장마 시즌이라 흐린 하늘 너머로 쉴 새 없이 비가 쏟아졌는데 그 풍경이 이토록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 오히려 좋아.
오늘 묵을 객실은 객실 10곳 중 단 1곳으로 특별한 레이아웃을 갖춘 '억새'. 대지 가장자리에 자리해 전면창과 측장 2개의 창으로 파노라마 뷰를 감상할 수 있다.
삼나무숲과 메밀꽃에 더해 여름의 주인공인 수국이 풍성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는데, 이 모든 것을 객실에서 한눈에 조망할 수 있었다. 뉴트럴 톤으로 고급스럽게 단장한 거실과 부드러운 촉감의 목재 가구들. 자연을 닮은 숙소에 잊고 지내던 마음의 여유를 되찾고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곧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웰컴 기프트로 튤립 핸드크림과 탐스럽게 영근 한라봉을 발견했기 때문. 심지어 한라봉은 과육이 아닌 주스를 마신다고 착각할 정도로, 지금까지 먹어 본 한라봉 중 가장 달콤했다. 이 밖에도 티백과 드립 커피백 등 미각과 후각을 아우르는 경험 요소가 준비되어 있다. 모두 자체적으로 재배, 기획, 생산한 제품들이라 더 의미 있다.
스테이 느릇의 억새 객실은 침실이 2곳, 욕실도 2곳이라 여럿이 방문해도 프라이빗하고 쾌적하게 머무를 수 있다. 특히 거실 옆 침실은 창 너머로 메밀밭과 삼나무숲이 펼쳐져 한 폭의 그림을 마주한 것만 같다.
베개는 눈앞에 보이는 메밀밭에서 재배한 작물로 만들어졌다. 땅의 경험이 여행의 경험으로, 그리고 삶의 경험으로 매끄럽게 이어진다. 베개의 만듦새가 좋고 적당한 높이 또한 마음에 든다. 베개를 사용한 투숙객이 실제로 구매했다는 후기를 꽤 들은 터라, 늘 수면 부족인 나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마찬가지로 욕실에서도 메밀밭을 바라볼 수 있는 구조다. 다른 공간과 달리 돌을 닮은 검은색 타일로 마감되어, 오롯이 내 몸에만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사해 소금으로 피로를 더 촘촘히 풀어줄 수 있다.
다른 침실은 주방 옆 공간에 있다. 이쪽 욕실은 자쿠지가 있는 야외 공간으로 이어져, 자연을 곁에 둔 샤워 경험이 인상적이다. 테라스에는 제주 물주방을 모티브로 한 것인지 외부 싱크대가 설치되어 있다.
어메니티는 보롬왓에서 재배한 원료로 제작된 제품. 라벤더와 튤립 등 자연의 향을 머금은 워시가 몸과 마음을 리프레시했다.
간결하지만 알찬 주방. 4인이 여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식기와 커트러리가 구비되어 있다. 드립백 또한 제작 상품인데 스페셜티 1세대로 알려진 '나무사이로'가 엄선한 생두로 풍미를 보장한다.
맑은 날이라면 테라스에서 시간을 보내도 좋겠다. 넓은 들판을 마주하고 작은 아웃도어 벤치와 테이블이 놓여 있다. 비가 멎기를 기다리며, 창을 열어 빗소리를 들으면서 책을 읽었다.
스테이 느릇 예약하기
비가 잦아든 때를 틈타 스테이 느릇 옆에 자리한 보롬왓으로 향했다. 걸어서 3분여 남짓, 리셉션을 지나면 바로 보롬왓 농원과 목장이 나타난다. 청보리, 유채꽃, 라벤더, 수국 등 계절마다 다양한 꽃밭을 가꾸어 여행 명소로 알려진 곳. 스테이 느릇 투숙객은 보롬왓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데다, 운영시간 후에 넓은 들판을 우리만의 것인 양 거닐 수도 있다.
비가 자주 내리는 제주 여행에서는 실내 관광지를 찾아두는 것이 중요하다. 보롬왓 내 식물원을 거닐며 비를 피해 즐겁게 산책했다.
