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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의 재발견 : 어베터플레이스

단 하나의 감각적인 공간을 경험하다





서울의 내일, 그리고 '더 나은 곳'



WHY

이상과 가까워지는 공간


오래된 동네지만 핫함 과는 조금 거리가 멀어진 종로. 이곳에 오픈한 어 베터 플레이스는 동네와 굉장히 이질적이면서도, 그래서 더 흥미가 가는 공간이다. 호스트 문석진 대표는 우연히 주거 공간에 대한 프로젝트를 맡으면서 이상적인 주거 공간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그 프로젝트는 실현되지 못했지만 그때의 기억을 살려 조금씩 그가 원하는 주거 공간을 기획하고 설계했다.


그리고 수많은 서치 끝에 찾아낸 곳이 종각역 근처, 1층엔 곱창집이 있는 건물의 4층이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여러모로 힘든 도시 상권의 상층부를 살려보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스테이라는 공간의 특성상 찾아오는 공간이라 굳이 몇 층 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잘 찾아올 수 있는 안전한 위치라는 점, 유동인구가 많은 동네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처음 공간을 기획할 때의 꿈은 누구보다 원대했다. 스마트 리빙을 공간 전반에 적용하거나 특정 콘셉트를 가미한 콘셉추얼한 공간도 만들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문석진 대표가 바라는 ‘베터’는 실제 사용자가 경험하고 느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가 만들 수 있는 것들, 구현할 수 있는 것로 시선을 돌렸다.


‘우리의 2년 후의 삶은 이러면 어떨까? 게스트에게 이런 제안을 해보면 어떨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이 공간을 기획했다.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가까운 미래의 집을 보여주고 싶었다. 영화 <HER>를 보면서 우리 모두 허무맹랑하다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디자인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좋은 디자인이란 허황된 것을 보여주기보다는 실제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PEOPLE

경험을 찾아가는 디자이너


어 베터 플레이스의 호스트이자 디자이너인 문석진 대표는 산업 디자인을 전공한 후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브랜딩부터 공간 및 패키지 디자인을 비롯해 최근에는 유럽 브랜드와 협업해 가구 디자인도 진행 중이다. 해외나 국내 여행은 물론 출장을 갈 때도 숙소 선정에 많은 공을 들이는 편이다. 단순히 잠만 자는 용도로 숙소를 선택하지 않고, 꽤 오랜 시간 머물면서 경험을 쌓는다.


다양한 숙소를 경험하며 쌓은 경험을 토대로 어 베터 플레이스에 적용했다. 주로 유형의 것이 아닌 무형의 것들을 차용했다. 공간에 들어섰을 때 반겨주는 웰컴 뮤직, 은은한 향 등 볼거리, 만질 거리 외에도 오감을 만족시키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늘 고민하고 있다.


어 베터 플레이스를 기획한 것은 5, 6년 전 전 직장에서 근무할 때 한 건설사로부터 주거 공간 프로젝트를 의뢰받은 후부터. 결국 그 프로젝트는 무산됐지만 당시에 생각했던 재미있는 스케치, 흥미로운 기획들이 잔상처럼 머리에 맴돌았고, 그 잔상들을 어 베터 플레이스에 구체적으로 실현했다.


문석진 디자이너가 생각하던 이상적인 주거 모델을 직접 디자인한 후 사용자의 피드백을 바로 접할 수 있는 스테이라는 형태의 비즈니스 모델로 오픈한 것이다. 피드백을 빨리 접할 수 있어 개선해 나가야 할 점도 바로바로 반영한다. 문을 열었을 때 너무 어두워서 무서웠다는 의견을 반영해 불을 켜게 됐고, 적막함이 부담스럽다는 리뷰를 듣고 음악을 세팅하는 식이다. 앞으로도 어 베터 플레이스는 ‘베터’한 플레이스가 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할 예정이다.




LOCATION

전에 알던 동네가 아닌 종로


서울의 중심, 종로. 그중에서 예전에는 ‘피아노 거리’로 불리던 먹자골목에 이런 생경한 공간이 숨어 있다니 의아했다. 인쇄공장이 많던 을지로와 성수동이 핫한 골목이자 거리가 되고, 한남동, 이태원 일대가 여전히 사람들의 발길을 사로잡는 와중에도 종로는 밀레니얼 세대에게 놀러 가는 동네가 아닌 회사 밀집 지역일 뿐이었다. 서울에서 가장 번화하면서도 변화가 더딘 동네 중 하나였던 것이다.


1층엔 식당이 있는 건물의 4층, 이곳은 원래 DVD 룸으로 운영되었다. 여러 이유로 철거되고, 제법 오랜 시간 동안 비워져 있던 곳이 어 베터 플레이스로 변신했다. 주소만 보고서는 종각역 한가운데에 있을 거라 상상하지 못할 수도 있다. 알려준 주소 그대로 찾아와서도 크거나 그럴듯한 이정표가 없어서 헤맬지도 모른다.


겨우 입구를 찾아 어 베터 플레이스 사용자만을 위한 엘리베이터 내 비밀번호를 입력한다. 비밀번호를 입력하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않던 엘리베이터가 마법처럼 움직이기 시작한다. 4층에 도착하고 문이 열리자 흔히 생각하던 종로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현관이 등장한다. 승강기에서 내리자마자 오직 게스트를 위한 웰컴 존이 펼쳐진다. 바깥의 오색찬란한 네온 사인과 여러 곳에서 마구잡이로 흘러나오는 소음 같은 음악들이 완벽하게 차단된다. 전달받은 두 번째 비밀번호를 누르고 4층의 유일한 집 401호의 문을 연다. 그렇게 종로 먹자골목의 또 다른 세상인 어 베터 플레이스가 열린다.




