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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같은 여행의 기억 : 온아

스테이폴리오 '트래블'은 작가와 함께 폭넓은 스테이 경험을 소개하는 콘텐츠입니다.  



익숙함 사이에

켜켜이 묻어나는 겨울


글ㆍ사진   고서우



다녀왔던 곳으로 다시 간다는 것. 그것은 내게 특별함이다. 특별함 없이는 하지 않을 일이다.


작년, 더위가 못 견디게 힘들던 8월 말에 생일선물과 같은 여행을 했었다. 숙소는 '온아'. 평소에 좋아해 자주 찾는 카페 '커브커피스토어'가 만든 공간이라니. 그날의 하룻밤을 이곳에서 보내고자 했고, 감사히도 맑은 하늘 아래 기뻐했던 기억이 아직 있다.



무더위도 잊게 하던 기억. 그 기억을 잊지 않고, 새해가 되어서 다시 왔다.


이번에 맞이한 겨울은 내게 있어서 내내 고심이었다. 특히 1월 한 달간은 계속해서 흐린 날씨를 만났고, 하늘이 화창했던 날은 차 지붕에 눈이 쌓여 나갈 수 없었다.


하늘을 얼마쯤 믿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심하는 그 마음으로 날짜를 잡았고, 체크인 하루 전날까지도 기도했다. ‘하늘이 맑았으면!’ 하지만 내 마음과는 어긋나버린 구름이야 어찌할 수 없음을 알며, 흐린 날씨에 두 번째 문을 열고 들어간 '온아'였다.



조용하게 열리는 문. 그 안으로 한 발 들어섰을 때 여름이었던 그날과는 다른 색감이 제법 좋았다. 익숙한 것들 그사이에 켜켜이 묻어난 겨울 색깔이 마음에 들었다.


불그레한 화산 송이가 깔린 바닥 위로 볕 한 줄기 허락되지 않았어도, ‘온아’가 보여주고자 하는 색만은 분명하게 전해졌기 때문이다.



부드럽게 손에 휘감기는 커튼을 젖히며 따뜻하게 데워진 내부 공기를 만났다. 그리고, 다시 만난 ‘온아’의 향기가 그 공기를 타고 짙게 느껴졌다.


귀퉁이에 짐들을 풀어 내려놓고, 식탁 위에 놓인 엽서를 집어 읽었다. 의자에 앉아 마당 쪽을 바라보다, 차라리 시원스레 비가 내려도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저 찻방에 앉아서 외려 이쪽으로 내리는 비를 내내 구경했을 텐데.’



조금은 무거웠던 몸을 일으키고는 자쿠지가 있는 욕실로 향했다. ‘온아’는 내가 다녀본 중 가장 넓은 자쿠지를 가진 곳이다. 이만한 자쿠지라면 둘이 같은 온도에 풍덩 빠져 나선형의 헤엄을 쳐도 좋을 만하다. 바깥 날씨가 에일 듯하니, 여름에 와서 볼 때 보다 더 한 반가움이 있었다. 그 안에 뜨거운 물을 채우기 시작했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뜨거운 물이 수증기로 피어오르는 모습에 근처 편의점으로 걸어가, 맥주를 사 와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대로 멍하니 몸만 담그고 있기엔 솔깃한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새 마당에는 바람대로 정말 비가 내리고 있었고, 차 안에서 우산을 꺼내 펼쳐 들어야 했다. 누가 봐도 이곳이 내 동네인 사람처럼 편안한 차림새로 느린 걸음을 했다. 다녀오면서는 ‘온아’ 옆집의 소리를 들었다. 단정한 사람들이 분주하게 그 대문을 넘더니만, 제사가 있는 모양이었다. 낮부터 요리하며 나누던 말소리가 돌이켜 떠오르며, ‘그랬구나.’ 싶었다.



때로는 주변에 아무도 없는, 나조차도 말소리를 내지 않으면 그야말로 적막이 맴도는 곳을 원하기도 한다. 다만 이번 여행을 ‘온아’에서 보내며 들었던 생각은, 낯선 곳에서는 오히려 사람 사는 소리를 듣고 있을 때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소음의 범위까지 가지 않는, 이곳에서 만큼의 적당함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문을 닫고 들어왔더니 더는 들리지 않는 백색소음이 아쉬운가 하며 옷걸이에서 가운을 빼 들고, 이윽고 물이 다 채워진 자쿠지로 걸어갔다.



새벽쯤 뜨거운 물에 쪼글쪼글해진 손끝을 가운 안으로 밀어 넣고 끈을 동여매며 침대에 걸터앉았을 땐, 가운에서 올라오는 포근한 냄새가 너무 좋기도 했다. 갓 드라이클리닝을 받은 그 냄새에 잠이 쏟아졌다. 그대로 옆으로 누워 눈만 깜빡였던 것 같다.



넓은 침대 위에서 얼마나 몸질을 했을까. 알람이 울어서, 눈을 뜨고 창밖을 봤다. 푹 자서 가뿐한 몸을 일으켜 씻고, 나갈 채비를 했다.


“아침밥 뭐 먹지?” 입맛이 도는 아침이었다.



※ 글과 사진은 저작권이 있으므로 작가의 동의 없이 무단 복제 및 도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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