식물원 옆으로는 보롬왓 작물과 제품의 생산 과정을 구경할 수 있는 전시관이 자리한다. 오늘밤 베고 잘 메밀 베개의 히스토리 또한 이곳에서 밝혀진다. 놀랍게도 메밀 베개는 껍질을 가마솥에 삶아서 세척하고 다시 건조한 후 수작업으로 제작하는 정성스러운 작업의 결과물.
최근 보롬왓은 카카오 로스팅도 도전하기 시작했다. 원두를 원산지에서 받아서 직접 로스팅하고, 초콜릿을 만드는 과정을 내부적으로 소화하면서 퀄리티 높은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좋은 재료로 만든 좋은 음식의 가치를 아는 보롬왓의 구성원들. 초콜릿에도 진심인지라 직원들이 함께 유럽을 방문해 시장조사도 하고 왔다고. 바크 초콜릿을 먹어 봤는데 퀄리티가 정말로 남다르다. 돌아가는 길에 추가로 사 갔다.
생산 중인 초콜렛의 제작 과정도 세세히 살펴볼 수 있어, 아이를 포함한 가족 단위 여행으로도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외에 꽃의 원료를 추출해 만든 화장품, 메밀차, 표고차 등 제주를 오감으로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제품이 준비되어 구경하기 바빴다. 실제 구매도 활발한 걸 보니 찐팬이 많은 것 같다.
보롬왓의 실내 공간을 둘러보며 시간을 보내고, 저녁을 먹은 뒤 다시 객실로 돌아왔다. 언제나 아쉬운 여행지에서의 밤. 욕조에 따듯한 물을 받고 나란히 앉아, 창문을 활짝 열고 비에 젖어 촉촉한 흙냄새를 맡았다. 욕조에 발을 담그고 맥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시간. 완벽한 하루의 마무리였다.
서늘하고 기분 좋은 촉감의 메밀 베개는 확실히 양질의 수면에 도움을 준다. 수면 목표를 달성해 흡족한 상태로 아침을 맞이했다.
스테이 느릇에 숙박하면 조식을 무료로 제공해 준다. 리셉션에서 제공되는데, 옻칠 작품을 선보이는 허명욱 작가와 협업해 더욱 운치 있는 분위기다. 창밖 푸른 풍경을 바라보며 식사할 수 있다.
조식 또한 보롬왓의 좋은 땅에서 길러낸 작물로 만든 한 상. 메밀 그래놀라 요거트와 귤 주스, 표고버섯 죽에 흑돼지페스추리 혹은 잠봉샌드위치 2개 메뉴 중 선택할 수 있다.
간단한 메뉴 같지만 모두 비범했다. 감귤주스는 급냉한 신선한 귤을 통째로 착즙해 만든 것으로 맛의 밀도가 대단하다. 표고버섯 죽은 한라산에서 채집한 자연산 표고버섯으로 만들어 향긋한 맛과 꼬독한 식감이 남다르고, 흑돼지페스추리는 냉동이 아닌 생고기를 활용해 풍부한 육즙을 자랑한다. 무료로 맛볼 수 있다니. 카페에서 판매한다면 일말의 고민 없이 값을 지불하고 먹을 맛이다.
농사인들이 모인 만큼 하나의 식재료가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고를 거치는지 알고 있다. 좋은 재료, 그리고 좋은 음식이 얼마나 귀한지 또한 알고 있다. 스테이 느릇의 F&B는 농업의 가치를 전하고자 하는 진정성이 아니라면 운영할 수 없는 시스템이라는 생각을 했다.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수한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깜짝 선물을 받았다. 웰컴 기프트는 들어 봤지만 굿바이 기프트는 처음이다. 너무나 맛있게 먹었던 귤 주스와 메밀 휘낭시에가 들어 있었다.