MAKING STORY

서울의 내일, 그리고 '더 나은 곳'


이 공간을 만나기 전에 굉장히 많은 타겟을 리서치하고 직원들과 함께 공간을 돌아다니면서 컨디션을 체크했다. 엘리베이터 유무, 밤에 안전한지, 시끄럽진 않은지 등을 따져봤고 모든 요소들에 합격점을 받은 공간이 이 곳이었다. 한때는 DVD 룸이었지만 몇 년간 비워져 있던 공간이었다. 기획, 설계에 오랜 시간 공을 들였다. 실현 가능한 선에서 공간의 요소 중 부피가 큰 것을 고쳐보고 싶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벽. 일반 가정에서는 벽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활용하지 않는 벽은 안 쓰이는 큰 면에 불과하다. 이 공간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로 벽을 활용한다면 훨씬 더 깔끔하고 실제 주거 공간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소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공간 구성은 근대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르꼬르뷔지에가 설계한 최초의 아파트 유니테 다비타시옹을 참고했다. 이 아파트는 현재도 사람이 살고 있는 근대 아파트 중의 하나로 효과적인 공간 분할이 마음에 들었다. 길게 구성된 하나의 유닛을 슬라이딩 도어로 구분한 것을 보고 어 베터 플레이스에도 차용했다. 설계하면서 많은 수정을 거쳤고, 마음에 드는 자재를 만나기 위해 기다린 시간도 길었다. 오랜 시행착오 끝에 만들어진 공간이라 아쉬움은 없다. 다만 다음 ‘어 베터 플레이스’에서는 지금 풀어내지 못한 다른 이슈를 실현해보고 싶은 바람이다.




시공은 오래 함께 일을 하며 의견을 맞춰온 유니크 디자인 팩토리가 맡았다. 엔지니어링 솔루션 등 문석진 대표가 풀기 어려운 문제들은 유니크 디자인 백승해 대표와 논의를 통해서 다듬어 나갔다. 그림으로는 존재하지만 기존 시공 방식에서는 시도하지 않았던 것들을 찾아내고, 밀접하게 고민할 수 있는 좋은 파트너였다.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한 것은 모듈식 벽. 어 베터 플레이스는 총 9가지의 모듈이 있는데 공간의 활용도에 따라 손쉽게 구성이 가능하다. 진입부에서는 미니멀해 보이지만 내부로 깊숙이 들어가면 사용자의 라이프스타일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자제품 플러그, 스마트폰 충전기, TV 옆의 HDMI 단자, 랜선 등 모두 인스톨 라이징 되어 있다. 책을 보는 공간에는 책도 꽂을 수 있고, 키친 옆의 환풍기는 모듈 속으로 숨겼다. 각종 키친 용품 역시 모듈 가구 안으로 수납했다. 실제 주거에 반영할 수 있는 것들을 상상하면서 9가지 모듈을 설계하는 것에 가장 많은 시간이 걸렸다.




SPACE

가까운 미래, 나의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라운지체어와 스탠드 조명이 맞이한다. 어 베터 플레이스에서 가장 햇살이 잘 드는 공간이다. 신발을 벗고 공간에 들어선다. 우측으로 시선을 돌리니 공간이 한눈에 다 들어온다. 스튜디오 형식의 공간이라 확실히 개방감이 느껴진다.


침실 공간으로 들어서 본다. 디자인에 통일성을 준 자체 제작 침대와 소파가 있고, 소파에 앉아 괜히 TV를 한 번 켜본다. TV를 켜느라 옆에 시선을 돌렸더니 벽이 아닌 가구가 보인다. 쓰임에 맞게 구성된 모듈 가구 안에는 침실 옆 놀이 공간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들어있다. 친구들끼리 함께 왔을 때 하면 좋을 화투, 보드게임 등과 현대인의 필수품 보조배터리를 대신하는 USB 충전 단자까지. 이 모든 것들이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다시 왼쪽 공간으로 시선을 돌린다. 왼쪽과 오른쪽 사이에는 슬라이딩 도어가 설치되어 있다. 실컷 놀다 잠자리에 들면서 문을 닫으면 세상과 좀 더 단절된 분위기에서 잠을 잘 수 있다. 왼쪽에는 테이블과 키친이 보인다. 테이블 위의 조명은 쓰임에 따라 조도를 조절할 수 있어 편리하다. 와인 한잔할 때, 급한 업무를 처리할 때 등 용도에 맞게 조도를 조절하면 된다. 키친의 집기류가 잘 보인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모듈 가구가 보인다. 수저와 도마 등 모듈 가구에 넣을 수 있는 집기는 모두 보이지 않게 수납했다.


컵이나 그릇 등 보일 수밖에 없는 집기류는 어 베터 플레이스의 톤과 색감에 맞는 것들로 구비했다. 키친 옆의 두꺼운 철문을 열고 들어서니 복도가 나오고, 욕실과 화장실이 보인다. 더 들어가 보니 널찍한 욕조와 세면대 전쟁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준비한 2개의 세면대가 눈에 띈다. 유난히 작은 비누는 머무는 시간 동안, 쓸 수 있는 딱 그만큼의 사이즈다. 한두 번 사용 후 버려지는 비누에 죄책감을 느껴 비누까지 직접 디자인했다. 어 베터 플레이스는 겉보기에만 ‘우와’ 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이런 것까지 신경을 쓴다고?’라는 말이 나오는 공간이었다.



4 POINT OF VIEW


ORIGINALITY | 모듈 가구가 가져온 혁신

DESIGN |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MIND | 살고 싶은 공간

PRICE | 질 좋은 경험의 가치





글 ⓒ류창희

사진 | ⓒ이상필 @sangpil



어베터플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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