스테이 느릇에는 먹으러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객실로 돌아와 부른 배를 도닥이고자 찻잎을 우렸는데 예상외의 맛에 기어코 물배를 채웠다. 평소 곡물차를 좋아하는데, 이 차는 메밀과 팥에 도라지, 페퍼민트 등이 어우러져 시원하고 깔끔한 맛이 일품이다. 이름에 차의 맛이 담겨 있다. '오름'. 고소함에 산뜻함과 개운함이 있어 정말 오름을 오르다 바람을 마주한 느낌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꼭 구매하고 싶어서 온라인 판매를 기다리는 중.
잊을 수 없는 마지막 미식 경험은 보롬왓 카페의 메밀 팥빙수. 단언컨대 인생 빙수로 손꼽는다. 더 이상 먹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잘 들어갔다. 곱게 간 얼음 위에 콩가루와 팥, 메밀 튀일이 가지런히 올려 있고, 떡과 팥, 튀일이 추가 제공되어 그릇의 바닥을 볼 때까지 완벽한 밸런스로 빙수를 즐길 수 있다.
땅에서 시작되어 식탁에 오르기까지. 이 모든 완결된 과정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무엇보다 어떤 미식가가 오더라도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체크아웃 후에는 자연 속에서 소소한 액티비티를 즐길 차례. 먼저 숙소 주변을 천천히 산책했다. 땅의 일부인 양, 검은 벽 너머로 짙은 녹음의 삼나무가 펼쳐진 모습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았다. 루프탑에 올라가면 더 근사한 절경을 마주할 수 있다. 객실에서는 일부만 보이던 메밀밭이 드넓게 펼쳐지며 멀리 서 있는 오름까지 풍경으로 끌어안는다.
스테이 느릇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보롬왓까지 길게 이어진 수국길. 거대한 푸른빛 수국이 피어난 산책로는 이미 여행 명소로 알려져 관광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여름에만 향유할 수 있는 장관이다. 제 몸을 가누지 못해 땅으로 엎드린 풍성한 수국을 감상하며 걸어갔다.
수국길의 끝자락. 보롬왓에서 스테이 느릇을 바라보면 그 이름의 뜻을 온전히 체감할 수 있다. 땅 아래로 낮아져 완전한 대지의 일부가 되는 공간. 땅에 폭 감싸안긴 모양새에 자연을 향한 경외와 존중이 묻어나는 듯했다.
비는 그쳤지만 하늘은 열리지 않았고 운해로 가득했다. 그 아래의 땅을 수놓은 메밀꽃이 흰 구름을 닮아 더욱 신비롭다. 꿈속처럼 몽환적인 풍경에 연신 셔터를 눌렀다. 메밀꽃을 이렇게 많이 볼 기회가, 이렇게 가까이 볼 기회가 또 언제 있을까. 자그마한 꽃 뭉치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별 같은 꽃잎이 사랑스럽다.
또 다른 즐길 거리로 보롬왓의 마스코트 깡통 기차를 추천하고 싶다. 동화에 나올 법한 알록달록한 기차를 타고 밭을 탐험하는 코스다. 농장에서 흔히 보이는 트랙터가 기차의 머리가 되어 종횡무진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한쪽에는 작은 목장도 운영되어 어린아이들의 관심을 한껏 받았다.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오리 떼와 함께 들판을 산책하고, 당근을 열심히 받아먹는 양을 관찰할 수 있다.
마지막 목적지는 삼색 버드나무 정원. 일반적으로 보기 어려운 수종으로, 흰색, 핑크색, 보라색, 초록색이 한데 엮여 잎사귀가 무척 아름답다.
머물기만 해도 알찬 1박 2일을 보낼 수 있었던 스테이 느릇. 제주의 땅이 품은 풍요로움과, 이를 우리의 삶으로 끌어오는 농업의 가치를 보고 듣고 맛보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진정한 올인클루시브의 경험으로 그 어떤 소모도 없이 오로지 충만한 기분을 느꼈다. 몸이 자연으로 가득 채워진 듯한 건강한 감각을 누리며 여행을 매듭짓는다. 더 많은 체험 프로그램을 기획 중이라고 하니, 좋아하는 꽃이 피는 계절에 한 번 더 찾아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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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폴리오 예약 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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